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너와 나의 이야기
육아휴직 중인 34살의 그녀가 말한다.
그녀에겐 6개월 된 딸내미가 있다.
"난 진짜 안 그러려고 하는데 남편을 보면 화가 나는 거야 괜히. 난리 치다가 좀 가라앉아서 '나 우울증인가 봐' 그러면 남편이 그제야 '응, 그런 것 같아' 하는데 미안하기도 하고(웃음). 아기랑 둘이 집에 있으면 우울해져. 어른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나은데. 그래서 내년부터 남편도 육아 휴직할 것 같아. 나도 1년 더할까 생각 중이고."
맞은편에 앉은 그가 말한다. 곧 1년짜리 육아휴직을 앞두고 있는 13개월 딸내미 아빠다.
"그래. 2인 1조가 되면 최고 좋지. 한 달이라도 부부가 같이 돌보는 건 의미가 있어. 그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건 엄청난 거야. 내가 애기 목욕시키고 있으면 와이프가 수건 깔아주고. 내가 수건으로 닦고 있으면 와이프가 우유 타고(웃음). 육아는 끊임없이 돌아가는 거거든. 같이 하면 훨씬 좋지."
옆에서 듣고 있던 그녀가 조심스레 말한다.
갓 결혼한 30대 초반 새댁이다.
"나는 언제 아이를 가져야 할지 모르겠어. 내가 감정적으로 괜찮을 때 준비가 됐을 때 갖고 싶은데 하도 노산이다 어쩐다 하니까 괜히 걱정돼서. 집도 없는데 애까지 생기면 모아놓은 돈도 없는데 어떻게 사나 싶기도 하고. 첫째는 가지고 싶은데 둘째는 경력 단절이 걱정되기도 하고."
가만히 듣고 있던 결혼 8년 차 남자가 말한다. 그에겐 6살 된 딸아이가 있다.
"괜찮아. 즐겨. 신혼 때 둘이 노는 게 가장 재밌는 거야. 난 연애할 때도 술을 안 먹었는데 결혼하고 나니까 맨날 안주 만들어서 둘이 술 먹고. 집에 안 데려다줘도 되니까(웃음). 그게 그렇게 좋고 재밌더라고. 그런 게 신혼이지."
와인을 홀짝거리던 여자가 말한다. 아직 미혼인 그녀 역시 30대.
"나에겐 너무 먼 얘기다. 언제 돈 모아서 언제 결혼하고 언제 아기 낳고 언제 집 사지. 산 넘어 산이네(웃음). 결혼이야 어찌어찌한다 치자. 아이는 어떻게 키우고 육아휴직은 어떻게 하지."
술에 취한 그가 말한다. 결혼 14년 차에 아들 넷을 둔 가장.
"그때가 좋을 때야. 난 지금 뭐 하나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살 수가 없어(웃음). 학교 한 번 데려다주고 싶어도 내가 회사에 '저 애좀 데려다주고 출근 늦게 하겠습니다' 보고할 수 있겠니? 지금을 즐겨라. 부럽다."
구석에 있던 그가 말한다. 올 가을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이다.
"나도 육아휴직 쓰고 싶었는데. 예전엔 눈치 보여서 상상도 못 했는데 첫 스타트를 끊어주니까 나도 쓸 수 있겠더라고."
한숨 푹푹 쉬면서 고민을 털어놓던 그들이
입을 모아 말한 건 딱 하나.
"그래도 남편이 생기니까 마음이 편해져서 살이 쪘어. 나 살찌지 않았어?"
"그럼. 결혼이 참 좋아."
"연애할 때랑 신혼은 정말 달라."
이건 극히 일부만이 누릴 수 있는 권리일 거다. 육아휴직은 아직까지 누구에게나 주어진 선택이 아니다. 프리랜서인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돈 잘 버는 프리랜서들이야 조금 여유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육아휴직이라는 개념 자체가 프리랜서에겐 없을뿐더러 어느 정도 기간을 쉬고 나서도 여전히 나를 불러줄지는 미지수다.
이 이야기는 재작년 가을 어느 술자리에서 오갔던 대화를 옮겨 적은 내용이다. 그때의 난 와인잔을 빙빙 돌려가며 저들이 하는 이야기에 언제쯤이면 공감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고민한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저 와인잔만 만지작거렸다. 공허한 눈빛으로. 맞장구치며 웃고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정작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은 단 한 개도 내게 없었다. 권리와 선택이 주어져도 고민은 있구나.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가져도 고민은 또 생기는구나. 정도로만 여겼던 것 같다.
그리고 얼마 전 50대 지인 남성과 식사를 할 일이 있었다. 맛있는 한 끼 후 커피를 홀짝거리며 안부를 주고받는데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이런 이야기하면 꼰대라고 하던데, 혹시 결혼은 할 생각이 있어?" 궁금할 수도 있고 물어볼 수도 있는 이야기를 언제부터 저리도 조심스럽게 물어보게 된 걸까. 웃음이 나온다. 할 생각이 있다고 답했다. 다만 좀 더 안정적인 자리를 찾으면, 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던 그가 응답한다.
"같이 있으면 안정을 찾을 수도 있어. 준비가 되면, 이라는 조건도 중요하지만 같이 준비할 수도 있어. 오히려 그게 서로에게 더 안정감을 줄 수도 있는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고, 조급하게 생각하지도마."
다행이다. 저리 말해주는 어른이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