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인 공간이 바뀌면 그 무대 위를 흐르는 시간의 질감도 달라진다.
2022년부터 시작된 행정안전부 청년마을 사업은 무려 열 번의 계절이 바뀌는 동안 계속되었고, 그사이 확연히 달라진 시간의 질감은 나와 강진 모두에게 깊은 흔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그때의 경험들을 마음속에서 굴리고 또 굴려볼수록, 당시 내가 강진에서 보냈던 시간은 뼈대 위에 이질적인 흙덩이를 계속해서 덧붙여 나가는 조각 방식인 '소조(Modeling)'의 과정과 매우 닮아 있었다.
학위를 하면서도, 전시 해설을 준비할 때나 강의안을 준비할 때는 물론이고, 전시장에서 그냥 관람객이었을 때도, 나는 늘 다른 어떤 작업 과정보다도, 축이 되는 뼈대 위로 덩어리를 덧붙여가며 조각을 완성하는 소조의 과정이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고되었다. 완결된 작품 앞에서조차 그 묵직한 하중에 마음이 잔뜩 눌려버릴 정도라, 이 끊임없이 무언가를 덧붙여내는 방식은 내게 늘 아득한 시간과 답답할 만큼 느린 속도를 체감하게 했다.
그런 나에게 저 열 번의 계절이 굴러가던 방식이 그 '붙여내는 조각'의 과정과 꼭 닮아있었으니, 얼마나 원치 않는 하중을 이를 악물고 버텨내야 했던 때였는지 시간이 지난 지금도 떠올리면 절로 숨이 막힌다. 나라는 얇은 뼈대 위로 수많은 타인의 엇갈린 옳고 그름, 복잡하게 얽힌 이익관계, 그리고 수장과 정책이 바뀔 때마다 갈대처럼 요동치며 요구되던 KPI까지. 이 크고 작은 현실의 흙덩이들은 통제할 새도 없이 닥치는 대로 굴러와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엉겨 붙었다. 그 무거워지는 질량 속에서 어떻게든 중심을 잡고 버텨내느라, 정작 내 안의 뼈대가 휘어지고 몸에 적신호가 켜지는 고통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만큼 철저히 압도되어 있던 시기였다. 특히 연계 사업으로 청년 공유주거 공간인 '성하객잔(星下客棧)'이 지어지고 운영되던 때는 그 덧붙임의 무게가 가장 지난하게 나를 짓눌렀던 시간들이었다.
성하객잔의 시작은 명확한 뼈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영구적인 정주를 목적으로 하는 '만 원 주택' 같은 하드웨어가 아니었다. 라이프스타일과 거주지를 택하는 데 있어 기꺼이 선택을 유예하고 충분한 탐색의 시간을 가지고자 하는 청년들을 위한 완벽한 '중간지대'를 만드는 것. 일상을 차단하고 낯선 환경에 놓인 채 본질적인 행위에만 집중하는 프랑스의 '도멘 드 부아부셰(Domaine de Boisbuchet)' 워크숍처럼, 이곳이 청년들에게 작지만 확실한 성취의 경험을 주는 인큐베이터가 되기를 바랐다.
나는 이 선명한 뼈대를 쥐고, 내가 가장 잘 아는 시속으로 달려가려 했다. 본래 나에게 편안한 삶의 속도는 철저히 개인전이었다. 모든 힘을 내 안으로 집중시켜 단숨에 도약하고, 뒤돌아보면 어느새 훌쩍 멀어져 있는 가뿐한 포물선을 그리는 일. 그 움직임 안에서 기획의 윤곽과 결과물은 언제나 뚜렷했다. 1인승 전투기처럼 목표 지점만을 향해 예리하게 꽂히는 속도, 그것이 내가 아는 '일이 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로컬의 시간은 내게 전혀 다른 비행을 요구했다. 이곳에서는 수많은 관계와 부딪혀야 했고, 무수히 다양한 형태의 집합들 안에 속하거나 겹쳐지고, 때로는 그 모든 범주를 끌어안는 데 엄청난 시간과 품을 들여야만 했다. 그 무거운 타인과 현실의 덩어리들을 잔뜩 싣고 날아야 하는 이 일의 템포는, 가볍고 날렵한 1인승 전투기보다는 무겁고 완만하게 떠오르는 거대한 여객기의 비행에 훨씬 가까웠다.
내게 처음으로 묵직한 무게감을 선사한 흙덩이는 바로 '일을 함께 수행해야 하는 관계성'에서 오는 것이었다. 특히 강진은 인구가 3만 명 남짓밖에 되지 않는 작은 로컬이다. 서울 마포구 인구의 10분의 1도 채 되지 않는 이곳에선 건너 건너면 모두가 아는 사이고, 낯선 이와의 새로운 만남보다는 익숙한 이들과의 오래된 관계가 훨씬 더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이러한 지역적 특징 앞에서는 대기권을 뚫고 나아가기 위해 부품을 선택적으로 떨쳐낸다거나, 과감하게 코어만 남기고 추진력에 에너지를 몰아주는 식의 대도시식 업무 방식이 애초에 통용될 수 없었다. 그런 방식은 이곳에서 필연적으로 수많은 물음표와 의아한 시선들을 마주하게 할 뿐이었다. 내 양옆으로 보이는 시야를 차단하고 목표 지점만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대신, 양옆과 앞뒤를 살피며 나와 다른 속도를 가진 사람들을 기꺼이 내 삶의 뼈대에 덧붙여 함께 나아가야만 하는 것.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좁고 밀도 높은 로컬 생태계에서 일이 되게 하려면 택할 수밖에 없는 유일한 선택지이기도 했다.
두 번째 덧붙여진 흙덩이의 무게는 함께 일을 해야 하는 주체들 간의 속도 차이와 사용 언어 차이로부터 온 것이었다. 나는 비전을 실현시키고 싶어 청사진을 그렸고, 행정안전부와 지자체는 각자의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그 그림에 예산과 인프라를 매칭시켰다.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진 주체들이 묶이다 보니 의사결정에 도달하는 시간부터가 완벽한 엇박자였다. 무엇보다 고통스러웠던 것은 '같은 말, 다른 뜻'을 해독하고 조율하는 과정이었다. 분명 같은 서류를 펼쳐놓고 서로 고개를 끄덕였는데, 각자가 깔고 있는 기본 전제가 다르다 보니 뚜껑을 열어보면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어긋난 맥락들을 짚어가며 방향을 수정하고, 그에 따르는 방대한 서류의 양과 처리 절차를 감당하는 것까지. 어쩌면 소조에서 끊임없이 흙을 '붙이고 매만진다'는 행위는, 단지 예쁜 모양을 빚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렇듯 서로 다른 주체들의 틈새를 메우고 오해를 다듬어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정교해야 하는 만큼 숨을 죽인 채, 끊임없이 벌어지는 작은 틈들에 온 신경을 쏟아부어야만 하는 시간들 말이다.
이 덧붙임의 과정들과 버텨내야 했던 무게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지만, 그 시간은 내게 뜻밖의 발견이기도 했다. 어찌 손써볼 틈도 없이 달라붙은 이질적인 흙덩이들을 내 뼈대 위에 그대로 얹어놓고 내내 매만지는 동안, 예상치 못한 위안이 때때로 찾아들었기 때문이다. 서로의 입장이 부딪혀 스파크가 튀고 화가 났던 순간도 분명 있었지만, 내가 채우기에 버거웠던 틈을 누군가가 아무렇지 않게 다가와 메워주거나, 서로가 서로의 대변인이 되어 굳건하게 버텨주던 순간들이 함께였다. 그것은 이 복잡한 관계성 속으로 기꺼이 뛰어들어 함께 하중을 견뎌낸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무게의 기쁨'이었다. 이는 마치 촉촉하고 부드러운 질감과 기분 좋은 찹찹함을 가진 흙처럼, 무언가를 홀로 완벽하게 해내려 달아올랐던 내 안의 열기를 부드럽게 식혀주는 듯했다.
결론적으로 성하객잔은 시작 지점에 품었던 상상과 끝 지점에 도달한 결과물 사이에 작지 않은 간극이 존재하는 프로젝트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기도 했다. 이 프로젝트가 현실화된 토양이 '공공 영역'이라는 특수한 문법을 가진 곳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개인의 비전과 공공의 정책 목표가 본질적으로는 맞닿아 있을지라도, 무게 중심이 놓인 지점이 다르기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온도 차는 존재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기획의 형태가 지역의 필요와 정책의 방향에 맞춰 조정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이치였다.
이 과정에서 내가 깨달은 가장 큰 한 가지는, 나라는 기획자가 가진 고유한 시속과 방법론이 이 거대한 공공의 문법과는 결이 다르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이 일이 진행되는 내내 시스템이 요구하는 보편적인 문법과 내가 쥐고 있는 개별적인 언어 사이의 이질감을 조율하는 데에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했다. 그 마찰은 때로 감당하기 힘들 만큼 나를 소모시켰고, 정작 기획의 본질에 쏟아야 할 숨을 턱턱 막히게 했다.
만약 시간을 되돌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이 기획을 풀어낼 다른 방법을 찾아볼 것이다. 나는 여전히 내가 그린 그림을 가장 온전하게 세상에 구현해보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일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내가 충분히 '잘 숨 쉬고', 에너지를 쏟아야 할 곳에 온전히 쏟으며, 마침내 일이 내 삶에서 가지는 기쁨을 원 없이 누리고 싶다.
결국 성하객잔이라는 소조의 시간은 내게 가장 나다운 '두께감'과 동시에 내가 사수해야 할 '호흡의 자리'를 가르쳐주었다. 나라는 얇은 뼈대가 공공 영역의 거대한 질량과 맞닥뜨렸던 경험은, 내가 버틸 수 있는 하중의 임계점을 확인하는 과정인 동시에 나를 지탱해 줄 고유한 삶의 질량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겨울 할머니 댁 아랫목에서 덮었던 묵직한 솜이불이 도리어 나를 깊고 단단한 잠으로 이끌었던 것처럼, 타인과 지역이 내게 얹어준 하중이 나를 바닥에 단단히 뿌리내리게 하는 거대한 안정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비로소 발견했다.
폭발적인 힘으로 빠르게 도약하는 것만이 유일한 성취인 줄 알았던 나는, 그 도약의 끝에서 마침내 더 멀리 가고 싶어 하는 나의 본질을 대면했다. 나라는 좁은 범위를 기꺼이 허물고 낯선 타인들을 곁에 덧붙여, 마침내 더 넓고 단단한 존재로 스스로를 확장해 낸 시간들. 비록 시작과는 다른 투박하고 둔탁한 모양새일지라도, 이 묵직한 하중을 견디며 얻어낸 견고함이야말로 내가 앞으로 더 멀리, 그리고 더 즐겁게 걸어갈 수 있게 하는 실질적인 동력이 될 것이다. 어떤 세계가 들러붙어도 기꺼이 함께 멀리 걸어갈 수 있다는 분명한 확신. 그것이 소조의 시간이 내게 남긴 가장 귀한 조형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