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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深淵) 속을 소요(逍遙)하다

폭풍우가 내린 후 2

폭풍우가 지난 후 2 (2021), 132 x 93 cm, 한지에 아크릴


Abyss (심연(深淵) ¹).

Abyss란 영어 단어의 어원을 살펴보면 고대 그리스어인 'a- (without, ~없이)'와 'bussos (depth, 깊이)' 혹은 'byssos (bottom, 바닥)'가 만나 abussos라는 바닥이 없는(bottomless)이란 뜻을 가진 그리스어 단어가 만들어졌고, 영어권으로 오게 되면서 'abyss'란 단어로 변하게 되었다. bussos(깊이)와 byssos(바닥)은 견해 차로 보인다. 깊이가 없든 바닥이 없든, 나에게 단어의 어원으로 연상되는 이미지는 딱 하나다. 

끝을 도무지 알 수 없는 깊고 싶은 심해 속. 


Abyss 곡은  BTS 진이 번아웃 왔을  만든 곡이라 다. 심연(深淵) 속을 소요(逍遙)하는 ² 느낌이 개인적으로 딱 번아웃 왔을 때의 느낌인지라 제목에서부터 공감이 갔다. 제목에 이끌려 노래 ³ 를 계속 듣다 보면 어느 순간 정말 깊은 바닷속에 있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노래 분위기가 마냥 무겁지많은 않고 밝다. 번아웃이 왔지만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천천히 나아가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많이 아끼고 좋아하고 사랑하는 장소가 있다. 한 가지 힌트를 적어두자면 이 장소에서는 남산타워가 바로 보인다. 기분 좋은 바람이 한들한들 부는 건 덤이다. 남산타워가 계절과 날씨의 변화를 오롯이 담아내고 있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현대적인 동양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하다. 그저 바라만 봐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참 좋다. 2021년 어느 봄날, 안개비가 자욱하게 내려앉아있었다. 


Abyss란 곡을 들으며 가만히 남산타워를 바라보고 있자니, 현실 속 깊은 바닷속에 들어와 있는 듯했다. 때마침 그림 작업 때문인지, 아니면 바뀐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힘들어서인지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나 또한 심연 속을 거닐고 있었다는 것이다. 참 배부른 고민처럼 보일 수 있겠다. 하지만, 이제 사회 속의 어엿한 어른이 된 또래들처럼 성숙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함과 이상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의 균형을 잘 맞추는 것이 이젠 익숙해질 법도 한데 매 순간 어렵다. 나잇값 못하는 철부지인 나의 속내는 종종 꽤 많이 복잡해지거나 예민해지곤 한다. 


'애정 하는⁴' 곳에서 그 노래를 듣다 보니 심연 속을 소요하던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신기했다. 생각해보면 깊은 바닷속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어 두렵기도 하지만, The Little Mermaid (디즈니 만화영화, 인어공주)에 나오는 세바스찬이 'Under the Sea'를 어디선가 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번아웃도 비슷한 것 같다. 한번 번아웃 속에 들어오면 처음엔 당황스럽고 막막할지라도, 천천히 내 안이 비워졌음을 받아들이고 다시 그 속을 재미있는 것들로 찬찬히 채우다 보면 어느 순간 다시 원래 궤도를 되찾음과 동시에 한 발짝 더 성장해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다양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만큼, 개개인의 심연은 가지각색의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심해 같은 심연 속에서 헤매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내 그림을 통하여 자유롭고 재미있게 소요하다 다시 일상으로 활기차게 돌아올 수 있으면 한다.




1. 심연(深淵)

: ㄱ. 깊은 못

: ㄴ. 좀처럼 빠져나오기 힘든 구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ㄷ. 뛰어넘을 수 없는 깊은 간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2. 소요(逍遙)하다: 자유롭게 이리저리 슬슬 거닐며 돌아다니다.


3. https://www.youtube.com/watch?v=aqtSOksH-NE

4. 애정 하다: (신조어) 아끼고 좋아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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