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空間)의 전환: 불출호 지천하(不出戶 知天下)

by 호시



모두가 기회의 중심이라 믿는 수도권을 향해 모여들 때, 낯설고 먼 전남의 강진으로 향하던 나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선명한 상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내 상상의 철학적 모티프는 19세기말 예술의 중심지 파리를 떠나 남프랑스 아를(Arles)에 '노란 집(Yellow House)'을 마련하고 예술가들의 공동체를 꿈꾸었던 고흐의 궤적이었고, 내가 발 딛고 있는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한 실천적 롤모델은 프랑스 남서부의 '도멘 드 부아부셰(Domaine de Boisbuchet)'였다.



빈센트 반 고흐, <노란 집(The Yellow House)>, 1888 / Boisbuchet Summer Workshops ⓒDomaine de Boisbuchet



숲과 호수가 어우러진 넓은 영지 위에 오래된 고성이 버티고 있는 곳. 매년 여름 열리는 도멘 드 부아부셰의 디자인·건축 워크숍은 전 세계 창작자들이 모여드는 거대한 실험장이다. 사람들은 자연의 생명력이 지배하는 환경 속에서 국적과 연령, 분야를 불문하고 동료가 된다. 직접 재료를 다루며 실천적 경험을 나누고, 땀 흘리는 과정을 함께하며 느슨하지만 단단한 관계를 맺는다. 강진에 닻을 내리며 구상했던 것 역시 이와 같았다. 창작자들이 일 년에 한 번씩, 호흡이 긴 시간을 함께 누리며 영감을 채우고, 새로운 방식으로 온기를 나눈 뒤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베이스캠프를 짓고 싶었다.



부아부셰 전경과 여름 워크숍 진행 모습 ©CIRECA_Domaine-de-Boisbuchet



"세상의 모든 것은 통한다."

문화예술 기획자로서 품고 있는 이 첫 번째 전제는, 지금까지 내가 기획해 왔던 모든 전시, 워크숍, 전문가 교육과 공간 안에서 나이와 경력, 분야라는 인위적인 층위들을 무력화시킬 수 있었던 중심이었다. 또한 강진에서 3년에 걸쳐 세 곳의 공간을 만들고 이어가는 과정에서 결정의 어려움이 생기면 늘 돌아가 앞에 섰던 문장이기도 했다. 경계가 허물어진다는 것은,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범위와 깊이가 달라짐을 의미한다. 서로 다른 궤적을 굴려온 고유성들이 교차할 때, 그 마찰열은 예기치 못한 반짝임을 만들어낸다. 타인의 궤적을 통해 미처 몰랐던 나의 이면을 발견하거나, 정체되어 있던 삶의 숙제를 풀어갈 작은 실마리를 얻게 되는 경이로운 역동들이 바로 이 경계 없는 영토 위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이 베이스캠프 안에서 각자가 자신의 때에 맞는 포지션을 찾기를 바랐다. 살짝 숨 가쁜 듯한 밀도로 그 공간을 통과하고 나면, 다시 일상을 버텨낼 무언가를 손에 쥐게 되기를 원했다.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방법론과 가슴 뛰는 영감이, 누군가에게는 현실을 지탱할 자본과 따뜻한 용기가, 또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가고자 하는 경로를 조금 앞서 걷고 있는 존재에 대한 확인일 수도 있다. 그 각자의 수확물을 품고 일상으로 돌아가, 막연한 미래로 미뤄두었던 꿈과 로망을 나의 '지금'으로 바짝 끌어당겨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우리가 함께 만든 곳에서, 공간을 완성시키는 사람들. (2025년 청소년 큐레이팅 워크숍) ⓒ후일담



"세상의 모든 것은 통한다"는 나의 제1 전제는 사람과 분야의 경계를 지워내는 것을 넘어, 자연스럽게 '장소'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확장되었다. 만약 세상의 이치가 하나로 닿아있다면, 중심부(수도권)와 변방(지역)을 나누는 물리적인 거리 역시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공간 기획은 처음이었고, 빠르게 공사가 진행되어야 하는 상황이었던 그때 손에 잡히는 대로 읽던 책에서 운명처럼 접했던 "문밖을 나서지 않고도 천하를 안다(不出戶 知天下)"는 노자의 『도덕경』 한 구절은 이 막연한 짐작에 단단한 언어를 보태주었다.


내가 서 있는 물리적 좌표가 어디든, 스스로의 중심을 단단히 세운다면 세상과 연결될 수 있다는 오래된 사유.

고민과 주저함이 남달라 머리가 무겁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내가 강진이라는 낯선 땅에서, 낯선 일을, 그것도 낯선 사람들과 함께 겁 없이 빠르게 추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쩌면 이 문장이 가리키는 바를 나의 현실 속에서 직접 실험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후에 남상객잔이 된 시장 한복판 내내 비워져 있었던 3층 건물과 성하객잔이 들어선 부지 위의 오래된 창고 ⓒ후일담



이 시대의 창작이 대책 없는 몽상이 아니라 내 삶과 나를 둘러싼 세상을 기꺼이 책임지는 실질적인 도구이자 무기가 될 수 있다는 믿음 안에서 매일 묵묵히 스스로의 중심을 세워가고자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을 우리는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들이 만난 곳에서 어떻게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의 연대를 유지하며 나아갈 수 있을까. 이 고민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의 시작이 바로 강진에서의 첫 번째, 두 번째 공간이었던 남상객잔(南廂客棧)과 성하객잔(星下客棧)이었다.


비워진 시장 한복판의 유휴공간을 고쳐 새로운 목적성을 부여했던 작업(남상객잔)과 군유지 위에 기반과 뼈대부터 새로 올리고 세우는 구축의 작업(성하객잔)은, 정부와 지자체의 물리적 인프라 지원을 바탕으로 공간을 다루는 감각을 익히게 해 준 것은 물론, 피상적인 껍데기를 날려 보내고 공간의 진짜 알맹이를 구별해 내는 시선을 갖게 한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당초 동시대 창작자들이 느슨하게 기대어 쉴 수 있는 베이스캠프를 꿈꾸며 시작된 일이었으나, 현장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관(官) 주도 프로젝트 특유의 경직된 목적성과 때마다 바뀌는 정책의 풍향계 앞에서는, 창작자들이 온전한 자유와 연대를 누리기에 분명한 한계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공간을 이용할 주 타겟의 동선과 활동을 중심으로 기획, 설계가 진행되었던 성하객잔 / 완공 후 성하객잔 라운지의 모습 ⓒ후일담



동시대 창작자들이 머물 수 있는 물리적 거점을 마련했다는 값진 성과를 거두었지만, 공공의 하드웨어가 자리를 잡아갈수록 그 이면의 한계 또한 명확해졌다. 모두를 위한 '광장'을 짓고 나니,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사유를 직조할 수 있는 사적인 '섬'이 필요해진 것이다. 어떤 거창한 명분이나 시대의 시류에도 편승하지 않고, 조금 늦더라도 온전히 개인의 철학과 힘만으로 지속하고 확장해 나갈 수 있는 가장 내밀한 영토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세 번째 공간이 바로 '아회도(雅會島)'였다.



이제는 더이상 기능하지 않은 채 닫혀있었던 평리마을 방앗간의 모습 ⓒ후일담



아회도는 원래 너른 논이 펼쳐진 초록빛 곡창 지대 한가운데 방치되어 있던 낡은 방앗간이었다. 마을 어르신이 오랜 시간 운영하다 문을 닫은 뒤 창고처럼 쓰이던 곳. 이 낡은 건물을 임대하기 위해 어르신과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행위는, 단순히 부동산의 사용권을 얻는 것을 넘어 그 공간에 멈춰 있던 시간의 켜를 고스란히 인수하는 일과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곡식을 빻고 찧던 낡은 기계 소리가 멈춘 자리에 예술과 사람의 이야기를 들이기 위한 사전 작업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고되었다.



덜어내고 중심을 잡던 날들의 아회도 ⓒ후일담



오래된 먼지를 걷어내고 쓸모를 다한 낡은 구조물들을 덜어내면서도, 이 공간을 지금까지 지탱해 왔던 골조는 여전히 중심의 역할을 하길 원했다. 그 덜어냄과 남김의 경계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 상상의 한계를 마주했던 것 같다. 레퍼런스와 실제 공간 사이의 아득한 틈을 체감할 때마다 가뜩이나 둔탁한 공간감은 더 깊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느낌이었다. 방앗간을 가득 채우고 있던 낡은 물건들을 며칠에 걸쳐 비우고 또 비워내고 나서야, 비로소 내 머릿속에서 이 공간의 목적이자 모티프인 고려 시대 문인들의 '아회(雅會)'가 가진 톤과 분위기를 선명하게 그려볼 수 있게 되었다.



처음 문 열던 날의 아회도 풍경 ⓒ후일담



머릿속에 맴돌던 무형의 상상이 눈에 보이고 손에 닿는 현실에 발붙이기까지는 또 다른 반복의 연속이 필요했다. 언제나 모자라고 아쉬운 예산과 시간의 한정 앞에서 몸도 마음도 결정도 모두 신속해야 했고, 그 뒤에는 즉각적으로 구현되는 새로운 뼈대와 살의 질감이 따라붙었다.


모든 수리를 마치고 공간의 문을 처음 열던 날, 마을 사람들을 초대한 자리에 나는 낡고 거친 방앗간의 뼈대 위로 강진의 붉은 작약을 풍성하게 올렸다. 그 자체로 계절을 대변할 만큼 화려하고 생동하는 작약의 존재감은, 그날 공간을 찾은 모두에게 기능이 정지된 농촌의 오래된 창고가 일상과 예술이 교차하는 미학적 씬(Scene)으로 변모했음을 알려주기에 충분했다.


공간의 좌표를 옮겨 전혀 새로운 지점에 닻을 내리기까지, 꼬박 3년에 걸친 물리적인 궤적은 이렇게 하나의 중간 결론을 맺었다. 벽돌과 낡은 나무 기둥으로 이루어진 공간이라는 그릇이 준비되는 순간, 시선은 필연적으로 그다음의 질문을 향하게 된다.


내 삶은 마침내 그전까지 내 세계에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남쪽의 오래된 방앗간에 닿았고, 새롭게 찍힌 그 점 위에서 나는 완전히 새로운 맥락과 역할을 만났다. 조심스레 세 공간의 문을 열자, 새로운 사람(Human)과 전혀 다른 시간(Time)이 본 적 없던 물결을 타고 내 삶의 이야기에 기꺼이 동참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