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Hale Lani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5. 소소한 과일 여행기, 납작 복숭아

수줍은 분홍색

이 과일은 영어로는 Flat peach, Doughnut (Donut) peach, 혹은 Saturn peach라고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Donut Peach란 이름을 더 좋아했다. 여름에 유럽 여행을 다녀온 분들은 '어? 이거 유럽에서 파는 과일인데?' 하실 것 같다. 그러면서 분명히 '왜 하와이에 이게 있어?'라는 궁금증이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 같다. 지상낙원인 하와이에는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오기 때문에 외국 식자료를 생각보다 쉽게 구할 수 있다. 한국에서 배가 나오기 시작하면 돈키호테를 비롯하여 다양한 마트에서 '한국 농협 배'를 쉽게 구할 수 있다. 수줍은 듯 발그레한 분홍색을 띠는 납작한 복숭아도 이렇게 오아후 섬에 들어오는 것이 아닐까. 


껍질은 부드러워 벗겨내기가 수월했고, 속은 담백하게 달았다. 버스 타고 장 보러 갔다가 이 복숭아를 사 오는 날에는 제일 먼저 냉장고에 복숭아를 넣어서 시원하게 한 뒤, 먹기 좋도록 한 입 크기로 잘라먹었다. 한 입 크기로 자른 복숭아의 크기도 아담해서 눈으로 보는 재미도 솔솔 했다. 시원하게 된 납작 복숭아 한 입에 얼음을 잔뜩 넣은 탄산수 한 잔을 마시며 바라보는 강렬한 원색으로 물들어가는 트로피칼 노을. 인생이 별 건가. 이렇게 하루의 끝을 소소하게 힐링하며 마무리하면 그만이지 싶었다. 


하와이 탈출기를 찍고 나서 한국에 정착한 지 꽤 시간이 지난 것 같아도 벌써부터 괜히 이번 여름엔 먹을 수 있으려나 벌써부터 기다리게 된다. 작년에 잼 형태로 여름에 잠깐 시중에 판매되던 것을 본 적이 있지만, 아직은 쉽게 볼 수 없는 과일이다. 납작 복숭아는 대략 5월 말 혹은 6월 초 그즈음부터 8월 초 즈음까지만 나왔었다. 납작 복숭아가 마트에서 사라지면 그다음 해의 5월 말을 기다리며 다른 과일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일 년을 기다리는 것. 이것이 제철 과일만이 줄 수 있는 아날로그 미미(美味) 매력이다. 과학 기술이 발전해서 특정 계절에만 먹을 수 있는 과일들도 사시사철 쉽게 만날 수 있다지만, 제철 과일을 기다리고 먹는 아날로그의 맛은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한번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4. 소소한 카페 탐방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