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땅의 열기가 오르기 전, 눈에 띄게 한산해진 망원역을 지나 오피스에 도착하는 날에는 유리문 너머로 익숙한 '그 시간대'의 얼굴들이 오늘의 업무를 준비하는 아침 리추얼 현장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나 역시 곧 적정한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는 자리에 노트북을 펼치며 오른쪽으로는 작은 노트와 라이너펜을, 그리고 왼쪽으로는 들어오면서 갓 내려온 커피를 내려놓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이 단순한 세팅의 완료는 집도 아니고 팬데믹으로 제약 투성이인 바깥도 아닌, 나만의 '중간지대'에 오늘도 무사히 안착했음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다.
창업 초창기, 아직 바깥세상은 팬데믹으로 인해 잔뜩 움츠러들어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로 인해 이 공간의 규칙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모두가 띄엄띄엄 자발적으로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그 공간을 따로 또 함께 공유했다. 그 특유의 시각적인 여백은 마치 나에게 그곳을 안전한 요새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비용을 지불한 후 노트북 하나만 들고 가면 업무와 미팅, 휴식까지 부족함 없이 해결할 수 있는 '공유 오피스'라는 공간과 운영 시스템은 당시 빈손으로 일단 사업을 시작한 내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지였다.
월 멤버십을 결제하기 전, 서울역부터 홍대까지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오피스들을 너덧 군데 둘러보았다. 비용과 기본 제공 사항과 같은 부분은 물론이고, 앞으로 스스로 일을 벌이며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특히 이 부분에 있어서 내게 가장 중요한 조건들은 무엇일지 고민하며 여러 가지를 따져보았다. 현재 일 제안이 많은 지역과 오가기 편한 교통편이 가까이에 있는 곳, 학위 과정을 마무리하며 사업을 일정 기간 병행하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위치에 있는 곳, 현재 그 공유 오피스를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의 분위기, 라운지에 놓인 가구의 만듦새까지.
최종적으로 한 곳과 6개월 계약을 하고 처음 그곳으로 출근했던 날, 나를 감쌌던 묘한 고양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선택지 구성부터 최종 결정까지 척척 해냈다는 뿌듯함, 그리고 내가 동경했던 공간과 분위기 속에 내가 더 이상 관찰자가 아닌 일부로 스며들었다는 만족감이었다. 지금에 와 돌아보면, 그때 내가 느낀 그 고양감의 중심에는 '취향'이라기보다 '안목'에 가까운 것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떤 적정함과 세련됨 같은 걸 '구독'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게 무엇이었건 그것을 취했던 6개월 간의 경험은 강렬했다. 비록 서로 말 한마디 섞을 일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같은 공간을 비슷한 듯 다른 라이프 패턴과 키워드를 가진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누릴 수 있는 에너지의 공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그 '공명'이 직접적인 스킨십이나 소통, 겹쳐짐이 전혀 없는 분위기에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철저하게 각자의 선 안에 머무는 타인이었다. 그 너머에서 서로 무엇을 하는지, 어떤 성취를 꿈꾸며 과정을 밟아가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공유 오피스 안에서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바다 위에 떠있는 섬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외로움이 아닌 '몰입으로 향하는 수렴점'의 모습이었다. 이른 아침, 점심 직후, 그리고 늦은 밤까지. 각 시간대마다 자신만의 에너지를 깊고 높이 쏘아올리던 익숙한 얼굴들은 혼자라는 불안감을 잠재워주는 극약처방이 되기도 했다. 서울이어서 가능한, 이 도시만의 독특한 연결감이었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산뜻하고, 편리하고, 즉각적이었다. 그 공간을 이용하는 것과 관련된 나의 선택은 언제든지 번복과 변경이 가능했다. 매월 지불해야 하는 비용을 제외하고는 내가 무언가를 선택한다고 해서 크게 잃을 것도, 감수해야 할 것도 없었다. 이러한 행동과 따라붙는 값에 익숙해지면서 그것은 나에게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 되었다. 이것은 동시에 선택에 대해 다소 부담스러운 기회비용이 따라붙는 행동을 해보는 경험이 내게 점점 낯선 것이 되어감을 의미하기도 했다. 서울의 샌드박스, 서울이어서 가능했던 '계속 시도해볼 수 있는 삶'은 이런 형태였다.
이 때 한 쪽으로 한껏 기울어졌던 나의 경험치는, 훗날 내가 서울을 떠나 우리나라 남쪽, 평리마을에서 내 공간을 직접 만들던 시기에 '내가 살아갈 수 있는 다양한 로컬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만들어주는 기반이 되었다. 그곳에서는 서울에서와는 다르게 바쁘게 돌아가는 공사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결정하고 구현되는 과정을 거쳐서야 비로소 내 공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당장 치고나가야 하는 일들에 관한 질문들이 휙휙 날아들면 빠르게 계산하거나 상상해서 답을 탁탁 내놓아야 했다. "여기 맞죠? 뚫을게요~" 많은 것들이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실행되었고 그 결과물은 '되돌리기'나 '실행취소'로 다시 원상 복구될 수 없는 것이었다.
홍대에서의 시간은 나에게 '몰입의 에너지'와 좋은 공간의 기준'을 직접 선택하고 누려볼 수 있게 했다. 그것은 내 몸에 남은 선명한 감각이자 기준점이 되었다. 하지만 딱 그날까지였다. '내가 손만 뻗어도' 무언가가 돌아가는 게 가능했던 객관식의 세상은 딱 그날까지만 내게 허락되었다. 언어와 형태로 좁히고 구체화하지 않고서는 단 한 발자국도, 어느 것 하나도 움직이지 않는 주관식의 세계가 이미 코앞에 당도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