강남(에 사는) 엄마

2. 아날로그식을 좋아합니다.

by Aloha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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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아이를 임신하고 있을 때

호주에서 만든 임신 관련 용품 중에

앞치마처럼 생긴 제품이 있었다.

(지금은 판매하는지 모르겠지만.)


예비 엄마의 전면부를 완벽하게 커버하며

뱃속 태아에게 전자파가 닿지 않도록

보호해 준다는 콘셉트의 앞치마였다.

PC 앞에서 몇 시간씩 작업할 때마다

작고 연약한 생명을 지키는 일에

신경이 곤두서는 시기였는데...


호주라면, 제대로 만들었을 거라는 믿음으로

임신 초기에 그 앞치마를 구입했다.

아직 출퇴근을 하며 노트북으로 일을 할 때라

내 원래의 몸보다 더 앞쪽에 자리 잡은 태아에게

혹여라도 해가 될까 봐

전자파 차단 앞치마가 없으면 노트북을 켜지 않았다.



전자파 침묵의 봄이라는 책을 2018년에 읽었다.

전자파를 느끼는 내 느낌이 그저 기분 탓으로

치부당할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텔레비전 가까이 가면 느껴지는 저릿함,

저가 이어폰이나 중국산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으면 발생하는

두통과 메스꺼움, 찌릿함.

두꺼운 전선 주변에서 느껴지는 오싹함 같은

느낌들을 민감하게 알아채는 편이라

태아에 대한 보호 본능은 조금 더 컸다.


중학교 과학 시간, 전자파에 대해

선생님이 해주신 이야기가 여전히 기억에 있어서

전자레인지가 작동하면 가까지 가지 않는 게

안전하다는 마음의 룰은 여전하다.

모든 사람들이 다 갖고 있는

스마트워치도 당연히 없지만

준다고 해도 딱히 반갑지 않다.

에어팟 같은 무선 이어폰의 경우도 마찬가지.


태아에게 노출될 전자파를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줄여주고 싶었다.

(지금도 같은 마음이다.)


아기에게 유아용 패드는 물론,

노래하는 튤립이도

소개해주지 않았다.

엄마가 노래해 주고, 이야기해 주면 되니까.


요란한 빛이 번쩍이고 (마치 사이키 돌아가듯이)

정신없는 높은 데시벨로 왁왁대는

요란한 장난감대신

나무로 만든 놀잇감,

향나무의 향이 진하게 풍기는 자동차,

쌀가루로 만든 점토,

돌가루를 뭉쳐 만든 블록으로

우리의 놀이를 채워가며 아이를 키워왔다.

물론 플라스틱 장난감도 어쩔 수 없이 들이지만

지구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며 신중하게 들인다.

심심하고, 직접 손으로 작동할 수 있는 놀잇감들로.


이유식을 먹을 나이가 되고, 함께 식탁에 앉을 만큼

자라서는 아이의 식사 자리는 무조건

냉장고에서 먼~자리를 내어준다.


전자레인지를 작동할 때는 수류탄이라도 던진 듯

버튼을 누르고 아이와 장난하듯이

"도망쳐!!"하고 방으로 들어가 깔깔 웃는다.


어린이 컴퓨터, 아이패드에 노출이 늦으면

다른 아이들처럼 기계와 친하지 않을 것 같다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유명하고 명석한 하버드 연구팀들이 알아낸

수많은 과학적 연구들이 말한다.

디지털 기기는 단순화된 도구라서

누구라도 쉽게 단시간에

작동방법을 습득할 수 있다고.

말도 아직 못 하는 아이들도

스마트폰을 작동할 줄 아는 걸 보면

디지털 기기에 노출이 늦다고 해서

해가 되는 건 전~혀 없어 보인다.


심지어 실리콘밸리에 있는 세계적인

스마트폰, 인터넷 관련 업체의 CEO들의

자녀들은 (최대) 17세까지

인터넷, 스마트폰 없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교육받으며 두뇌 활동을 돕는다지..?

(EBS 다큐에서 만난 기쁜 소식이었다.)


우리는 궁금한 건 책으로 찾는다.

촌스럽고 구시대적이고 늦되 보이는 이 방식이,

자판 하나로 순식간에 방대한 정보를

만나게 되는 이 시대와는 맞아 보이지 않겠지만

사람으로서 생각하고, 찾고, 고민하고

발견하는 기쁨을 맛보며 살기 원하는

엄마의 작은 바람이랄까.


도구의 발달은 유익한 수단이 되겠지만

사람으로 태어나 당연히 발현되어야 할

매력과 인간만의 고유성을 상실하면서까지

중독되는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다.


종이에 연필로 쓰고, 지우개로 지우고

책장을 넘기며 그림을 감상하고

엄마의 온기와 목소리를 담아 책을 읽히며

아이가 인간미를 가득 품고 자라기를 바란다.


최첨단의 강남에서

아날로그미를 추구하는 강남(에 사는)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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