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에 사는) 엄마

72. 너무 이른 침묵이 아닌지.

by Aloha J

아이가 어릴 때는 함께 버스를 타면 재잘재잘 창밖 풍경을 중계했다.

아이의 귀와 마음을 엄마의 오디오로 꽉 채우며

낯선 사람들과 함께 있는 공간에서도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을 갖도록

지금 엄마와 함께 있는 이 시간을 즐기길 바라며 쉼 없는 아이 전용 라디오가

되기를 기꺼이 자처했다.


41개월,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아이와 외출하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주말로 몰렸다.

아이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내가 말하는 것보다

아이의 질문의 더 많아졌다. 그 질문에 답하며 목적지를 향해 가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이와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버스에서 내 대화 지분이 줄어들었다.


아이가 여섯 살이 되면서부터 우리의 버스 문화에도 변화가 생겼다.

아기티가 벗어진 아이에게 질서와 규칙을 알려줘야 하는 시기였다.

버스 안에서 부르는 노래나 대화 소리가 점차 커졌다. 나에게는 귀여운 자식이지만,

타인에게는 달갑지 않은 소음이 될 수 있을 만큼 자랐다.

아이에게 좀 더 조용히 이야기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게다가 더 이상 두 팔에 안고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아기가 아니다.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의 두 발이 버스에 안전하게 세워져 있는지,

승하차시 아이가 안전한 지를 더 살피게 되었다.

아이의 질문에 오로지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대화를 이어가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아니면 제법 버스를 타면서 스스로 둘러볼 여유가 생긴 거라 그런 걸까...

아이가 버스를 타면 창밖을 바라보는 일이 잦아졌다.

내 손을 꼭 잡고 버스 광고 모니터를 보며 익숙한 바깥 풍경을 지나치기도 한다.

원래 조용한 걸 즐기는 스타일이라 익숙한 침묵을 오랜만에 만나자 빠르게 그 침묵에 적응했다.

혼자 대견하게 잘 앉아서 가는 아이지만

종알대던 시간을 혹여 그리워하진 않을까 하는 마음에

슬며시 말을 건네보지만, 아이는 광고와 풍경에 집중해서 그런지

대화가 몇 마디 이어가지는 않는다.

단,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는 신나게 이야기하지만..


오랜만에 찾아온 여유로움에 반갑게 에너지를 쌓아보지만,

엄마 라디오가 너무 일찍 종료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좀 더 엄마와의 즐거운 대화를 원했을지도 모를 텐데,

엄마가 이른 침묵의 모드를 켠 건 아닌지...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엄마 손을 꼭 잡고, 때로는 어깨에 포옥 기대어 방긋 웃는 미소를 건네는 아이.

우리의 대화는 줄었고, 어느새 광고판에서 나오는 영상을 호기심 가득 바라본다.

아이가 잘 자라고 있는 거겠지? 지금 나는 잘 가고 있는 거겠지?

아이도 이 시간을 여유롭게 대하고 있는 거겠지?


버스와 지하철에서 충전한 만큼 버스에서 내리면 다시 우리의 대화가 시작되지만,

언제나 속도가 느린 엄마는 우리의 변화에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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