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건달이 웃고 갈 이야기

취재후기

by 알로

굿이란 내게 거리감이 쪼까 있는 단어였다. 빨갛고 동그란 점 연지곤지 찍은 얼굴, 무서운 눈매, 정신없는 춤사위, 고막이 터질 듯한 꽹과리와 징소리. 실제로 굿판을 본 적도 없다. 그렇다고 딱히 미신이라 생각해본 적도 없다. 우리나라에 예로부터 전해지는 그리고 누군가는 아직도 참여하고 있는 전통의식 같은 것, 정도로만 해석했다.


그래서 였을까. 몇 달 전 진도에 내려가 눈에 담아온 씻김굿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심지어 난 굿판이 열리는 장소에 도착하기 직전까지 무당이 날 보고 내 과거를 꿰뚫어 보면 어떡하지. 나랑 눈 마주쳤을 때 내 고민이 뭔지 알아차리면 어떡하지 등등의 말도 안 되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가수 송가인의 어머니가 무속인이라는 것, 영화 박수건달에 나오는 박수라는 말이 남자 무당을 뜻한다는 것 정도였다. 몰라도 이렇게 모를 수가 없다.


깽깽 쿵덕쿵덕 거리며 도떼기시장 같을 줄 알았던 굿판이 어쩐 일인지 구슬프다. 가야금 소리가 울려 퍼진다. 때론 신명 나는 장구가락도 판소리 특유의 절절함도 전해진다. 생각보다 낯설지 않다. 아니 오히려 편안했다. 전통 악기를 저마다 앞에 둔 청년 중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친구들도 있었다. 무속인에게 직접 물어볼 용기는 없었으니 내가 가진 호기심과 의문점은 그들의 몫이었다. 굿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믿으세요? 어떻게 이해하는 게 좋아요? 자주 다니세요? 거부감은 없으세요? 그는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 표정으로 천진난만하게 말했다.

"이건 소리예요. 하나의 소리라고 생각해요. 저는 소리를 배우러 다니는 사람이라 따라온 거고요."


뒤늦게 들었지만 옆에 있던 동생은 그 대답을 듣고 나서야 한시름 놓았다고 했다. 그녀는 교회를 다니는 독실한 신자다. 내가 진도 좀 가자, 하니 아무 말 않고 따라나섰지만 막상 굿판을 마주하니 지도 새삼 놀랐던 거다. 적잖은 부담이기도 했다고 뒤늦게 털어놓는다. 언니, 판소리라고 생각하니까 또 신선하고 좋네요? 한결 가벼워진듯한 그녀의 표정을 보며 나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마음이 가벼워진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씻김굿. 우리가 그날 봤던 건 진도의 씻김굿이었다. 세월호 희생자와 남겨진 가족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월호에 갇힌 아이들을 구하러 갔던 어민들. 가족의 지인들. 진도에 남은 사람들. 잠수사들. 봉사자들. 침몰하는 순간부터 시간이 흘러 도달한 오늘날까지. 망자와 남겨진 모든 이들을 위해 펼쳐진 굿판이었다. 절이나 성당, 교회 혹은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를 간절히 바랄 때 염원하는 것처럼. 굿이란 그런 면에서 모든 기도와 맥락을 같이 했다. 한편 굿이란 애환을 풀고 누군가의 한을 달래주는 행위라고만 생각했던 편견 또한 깨졌다. 굿을 구경하러 나온 마을 어르신들이 의자를 놓고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자글자글한 주름만큼이나 수줍음이 많으신 할머니들이셨는데 분위기가 무르익고 흥겨운 가락이 마을에 울려 퍼지자 할머니들은 연신 박수를 치며 환호를 보내왔다. '잘 논다'는 것이었다. '흥이 난다'며 춤을 추셨다. 덩달아 흥에 겨운 무속인들도 입꼬리가 올라갔더랬다.


여기서 잠깐 씻김굿에 대한 작은 설명으로 좋아하는 선배의 글을 인용한다.




진도에는 씻김굿이라는 게 있습니다. '씻김'은 전라도 지방의 굿 용어입니다. 망자의 부정을 깨끗이 씻어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천도 의식을 말합니다. 세월호 참사 1백8일째 되던 8월 1일이었습니다. 국립남도 국악원은 저 멀리 세월호가 침몰한 맹골수도의 해역이 보이는 진도의 산기슭에서 씻김굿을 펼쳤습니다. 상복을 입은 무당들이 알 수 없는 말들을 읊조렸고 때론 허공에 소리쳤습니다. 그 어절과 음절의 연속은 종종 음악으로 귀결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일반인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범위의 소리들은 아니었습니다. "망자가 된 세월호 탑승자 3백4명이 저승에서라도 원한을 풀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는 기획자의 해설에 의존했습니다. 다만 씻김굿이 죽음에 대한 인간의 초연한 자세를 예술적 세계로 승화시킨 일종의 샤머니즘이라는 점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끝내지 못한 굿판 中-





그런 와중에 찾아온 아이템이 하필 '굿판'이었다. 부산의 금정산, 오랑대 곳곳에 펼쳐진 굿판으로 민원이 늘어난다는 내용. 제사상에 올렸던 음식은 등산로에 바닷가에 버려진다. 때마침 말린 북어를 버리러 나온 무속인을 만난 기자가 묻는다. 이거 왜 여기에 버리시는 거예요? 그가 내놓은 대답은 참으로 뻔뻔하다. "북어는 왜 던지느냐? 지저분하니까. 난 지금 청소하는 차원에서 던졌고. 불어 터져 밀려와야 새들이 먹을 거 아닌가?"


잘 걸렸다, 싶었다. 굿을 그저 미신으로 생각하는 이들에겐 터무니없는 대답으로 들리기 충분한 인터뷰였다. 뻔뻔하다 못해 파렴치함에 가까운 대답이었다. 어찌 됐든 공공장소에서 굿이라는 예식을 행했다면 발생하는 모든 건 행위자가 책임져야 한다. 갯바위에 서서 북어를 휘이 날려버리면서 한다는 말이 '청소하는 차원에서 던졌다'는 건 어불성설일 수 있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다르다. <고수레>라는 문화가 있다. 사람이 음식을 먹기 전에 조금 떼어 허공에 던지며 '고수레' 하고 외치는 민간신앙 행위다. 해동가요에 수록된 사설시조에도 고수레가 나온다. 오래전부터 신을 섬기면서 축원할 때 쓴 말인 거다. 뱃사람의 안전을 지켜달라는 주언. 소망을 이루게 해 달라는 일종의 기도.


태풍으로 잘려나간 소나무가 지붕을 덮쳐 가지를 잘라내야 했던 날, 아빠는 나무에 막걸리를 뿌렸다. 그건 우리 집 마당 내 우리 소나무였으니 나에겐 소소한 추억거리로 남았지만 같은 행위를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에서 "나무가 아파할 것 같다"며 행한다면 쉬이 용납할 수 없는 변명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아이템을 다룬다는 게 내겐 조금의 부담이 됐었다. 난 굿을 종교적인 의미로 맹신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힘든 누군가에겐 지푸라기가 될 예식일 수 있는 것이 굿이다. 망자의 원통함, 삶의 예찬을 소리로 담아낸 예식이다. 물고기를 많이 잡게 해달라고 비는 풍어제는 지자체에서 예산을 들여 홍보하는 전통문화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 신성하고도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문화'를 희화화시켜도 괜찮을까? 에 대한 불안감이 컸다. 고수레를 하듯 예전부터 산짐승, 들짐승에게 던져주는 것처럼 행해온 행위를 시대가 변했다는 이유로 다그쳐도 되는 걸까.


굿이라는 문화를 오래 보존하려면 시대의 흐름에 맞게 가져가야 한다는 결론점에 도달했다. 공공장소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굿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게 된다는 것. 오랜 전통이자 우리 정서에 익숙한 굿이 선을 넘지 않는 범주에서 시민들과 공존의 길을 찾아갔으면 좋겠다, 로 클로징 멘트를 마무리했던 걸로 기억한다. 누군가의 행복을 기원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눈살 찌푸릴 순간으로 이어지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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