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17일
퇴근하고 들렀던 교보문고에서 눈에 띄는 책을 발견했다. <인공지능에게 대체되지 않는 나를 만드는 법 에이트>라는 이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오래 붙잡고 있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으로부터 내 직업을 위협받고 있다 느끼는구나.
한때 보도국 내 우스갯소리가 돌았다.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항복했다며 떠들썩했던 때였다. 머지않아 인공지능이 기사도 쓰겠네. 광고도 만들어내고 소설도 쓴다는데 기사를 못 쓸까.
바둑의 세계엔 복기가 있다. 승부가 결정된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기 위해 승자와 판을 정리하며 왜 이런 수를 두었는지 뭐가 잘못됐는지 결정타는 뭐였는지 복기한다. 그 작업이 끝나야 비로소 판은 막을 내린다. 알파고와 결투가 끝나고 이세돌은 애꿎은 바둑돌을 만지작거렸다. 인공지능은 복기를 하지 않았다. 안타까움은 화면을 지켜보던 이들의 몫이었다. 누군가는 생각했을 것이다. 저건 인간이니까 할 수 있는 거다. 더는 못 볼 정도로 안쓰러웠던 마지막 장면은 그렇게 심금을 울렸다.
벌써 몇 년 전인지 모르겠다. 모 기관의 일본어 통번역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했던 적이 있다. 3차는 실기시험이었다. 전문통번역대학원을 나오지 않았지만, 뉘앙스 통역만큼은 자신 있었다. 오만에 가까웠던 그 자신감은 듣기 평가가 진행되는 20분 동안 산산조각 났다. 일본어 듣기 10분, 한국어 듣기 10분. 총 20분의 분량을 한국어와 일본어로 번역하는 작업이었다. 이제 좀 적어볼까? 하는데 제출하란다. 자신 있게 답안지를 번쩍 드는 앞자리 사람들. 힐끔 보니 생전 본 적도 없는 기호들이 적혀있었다. 그들은 특정 기간 동안 특수교육으로 단련된 '통역가'들이었던 거다. 나처럼 구질구질하게 한국어로 메모해놓지 않아도 문장 몇 개쯤은 술술 뱉어낼 수 있게 함축시켜놓은 기호. 그 기호가 없이 동시통역을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난 그 날 그렇게 깨달았다.
통역사가 되고 싶었던 나에게 선택권은 두 가지가 있었다. 일본 이문화 전공자로 이론을 배우느냐, 한국에서 통번역 전공자로 실무를 배우느냐. 난 전자를 택했다. 이왕 일본어를 공부한다면 일본에 있는 게 훨씬 낫다고 판단했고, 실무보단 이론을 이해하는 게 더 우선이라 믿었다. 뉘앙스를 안다는 건 문화를 알아야 하는 것이니 로컬 문화를 접하는 일에 집중했다. 결과적으로 선택에 대한 후회는 없다. 이따금씩 출장길에 오를 때마다 난생처음 보는 분야를 취재할 때마다 눈앞이 캄캄해지지만 좋아하는 일이다 보니 질리지 않는다. 시험 날, 텅 빈 내 답안지를 부들부들 떨며 제출할 때 느꼈던 부끄러움은 아직도 생생하지만.
나와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서 통번역 전공자로 졸업한 일본 친구는 전문 통번역의 길로 접어들었다. 회사에서 일본어 통번역이 필요할 때마다 그녀를 통해 일해줄 사람을 구하곤 하는데, 그네들이 부르는 값은 수십만 원을 넘어간다. 회사에선 부담이 된다며 일을 맡기지 못한다. 조금 가격을 낮춰줄 수 있냐 부탁하면 "교수님이 절대 외부에서 일할 때 가격을 낮추지 말라했다"며 곤란해한다. 고인력인 만큼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건 당연한 말인데,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친구를 보면 가끔은 안쓰럽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 팀의 통역을 도맡았던 샤론 최가 연일 화제였다. 그녀는 통번역 전문가가 아니었다. 스물다섯 살. 외고 졸업 후 미국에서 유학했다 한다. 봉준호는 마이크에 대고 외쳤다. 그는 세계 최고의 통역사예요! 그녀가 걸어온 길에 '전문 통역사'라는 목표가 있었을지 궁금하다. 그녀의 자연스러운 통역은 봉준호에 대한 애정, 영화에 대한 사랑과 풍부한 지식, 감각, 센스가 큰 몫을 했다고 한다. 통역해낸 문장들만 봐도 이건 책을 백날 외운다한들 표현할 수 있는 범주가 아니다.
전문성이라는 건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인공지능이 침범하지 못할 영역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막막해지는 대신 더 밝은 미래가 다가온 느낌이다.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의 내 것을 세상에서 가장 즐기는 것. 그리고 꾸준히 하는 것. 이미 봉준호 감독이 말해주었다.
“the most personal is the most creative.”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