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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이폰 커피

매력적인 보글보글 사운드

대학생 시절, 나에게 커피란  을 깨기 위한 카페인 '덩어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보통 잠을 깨고 할 일을 하고 싶을 때는 Redbull (레드불) 같은 에너지 드링크를 찾는다. 나도 풍문으로 들은 Redbull의 유명한 효험에 기대어보고 싶은 마음에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딱 한번 마셔봤다. 가슴은 콩닥콩닥 미친 듯이 뛰다가 잠이 더 쏟아져서 잠을 깨우는데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론 더더욱 커피를 내 몸속으로 들이부으며 학교를 다녔다. 커피에 다양한 맛이 있다는 것은 당연히 모르던 시기였다.


커피의 맛을 알게 된 건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2017년부터 하와이에서 코나 커피를 접하게 되면서부터이다. 세계 3대 커피 중 하나로 손꼽히는 코나 커피 동네답게 커피 맛도 어느 곳을 가든 다 일품이었다. 처음엔 신맛이 낯설었지만, 마셔볼수록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신맛이었다. 매력적이었다. 어느 날은 과일 맛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부드러운 코코넛 향도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열대 바다를 품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냥 씁쓸하게 탄 맛만 있는 것이 아니라 와인처럼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다니, 그 자체로도 이미 커피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얼마나 맛없게 그리고 멋없게 커피를 마셨던가. 에휴......


오늘 소개할 카페는 와이키키에 있는 와이키키 스타벅스 리저브 (Kuhio and Seaside - Reserve Bar: Starbucks Coffee Company) 매장이다. 이 리저브 매장은 보통 리저브 매장들에 비하면 작은 규모에 속한다. 굿즈 구경엔 진심인 나는 먼저 하와이 특별 에디션 굿즈들에 매번 시선을 사로잡히곤 했다. 영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바리스타들이 커피 내리는 것을 볼 수 있는 일인용 의자들이 있는 리저브 바 테이블이 있다. 주말이 되면 1, 2학년엔 과제 및 시험, 3학년 땐 논문 쓰다 골치가 아파올 때면, 그리고 괜히 바닷바람도 쐬고 싶을 땐, 잠시 버스 타고 와이키키로 나갔다 ¹. 바다도 보고 바로 이 와이키키 스타벅스 리저브에 와, 바 테이블에 앉아서 이것저것 구경하며 기분 전환하곤 했다. 내가 참 좋아하던 바 테이블이었다.


이 매장엔 보기 힘든 특별한 메뉴인 사이폰 (사이펀) 커피 (Siphon Coffee)가 있었다. 이 커피를 추출할 때 사용하는 비커는 잘 깨지기 때문에 신경을 써서 잘 관리해야 하고, 추출방법 자체도 비교적 까다로워 이 커피를 내리는 곳이 별로 없다고 한다. 내 기억엔 그 당시의 사이폰 커피 값이 25달러 선이었다. 빠듯한 대학원생 주머니 사정으로는 선뜻 사 마셔볼 수 없는 가격이었다. 사이폰 커피란 무엇인지 혼자 궁금해하던 많은 나날들이 여지없이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참 운이 좋은 날이 찾아왔다. 그날도 여느 주말과 다름없이, 내가 좋아하는 리저브 바 테이블로 가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가볍게 기분 전환하고 있었다. 그때, 어느 젊은 중국인 부부 (아마도 신혼부부)가 사이폰 커피를 주문했다. 그 부부와 바리스타에게 나도 같이 커피 추출하는 과정을 구경만 해도 되는지 미리 양해를 구했고, 다들 흔쾌히 승낙했다.

사이폰 커피 추출과정은 필터를 백열등 전구 모양같이 생긴 유리병에 넣고, 물을 끓인 다음, 아주 고운 원두 가루로 조심스럽게 저어가며 커피를 추출한다 ². 향도 보통의 커피들과는 달리 정말 은은하게 좋았다. 물이 끓고 커피가 나오는 과정에서 나는 소리마저 너무 매력적이었다. 하염없이 보글보글 하는 소리를 바라봤다. 졸업하고 나면 이 커피를 꼭 시켜봐야지 생각했었는데, 결국 마셔보지도 못하고 한국에 들어왔다. 언젠가 다시 하와이로 여행가게 된다면, 꼭 이 매장에 가서 사이폰 커피 시켜보고 싶단 작은 소망을 마음에 품고 다시 나의 현실로 돌아온다.


보글보글 소리가 스타벅스 배경음악에 묻혔지만, 배경음악이랑 보글보글 올라오는 모양이 잘 어울어진다.



1. 하와이주립대학교 미술 석사 과정은 3년 과정이다. 버스 타고 2-30분 정도만 나가면 바다를 볼 수 있었던 점은 그 당시에도 졸업하고 나면 참 그리울 것 같단 느낌이 들었다. 역시나, 지금도 쓱 가볍게 바다 보러 갈 수 있던 것이 참 그립다.


2. 이 과정은 짧은 영상으로 보면 더 잘 이해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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