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베란다

by 알로

첫 자취는 기숙사였다. 일본 가나가와현 사가미오노라는 고즈넉하고 조용한 마을의 사설 기숙사. 내 방은 작지만 아늑했다. 416호. 복도 가장 끝방이었다. 그래서 창문이 두 개였다. 카도베야(角部屋)라고 부르는 이 끝방은 누군가에겐 추워서 단점이고 창을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겐 장점인 방이다.


방문을 열면 작은 신발장이, 신발을 벗고 한층 올라서면 오른쪽에 화장실, 왼쪽엔 벽장이 있다. 한국에서 가져온 트렁크와 부피가 큰 겨울옷, 가지런히 개어둔 여름옷을 넣어둘 공간이 있었다. 나름의 복도식 (성인 보폭으로 두 걸음) 인 그 통로를 지나면 다시 한 층 내려와 내 방에 도착한다. 책상이 있고 침대가 있고 성인 서너명 정도가 앉아있을 수 있는 작지만 나에겐 딱 알맞는 크기였다.


나만의 공간을 처음 얻은 그곳에서 가장 마음이 편했던 건 방구석이 아닌 베란다였다. 빨래를 널고 석양을 보던 곳. 방 안에서 과제를 하다 답답하면 한숨 돌리러 나가던 곳. 좁은 방구석보다도 훨씬 더 좁은 공간이었지만 가장 마음이 편했다. 베란다라고 해서 화분을 키운다거나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담소를 나눈다거나 할 정도의 공간은 아니었다. 난간에 기대어 맞은편 멘션을 바라보고 조용히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기엔 충분히 넓은 공간이었지만.


그 베란다에 쭈그리고 앉아 울었던 나날이 있었다. 지금은 생각도 나지 않는 자잘한 것들. 처음 혼자 살게 되고 나서 입학을 앞둔 며칠 전쯤 장대 같은 비가 쏟아져내렸다. 인터넷 연결도 안 된 상태. 핸드폰도 만들지 않은 상황. 조금 야무진 19살이었다면 책상에 얌전히 앉아 일본어 공부라도 했겠지만 난 그날따라 외로웠고 한국에 가고 싶었고 하필 내리는 비가 야속했다. 베란다에 한참을 서있었다. 결심이라도 한 듯 우산을 들고나가 기숙사 앞 편의점에서 국제전화카드를 샀고 공중전화로 한국에 연락했던 기억이 난다. 그날 이후로 베란다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공간이 됐다.


일찍 수업이 끝난 날은 집에 돌아와서 빨래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좋아하는 섬유연제를 넣고 향이 물씬 올라오는 젖은 빨래를 탈탈 털어 빨랫줄에 널고 지는 해를 보며 잘 살고 있나? 생각하는 시간.


2011년 지진이 났던 날. TV가 없던 탓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 채 마냥 카톡만 붙들고 있던 일주일. 언제 또 지진이 날지 몰라 샤워도 칼같이 1분 만에 끝냈던 나날. 대부분의 시간을 베란다에서 보냈다. 구역마다 돌아가며 정전을 자처하던(?) 때였다. 정말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력을 끌어주겠다는 도쿄전력의 방침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평상시완 달리 작은 불빛조차 보이지 않는 캄캄한 마을을 베란다에서 몇 시간이고 봤던 기억. 조금이라도 흔들림이 감지되면 맞은편 멘션에선 "지진이다"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TV보다 휴대폰으로 날아드는 연락이나 기사보다 누군가의 비명으로 훨씬 지진을 적나라하게 체감했다. 맞은편 멘션에 사는 사람들이 대피하면 따라 나갈 기세로 베란다에 서있었다.


유학을 하다 보면 사정이 생겨 급하게 돌아가는 친구도. 적성에 맞지 않다고 유학을 접는 친구도. 빠칭코로 학비를 날려 우울해하는 친구도. 모두가 시작처럼 빛나는 길을 걷는 건 아니었고 그렇게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마다 난 베란다를 찾았다. 그래서 베란다는 나에게 남다르다.


오키나와 출장지는 북부의 한 시골마을. 흔히들 찾는 관광지가 아니다 보니 관광객이 묵을 데도 마땅치 않은 데다 출장비로 충당할 수 있는 고급 호텔을 제외하면 사실 숙박을 할 곳이 마땅치 않다. 우여곡절 끝에 얻은 숙소는 여느 비지니스 호텔과는 달리 이 마을에 일이 있어 잠시 묵었다 가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인 듯싶다. 외국인보단 현지인이 많고 호텔처럼 청소나 시설에 대한 서비스는 미흡한 대신 정말 사람이 살아가는 듯한 공간. 그곳에 베란다가 있었다.


정월대보름이라고 소원을 빌라며 아빠로부터 날아든 카톡에 어디 한 번 달구경 좀 해보자는 마음으로 나간 베란다가. 하필 내가 첫 자취생활 때 가장 마음을 주고 지냈던 그 공간과 너무도 비슷해서 또다시 한참을 서있었다. 지진 발생 시 대피용으로 만든 임시 벽, 빗물이 고이지 않고 흘러가게 만든 수로, 몸을 반쯤 기댈 수 있는 난간. 일본의 원룸은 다 이런 식인가 싶을 정도로 똑같은 모습에 새삼 놀랐다.


다른 듯 비슷한 공간에서 같은 듯 달라진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만난 기분이다. 그때 그 시절 많은 시간을 베란다에서 보냈던 것처럼 오늘도 저 좁은 공간에서 한참 동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때는 고민과 외로움, 공포, 두려움의 시간으로 가득 찼다면 오늘은 그때의 나에게 위로를 건네는 시간으로 가득 메웠다.


안개같이 생긴 시커먼 구름 사이로 보였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면서도 선명하게 맑은 빛을 뿜어내는 보름달처럼 때론 가려지기도 하고 드러나기도 하면서 살아지는 내 인생처럼. 그렇게 오늘도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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