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아니면 없다

취재후기

by 알로

출장을 다니면서 얻은 교훈이 하나 있다면 그건 눈앞에 있을 때 해치워야 한다는 거다. 저 사람 괜찮은 것 같은데, 이따가 인터뷰하자. 돌아보면 없다. 집에 가버렸단다. 수소문해 연락처를 찾아내면 "어쩌죠? 내일부터 해외 일정이 있어요"


점심 먹으러 들렀던 휴게소에서 직장 동료에게 줄만한 기념품이 눈에 들어왔다. 고민하고 있는 내 곁으로 팀원이 다가온다. "도쿄 가면 더 좋은 거 많을 텐데, 뭐하러 굳이 여기서 사요. 나중에 사." 알고 보니 그 기념품 지방 특산품이었다. 동료에겐 지역명이 쓰여있는 콜라병을 선물했다. "저 이거 모으는지 어떻게 알았어요?" 우연히 얻어걸린 기쁨이 있었지만, 그를 똑 닮은 기념품을 사지 못했다는 것엔 후회가 남았다.


"지금 여기 그림 딱 좋은 거 같은데? 한 번 찍고 가지" "좀 더 가면 차 좀 세워두고 할 만한 곳 있지 않을까요? 더 가보죠?" 좀 더 가다 보니 고속도로가 나왔고 도착해보니 다른 지역이었다. 풍경은 우리 마음속에만 남기는 걸로 되어버렸다.


때를 놓친 식사도, 출장 오면 사야겠다 싶었던 물건도, 그림 좋은 풍경도, 괜찮은 인터뷰이도. 모든 건 그 공간과 시간을 벗어나는 순간 내 것이 아니게 된다는 걸 깨달았다. 어찌 보면 출장 가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아까 할 걸" "아까 먹어놓을 걸" "아까, 아까, 아까..." 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번 출장에 같이 간 팀원 중 누구 하나라도 말을 흘리면 곧바로 주워 당장 이행하는 쪽으로 유도했다. 현장이 제한적이라 다소 여유가 있기도 했지만 때 맞춘 식사, 짬날 때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누렸던 건 그때그때 다들 움직여준 덕분이겠다.


생각해보면 모든 일이 그렇다. 지금 아니라도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 거야, 라는 말과 지금 이어야 해, 라는 말. 그 선택지는 언제나 우리 눈앞에 있지만 무엇이 맞을지 정답은 없다. 그래서 1박 2일의 일정으로 일본의 지진방지 대책을 취재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난 살짝 물러섰다. 섭외가 하나도 안 된 상태에서 무작정 간다고 되는 게 아닌데, 무슨 생각으로 밀어붙이는 거지? 해줄 것 같은 뉘앙스지만 끝까지 들어보면 결국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있는 일본 사람들 특유의 화법을 들으며 수화기를 붙잡은 채 이건 너무 급한 출장이다, 어렵다, 만 반복하고 있었다. 같이 가게 된 팀원이 그런다. "에이~ 작가님,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야죠" 그 말이 지금 해당되는 말일까요. 속으로 울부짖으며 그렇다면 한 번 해보자 응했고 다음날 출장팀 세 명이서 고베로 날아갔다.


결과적으로 1박 2일 동안 세 편의 제작물을 만들었다. 팀원들의 노고가 다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린 시간이었지만 여운이 그 어느 때보다 오래 남았던 출장이기도 했다. 그날 이후로 조금은 변한 것 같다, 나도. 물 들어왔을 때 노 젓자던 그 팀원에게도 두고두고 고마웠다. 지금이야! 하고 나아갈 때 뭐라도 변화는 생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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