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평리마을] 상상한 만큼 나를 닮은 공간

by 호시


1. 동화 같은 마을, 비파산 아래 방앗간


앞으로는 종종 사람들로 복작이는 작은 정류장이 있고, 뒤로는 비파산이 호선으로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낡은 방앗간. '평리'라는, 이름마저 동화 같은 마을에 우뚝 서 있는 이 공간은 한때 이 일대부터 멀리 떨어진 다른 마을에서까지 각종 곡식과 고추를 찧으러 오는 사람들로 늘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가까운 도시로 나가 청에 취직한 여동생 둘이가 나도 모르는 새에 큰 기계를 해다 줬어."


어르신이 말씀하시는 기계는 이제 땅에 파인 흔적으로만 남았지만, 절구통이 특히 실해 보이는 커다란 고추방아와 어르신이 직접 나무를 가져다 만드셨다는 정미 기계는 여전히 방앗간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남쪽 마을에 새록새록 초록이 찾아들기 시작할 무렵, 어르신의 옛이야기를 따라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던 곳에서 나는 마치 오래전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일인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주변 사람들은 이 동화 같은 풍경에 작은 둥지를 틀려는 나를 보며 "잠깐 쉬었다 오려고?", "슬로우 라이프 해보려고?"라고 물었다. 나 역시 반쯤은 그렇게 되는 건가, 고개를 끄덕였다.






2. 대강 안다고 믿었던 세계, 그리고 '슬로우 라이프'라는 착각


돌이켜보면 참 신기한 일이다. 부산 깡통시장에서 나고 자란 내가 삶에서 경험한 방앗간이라곤, 명절마다 시장 큰길을 향해 끊임없이 뜨거운 김을 폭폭 피워내던 떡방앗간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오래전 문을 닫은 시골 방앗간을 고치며 일을 시작하는 순간, 가장 먼저 깨달은 사실은 내가 삶에서 '방앗간'이라는 고유한 시공간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경험이 없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것은 비단 '방앗간'뿐만이 아니었다. 평리마을은 '내가 알던 시골'이 아니었고, 이제 막 일을 시작하려는 곳은 '내가 알던 슬로우 라이프'의 시계가 돌아가는 로컬이 아니었다. 2023년 봄, 내가 선택한 평리마을에서의 삶은 서울보다 훨씬 매서운 얼굴이었고, 동시에 훨씬 빠른 속도로 내달려야만 겨우 따라 흘러갈 수 있는 세계였다.


30대 초까지 내가 경험했던 서울은 '더 완벽한 최선, 강력한 한 방'들의 세상이었다. 그 한 방을 향해 가는 길에는 무수히 많은 시도가 필요했고, 소위 '한 끗차이'가 결과의 차이를 만들었으므로 아주 촘촘하게 '실행'을 누르고 또 아주 부지런히 '실행 취소'를 눌러가며 벼르고 벼르는 시간들이 필요했다.

반면 내가 만난 이곳 평리마을, 로컬은 훨씬 '야생', '날 것'이라는 표현이 절로 나오는 세계였다. 여기서는 '당장 구체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마을 곳곳 너른 논이 펼쳐져 있는 이곳의 생리는 꼭 '한 해 쌀농사' 같았다. 논을 일구고, 물을 채우고 모를 심고, 푸르른 논의 계절을 지나 온 땅이 황금색으로 물드는 날이 오면 부지런히 벼를 베고 볏단을 정리한다. 마치 하늘 위로 구름이 흐르듯이 유유자적한 속도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다르게 보면 '그때'를 놓치는 순간 한 해를 공치기 때문에 시기에 맞게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고 늦지 않게 갈무리를 지어야 한다.


이 오래된 방앗간의 공사 현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텅 빈 유휴 공간, 낡은 골목, 그리고 나를 향해 쏟아지는 수많은 물음표들. 그 앞에서 "지금 당장 대답을 어떻게 해요? 고민해봐야 해요."는 사실상 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 말은 곧 비용 추가라는 사실만큼은 확실해서 에라 모르겠다 냅다 대답하고 나면, 곧장 "여기 뚫어요~"라는 말과 함께 구멍이 생겼다. 이 무수한 말들과 동시다발적으로 돌아가는 상황 앞에 되돌리기 버튼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렇게 나의 선택은 즉시 물리적인 실체가 되어 뻗으면 닿는 현실이 되었다. 머릿속에 부유하던 추상적인 상상을 단 1초 만에 물리적인 도면으로 끄집어내야 하는 '구체화의 속도'는 공사 기간 내내, 내 피를 말리기 충분했다.






3. Deep Dive & Expansion


지난날 나는 서울에서 공간을 '구독'했었다. 나에게 중요한 몇 가지 기준점들 안에서 비교하고 선택하면, 비교적 합리적인 월 멤버십 비용으로 잘 세팅된 공간을 얻어 곧바로 안정적인 업무 루틴을 돌릴 수 있었다. 그땐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못했지만,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공간이라는 하드웨어에 들어가는 예산과 에너지를 아껴, 내 업의 본질인 소프트웨어에 집중할 수 있는 선택을 했던 것이다. 덕분에 나는 이와 관련된 그 어떤 고민이나 번거로움 없이 쾌적한 환경 속에서 한 끗 차이의 디테일을 만들어내는 집요함(Deep Dive)을 훈련할 수 있었다.


평리마을에서는 '하드웨어'부터가 나의 일이었다. 기획자인 동시에 시공자들과 함께 공간을 새로 꾸리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콘센트를 어느 위치에 몇 개나 낼 지, 출입문은 기성 제품을 사서 달 지, 제작을 할지 정해야 했다. 특히 공간에 색을 정할 때는 겨우 손바닥 1/4도 안 되는 크기의 컬러칩만 보고, 내 몸집보다 수십 배 큰 면적에 칠했을 때의 '느낌'을 상상하고 가늠해야 했다. 어느 것 하나, '추천해 주세요'가 통하는 항목은 없었다. 그렇게 곧장 물리적 현실이 되어버리는 그 가볍지 않은 선택들 앞에서 나는 깨달았다. 내가 서울에서 그토록 치열하게 다니며 눈에 담고, 몸으로 기억해야 했던 숱한 시공간의 인상들이 바로 이 거친 현장에서 현실로 구현되고 있음을 말이다. 서울이 나에게 점 하나를 깊게 파고드는 힘(Deep Dive)을 가르쳤다면, 로컬은 내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점들을 과감하게 연결하며 치고 나가는 힘(Expansion)을 가르치고 있었다.






4. 창작자의 최전선, 그리고 내러티브의 시작


흔히들 로컬이 느리고 정체된 곳이라고 생각하지만, 창작자에게 로컬은 그 어느 곳보다 스피디하고 역동적인 최전선이다. 서울에서는 상상만 했던 일들이 이곳에서는 "네가 말했으니, 네가 만들어봐."하고 눈앞에 펼쳐지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현실이 되었다.


이 압도적인 날 것의 속도감 속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의 지향점은 바뀌어가고 있었다.

과거의 나는 인생이라는 캔버스에 단 하나의 완벽한 마스터피스(Masterpiece)를 완성해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인지 캔버스 앞에서 완벽한 붓터치에 대한 고민과 부담감으로 머뭇거리는 시간이 많았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 주저하는 순간들이 좀처럼 줄어들지가 않았다.

반면 지금의 나는 굳어버린 콘크리트 위라도, 언제든 한 걸음 뒤로 물러서 다시 보고 내 식대로 살려볼 준비를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끊임없이 고민하며 이리저리 해석해 보고, 또 움직여가며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가는 삶의 내러티브(Narrative)가 내겐 훨씬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완벽의 강박을 자연스럽게 내려놓을 수 있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이 투박한 방앗간에서 정통으로 부딪힌 시간과 경험이 내게 남겨준 선물이기도 했다. 긴 시간 비워두었을 뿐, 방앗간을 방앗간인 채로 내내 지켜준 어르신 덕분에 나는 요즘 흔하게 보기 어려운 이 공간을 마음속에서 곰곰이 굴려보며 새로운 쓸모를 상상할 수 있었다. 반듯하게 깎인 새 건물이 아니라 누군가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이 공간이야말로, 내가 이어 쓰고 싶은 내러티브가장 어울리는 배경이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데에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내가 경험한 방앗간과의 이어짐은 묘한 안도감과 뭉클함을 함께 안겨주었다. 오랜 세월을 버텨낸 누군가의 흔적을 나의 현재로 껴안는 일은, 이 엄청난 구체화의 속도 속에서도 묘한 안정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연고가 없음은 물론이고 과거에 그 어떤 접점도 없었던 이곳.

진짜 마치 동화처럼,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이 남쪽 마을 방앗간에 다다름과 동시에, 뭐가 되었건 직접 쓰는 것 밖엔 도리가 없는 '주관식의 세계'로 쑤욱 들어와 있었다. 보기에만 고즈넉한 이 동화 속 풍경은, 내가 직접 언어와 형태로 답안을 적어내지 않으면 단 한 줌의 흙도, 한 장의 벽돌도 움직이지 않는 거대하고 텅 빈 주관식 답안지나 다름없었다. 당연하게 선택지가 먼저 주어지던 객관식의 세계를 이제 막 떠나온 나는, 지금도 여전히 곧잘 빈칸 앞에 압도감도 느끼고 당황함에 어쩔 줄 몰라하기도 한다. 하지만 더 이상 부담감에 주저하거나 완벽함 앞에 머뭇거리지만은 않는다. 숨 막히는 압박감과 기분 좋은 뭉클함이 뒤섞인 채, 나의 진짜 '작은 마을 생존기'가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