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에 사는) 엄마

52. 여행 갈 때는 꼭 책을 챙겨. 몰래...

by Aloha J

두 손이 무거운 외출은 출발부터 마음이 힘들어진다. 카드 한 장과 핸드폰, 아이 가제 손수건을 담은 파우치 정도라면 일상의 외출 준비는 다 한 셈이다. 한참 어릴 때에도 우리의 짐은 다른 아기 가방에 비해 굉장히 단출했다. 모유수유로 한 짐을 덜었고, 소비하게 될 기저귀와 아이 담요, 아이 여벌옷 외에 혹시, 만일.... 을 위해 거창하게 짐을 꾸리지 않았다. 물론 초반에야 이것도 필요할 것 같고, 저것도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보부상을 자처했지만, 아이가 자랄수록 엄마도 짐 싸는 데 나름 전략이 생겼다.


온 가족이 모두 함께 하는 여행은 마음이 한 결 가볍다. 무겁게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니까...

그래서 좀 욕심을 내본다. 옷도 한 두벌이 더 늘어나면 제법 짐이 커지는데, 그중에 절대 포기 하지 않는 것은 아이가 읽을 책이다. 가방은 차 안이나 숙소에 둘 예정이니, 들고 드나드는 때만 좀 수고로우면 된다.

그래서 평소 뚜벅이인 엄마는 여행짐 속에 책을 두세 권 넣는다.

"00아, 여행 가서 읽고 싶은 책 골라서 갖고 오렴."

아이는 신나게 책을 고른다. 자기 전에도 읽을 거고, 숙소 안에서도 수시로 들여다볼 책이라 한 권으로 끝나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괜찮다, 차가 들어줄 거니까.


책을 트렁크에 넣는 것 보고 남편이 한 소리를 뱉어냈었다. "아니, 무슨 거기까지 책을 갖고 가."

사실 책 한 두권 더 든다고 1킬로그램이 늘어나는 게 아닌데도 남편은 그게 엄청난 무게를 더할 거마냥 핀잔을 해댔다. "응, 우리 00이 자기 전에 읽을 거야."

여행지에 가서 아이가 퐁신한 침대 위에서 책을 읽는 모습을 보더니 그 이후로는 핀잔의 강도가 좀 사그라들었다.

거기에 내 책도 한 권 같이 넣고, 같이 호텔 침대에 누워 각자의 책을 보는 시간은 정말 꼬소롭기까지 하다.

아, 이 맛에 책을 갖고 오지! 나중에 아이가 좀 더 커서도 어디에서든지 우리의 시간을 책과 대화로 함께 채워가면 얼마나 근사할까?


버스나 비행기, 기차로 하는 장거리 여행에도 책은 언제나 필수다. 책을 아이의 일상에 촘촘히 껴두고, 노출시키는 건 엄마의 다분히 의도가 있는 행동이다. 가방이 좀 무거워도 아이가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면야! 이쯤의 무게는 버틸만하다.

문익점이 붓안에 목화씨를 숨겨오는거 마냥 책을 몰래 한 권 더 껴넣는 일이 여전히 종종 있지만, 책 덕분에 아이의 여행이 더 즐거워진다는 걸 언젠가는 남편이 알게 되겠지... 기대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강남(에 사는)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