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21일
대학교 1학년 때였다.
도쿄의 한 식당이었다.
초여름 저녁이었다.
이제 갓 친해진 사람들과 가졌던 식사자리였다.
개중 누군가 대뜸 내게 물었다.
"정말 미안한데, 너한테는 진짜 실례되는 이야긴데. 한국이 어디 붙어있는 나라야?"
"붙어있다니 말이 뭐 그러냐. 한국 일본 옆에 있잖아."
옆자리 친구가 말을 가로막자 핀잔을 받은 장본인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을 사용했더라면 생기지도 않았을 대화겠지만 그땐 2G폰이었다. 지도를 찾아본다던가 유튜브로 한국을 검색한다는 건 상상도 못했을 때였다.
보여줄 수 없으니 그려줬다.
"여기가 일본이잖아. 이쪽에 있어. 윗쪽은 중국이야"
"가깝네?"
일본애들은 듣던대로 바깥 세상에 관심이 없군
얘는 무식하게 한국이 어디있는지도 모르나
이것도 자랑이라고 질문하나
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일본애들은 한국이 어딨는지 몰라도 스무살이 될 수 있다는 게 새삼 놀라웠을 뿐이었다. 훗날 이 이야기를 한국의 지인들에게 해주었지만, 아무도 믿으려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부터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까지 북해도에서 지냈다. 엄마가 슬라브연구센터에 연구자로 있었고 난 따라갔다. 동네 소학교를 다녔다. 북해도에 국제학교가 있을리 만무했고 있다고 해도 IMF로 없는 돈 쪼개 단칸방 지내던 시절이라 학비를 내지 못했을 거다.
중학교 갓 입학했을 때 일본어, 사회, 역사, 과학 그 모든 과목에서 뒤쳐지던 내가 유일하게 기를 펼 수 있는 건 영어시간이었다. 내가 영어를 잘해서가 아니었다. 첫 수업 때 알파벳 a,b,c를 배웠다. 엄밀히 말하자면 a,b,c의 필기체를 따라쓰는 수업이었다. 여름방학 끝나고 귀국했을 때 한국의 중학교에선 이미 장문 독해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때도 생각했다. 일본 애들은 중학교 1학년 때 에이 비 씨를 배워도 취직해서 잘 살 수 있는가보다.
알파벳 수업 덕분이었겠다. 한국이 어딨는지 모르겠다며 머리를 벅벅 긁는 아이의 질문이 기분나쁘지 않았던 건. 오히려 이해가 갔던 것 같다. 바득바득 외국어고 뭐고 머릿속에 집어넣기 바쁜 학창시절을 보내는 우리완 달리 일본 애들은 아주 기본적인 것만 익혀도 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니. 한국이 어딨는지 몰라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구나. 내수가 탄탄한 나라는 원래 이런 건가.
삶의 속도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