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트로피칼 새벽 일출

달린 후에 먹는 말라사다는 꿀맛!

하와이살이 전에는 '달리기'에 관심이 없었다. 조금 더 적확하게 말하자면, 그동안 달려볼 생각을 못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계단을 내려오다가 발을 접질렸고, 잘못된 응급처치 및 치료로 오른쪽 발목 인대 중 파열되었던 한 가닥은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그래도 꽤 오랜 시간 부단히 노력한 덕분인지, 종종 나도 모르게 '윽-' 소리가 나고 눈물이 주르륵 흐를 정도로 욱신 거리던 발목 통증도 이젠 없고, 오른발로 한발 균형 잡기도 꽤 한다. 현재도 발목에 무리가 갈 법한 것들은 가능한 피하며 아껴주는 중이다. 나의 발목은 소중하니깐. 그래도 하와이에서 지내는 동안은 큰 국제적인 연례행사인 호놀룰루 마라톤을 뛰어 보아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중고등학교 때 체육 수행평가로 체력장 할 때 오래 달리기 뛰어본 경력이 다였고, 발목에 큰 무리가 가거나 부상을 입게 될까 봐 아예 뛸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알라모아나에서 시작해서 다이아몬드 헤드 근처에 있는 카피올라니 공원까지 뛰는 10km, 다이아몬드 헤드를 돌고 오는 하프 코스, 그리고 풀 코스로 다양한 코스 도전자들이 한날한시에 도전을 하고, 완주해야 하는 시간제한이 없어서 남녀노소 다 즐길 수 있는 마라톤 대회라는 설명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천천히 그리고 온전한 내 속도대로 오아후 섬의 아름다운 길을 뛰어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도전하고 싶어졌다.


대회 당일 날 새벽. 많은 사람들이 알라모아나 쇼핑센터 출발지점으로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달리기 동호회 팀별로 코스프레를 하고 온 사람들도 있고, 가족 혹은 친구들끼리 온 사람들도 있었다. 각양각색의 참여하게 된 이유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기대감과 설렘이 가득 찬 '공기'를 만들어냈다. 다들 크게 소란 피우진 않았지만, 출발 시간이 다가올수록 흥분하는 게 보였다. 드디어 출발! 화려한 불꽃놀이를 시작으로 마라톤은 시작되었다. 동트기 직전, 가장 어두운 시간에 보는 불꽃놀이는 그 자체만으로도 화려하면서 낭만적이었다. 꽤 오랫동안 하던 불꽃놀이는 나의 첫 도전을 응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 난 할 수 있어!'


마라톤에서는 중간중간에 페이스메이커 (pacemaker)라고 해서 일정한 속도로 뛰며 목표 시간 내에 사람들이 골인할 수 있도록 이끄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호놀룰루 마라톤에서도 페이스메이커들을 정말 쉽게 알아볼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페이스메이커는 유카타를 입고 맨발로 일본 전통 조리를 신고 달리던 한 일본인 아저씨였다. 운동화 신고 달리기도 힘든데, 조리라니! 맙소사! 유단자인가? 속도도 일정하게 지침 없이 빠르게 달리면서 같은 그룹의 다른 사람들 속도까지 신경 쓰고 있었다. 조리가 바닥에 닿을 때마다 나는 '딱' 소리가 '하나- 둘! 하나- 둘!' 이렇게 구령을 넣어주는 느낌이었다. 한동안 이 '유단자' 페이스 메이커를 따라서 뛰어보다가 살짝 오르막길에서 난 다시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분명히 그 그룹을 따라갔으면 기록은 더 좋게 나왔겠지만,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걸 어쩐담.


마라톤에 참여 안 하는 오아후 주민들 중에서 응원 나온 분들도 계셨다. 잘 모르는 타인에게 '할 수 있다' 혹은 '조금만 더 힘내!' 이런 응원들을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참 대단했다. 새벽부터 시작하는 마라톤 행사이기 때문에 잠을 선택할 법도 한데, 정말 생기 넘치고 활기차게 응원하셨다. 힐튼 하와이안 빌리지 (Hilton Hawaiian Village Waikiki Beach Resort) 근처를 지나갈 때 큰 고비가 닥쳐왔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었지만, 그동안 달려온 거리를 생각하면 포기하기엔 너무 아까웠다. 이때 낯선 이들의 응원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응원하던 하와이 사람들의 여유로운 마음은 현재도 지니고 살아보려 하지만,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고, 도태되지 않도록 같이 발맞춰 성장해야 하는 이곳에서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문득 하와이가 생각나는 것은 이 마음의 여유로움이 그리워서 그런 건 아닐까.


무사히 첫 10K를 다 완주했다.


새로운 도전을 다 해 냈다는 희열감과 발목 부상 없이 무사히 완주했다는 안도감이 너무 좋았다. 사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행복감이었다. 나의 자신감도 한발 짝 더 성장한 느낌도 들었다. 맑은 코발트 색의 하와이 바다를 실컷 온몸으로 느끼며 떠오르는 해와 같이 달린 것 자체가 내 인생에서 두 번 다시없을 낭만적인 순간으로 각인되었다. 내가 언제 또 하와이의 자연을 만끽하면서 달려볼 수 있을까.


골인 지점에서는 다양한 상점들도 있고, 특정 멤버십 소유자나 달리기 동호회 회원들을 위한 휴식 공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제일 인기 만점은 역시 음식 부스였다. 긴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갓 튀긴 오리지널 말라사다 ¹ 를 먹을 수 있었다. 달리고 난 뒤에 일출의 기운을 느끼며 먹는 말라사다의 맛은 정말 꿀맛이었다. 사서 먹는 것과는 또 다른 맛이었다. 솜사탕이 입 안에서 녹아내리는 느낌과 비슷했던 것 같다. 아름다운 하와이의 풍경 속을 뛰어보고, 입에서 살살 녹는 말라사다를 또 먹어보기 위해 매년 12월에는 오아후 섬으로 돌아가 호놀룰루 마라톤에 참가하고 싶어졌다. 어쩌면 이 그림이 유독 더 노랗게 보이는 이유는 이 말라사다가 그리운 마음이 투영된 것 같다. 언젠가 다시 달리러 오아후 섬으로 갈 수 있는 그날이 오길 바라.


트로피칼 새벽 일출 (2021) 91.3 x 117 cm, 판넬에 종이, 파스텔, 아크릴
달리기가 끝난 후 만끽하는 여유로운 아침바다 (ft. 저 멀리 보이는 다이아몬드 헤드)


1. 말라사다:

개인적으로 말라사다를 먹으러 다시 하와이 가고 싶을 정도로 생각나는 디저트이다.

이 디저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적어두려 한다.


레너즈 베이커리 (Leonard's Bakery)에서 파는 말라사다(Malasada)는 우리 주변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시장 튀긴 도넛처럼 보이지만, 시장 튀긴 도넛과는 또 다른 맛있는 맛이 있다. '평범하게 맛있다'라는 표현이 정말 잘 어울리는 포르투갈의 Shrove Tuesday 디저트이다. 가톨릭에서는 사순시기가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 (Ash Wednesday) 전날을 Shrove Tuesday라고 부르는데, Mardi Gras 혹은 Pancake Day라고 부르기도 한다. Shrove Tuesday는 우리네에겐 '참회의 화요일' 이란 익숙한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고난을 묵상하는 기간인 고난 주난, 즉 사순절 (Lent)이 시작하기 전의 마지막 날에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들을 많이 먹기 때문에 '기름진 화요일' 이라고도 한다.  


말라사다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 오리지널 말라사다는 동그란 모양의 튀긴 도넛에 하얀 설탕이 묻어있는데, 나는 갓 튀긴 오리지널 맛이 제일 맛있었다. 레너즈 베이커리에는 오리지널뿐만 아니라 다양한 맛의 말라사다도 있었다. 시나몬 슈거, 커스터드(custard), 마카다미아 넛, 구아바, Dobash (초콜릿), Li Hing (리힝), 그리고 Haupia (하우피아) 맛이 있었다. 시나몬 슈거 말라사다를 제외한 다양한 맛의 말라사다 안에는 필링 (filling)이라고도 불리기도 하는 크림이 들어가 있었다.

이전 11화 분홍 달빛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