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저기 풍선이 왔다 갔다 해요. 바람 불면 이쪽에 빼꼼 보였다가 또 사라졌다가. 그거 보고 알아요. 아, 저기였지"
세월호 다큐영화 촬영 현장, 조도를 찾았던 날. 선착장에서 우리를 주워주신(?) 택시 기사님이 그랬다. 저쪽에 보이는 게 동거차도예요. 저기 방금 풍선 봤어요? 거기가 세월호 침몰한 지점인데 지금은 아무것도 없거든요. 근데 표시는 계속해두기로 했나 봐요.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비단 연인 사이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닌가 보다. 매일같이 보고 듣고 만나 익숙해졌던 존재도 안 보고 안 듣고 안 만나면 잊히는 건가 보다. 조도의 어민들은 세월호 침몰 당시 직접 배를 타고 나가 아이들을 건져 올렸다. 누가 시켜서 한 건 아니었다. 2014년에서 2020년이 되기까지 6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어민들에겐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했다. 잊고 싶지만 되새길 수밖에 없는 기억. 그 조용하던 마을에 난데없이 중계차가 빼곡하게 들어섰다. 밤이면 캄캄하고 고요했던 마을 위로 조명탄이 타올랐고 외지 사람들이 오가기 시작하면서 고요함은 사라졌다. 세월호가 목포신항으로 올라오고도 팽목항을 지키는 이들이 있었다. 내 가족이 생을 마감한 곳에서 되도록이면 떨어지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육지의 끝. 유가족도 어민들도 그렇게 세월호를 기억하고 있었다.
나카무라 씨는 1944년 당시 15살이었다. 올해 일본 나이로 91세. 인터뷰 도중 건전지가 다 됐다며 보청기 배터리를 갈아 끼웠다. 나이 먹은 사람들은 피곤하죠? 기다리는 우리를 보며 멋쩍게 웃는 그였지만 그 어디에서도 아흔한 살이라는 나이를 실감할 수 있는 요소는 없었다.
그는 일본의 특수부대 모집공고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미국의 공습으로 주민이 사라진 마을엔 주둔하는 군인들과 그처럼 군입대를 앞둔 젊은이들만이 남아있었다. 어느 날은 해변가에서 불을 지피고 있는 걸 보았다. 한쪽엔 시신이 가득했다. 오키나와에선 죽은 이를 화장하는 문화가 없다. 수북이 쌓인 목재를 보며 저 시신들을 화장할 거란 걸 그는 직감했다고 한다. 그래서 오키나와 유골 발굴 취재가 시작됐을 때 그의 집은 전 세계 취재진들이 너도나도 드나드는 단골집이 되었다. 화장 현장의 목격자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오늘 유골 발굴이 진행됐던 현장 10초 거리에 그의 집이 있다.
취재하러 온 사람들은 많지만 히코산마루가 침몰한 해역에 간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요. 일본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죽은 지점에서 영혼이 사라진다는 말이 있어요. 그 장소가 중요한 거예요. 취재를 하러 온 사람들은 증언을 듣고 자료를 찾아 헤매지만, 정작 그 사람이 생을 마감한 장소가 어딘지엔 관심이 없어요. 헌화를 하고 기도를 바치는 게 상식 아닌가요? 인정 아닌가요? 가족이면 그렇게 하겠죠. 근데 조선사람이 두명 있잖아요. 한국엔 그런 문화가 없어요? 그래도 당신들이 이해가 가긴 해.
그렇다. 우리를 비롯한 취재진들은 그 어느 누구도 히코산마루가 어디에서 침몰했는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니, 관심을 둔다는 표현은 좀 이상하고. 취재 차원에서 접근한 건 맞지만 그곳까지 배를 타고 나가 이곳에서 침몰했구나.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을까. 이곳이었구나. 되뇌일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구구절절 맞는 말만 해오는 나카무라 씨 앞에서 난 할 말이 없었다.
가족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6년 키운 반려견 하루가 세상을 떴을 때도 그리고 8개월이 지난 요즘에도 집에 들어설 때면 빈 하루의 집보다 하루가 엎드린 채 마지막으로 날 바라보다 세상을 떠났던 그 자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건 본능이다.
강제 동원됐던 조선인 두 명의 유골 발굴작업은 사진 한 장에서 비롯됐다. 아무런 기록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서 차곡차곡 쌓여가는 증언들은 엇갈리고 당시 목격자와 생존자는 이 세상을 떠나가고 있다. 결국 변하지 않는 증거, 사진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건데 그 사진은 짐작에 대한 힌트를 줄 뿐 그 어떤 팩트도 확인할 길이 없다.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된 발굴작업에 동아시아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모여들었다. 호미를 들고 삽을 들고 목청을 높이며 작업 하나하나를 해치워나갔다. 그렇게 기록되는 것이었다. 현존하는 모든 진실, 이라 불리는 것들은.
AI가 대부분의 직업을 앗아갈 거라며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겨냈다며 더 이상 사람이 힘과 능력으로 해낼 수 있는 게 있을까? 의문이 드는 요즘 시대 이 시점에 위안이 되는 게 있다면 마음이다. 유골이 발굴돼서 고향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 내일은 발견됐으면 바라는 마음, 내 자식과 가까이 있으면 뼛조각 하나라도 나오지 않을까 간절한 마음. 사실 이 취재는 그런 마음으로 했어야 하는 거였다. 부끄러웠다. 짧은 출장이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