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중요한 질문이었다
그녀는 나보다 세 살이 많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녀는 아름답다. 모든 게 완벽해 보이지만 때론 여리고 때론 소심하고 심술을 내기도 한다. 매사에 열심이다. 곱고 예쁜 얼굴에 검은 숯덩이 잔뜩 묻히고도 카메라 앞에서 당당하다. 현장에서도 서슴 없다. 최선을 다해 있는 힘을 다 끌어올린다. 그렇게 매번 씩씩하게 부딪히는 그녀를 좋아했다. 아이템 한 개를 마칠 때마다 탈진하듯 사무실로 돌아오는 그녀의 모습을 흠모하다시피 했다. 요령 따윈 모르고 살아온 사람처럼 열심인 사람을 난 좋아한다.
그런 그녀에겐 태어난 지 몇 개월 안 된 아기가 있다. 매일 이름을 따뜻하게 불러주는 자상한 남편이 있다.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한 일터가 있다. 여전히 고민 많고 생각도 많은 10년 차 직장인이지만 내가 걸어보지 못한 인생을 먼저 걷고 있는 그녀다. 그래서 궁금한 것도 많고 닮고 싶은 부분도 많다. 간만에 그녀와 저녁을 함께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돌고 돌아온 종착지는 연애사였다.
"여행을 갔을 때였어요.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벌써 와도 되나. 이보다 좋은 곳은 이제 없을 것 같은데, 내가 너무 빨리 와버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예쁜 곳이었어요. 남자 친구가 그날을 위해 노력을 많이 했거든요. 최선을 다했어요. 좋은 곳도 예약해주고 다 찾아봐서 가이드해주고. 모든 환경이 완벽했어요. 근데 말이죠. 식사를 하는데 대화가 끊기는 거예요. 딱히 싸우거나 할 말이 없거나 한 게 아닌데. 그냥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도 할 말이 없어서 끊겨버리는 거예요, 대화가. 그때 느꼈어요. 아니구나. 이렇게 최상의 조건 속해서도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사람이라면 현실로 돌아갔을 때. 현실은 더 질퍽질퍽할 텐데 그때는..."
나는 이미 대화가 끊겼다는 대목에서 격하게 공감하고 있었다. 말을 얼버무렸던 그녀도 내 표정을 읽은 듯 말을 이어나갔다.
"돈 중요하죠. 살아보니까 중요해요. 근데 대화보다 중요한지는 잘 모르겠어요. 돈이 좀 그러면 집주인이랑 이야기할 때도 여러 가지로 신경 써야 되는 일이 늘어나는 거고. 친구들은 안 겪는데 왜 나는 겪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그건 대화에 비해서는..."
대화가 통한다는 것. 그건 아마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의미가 다를 수도 있겠다. 친한 동생 중 한 명은 누군가와 있을 때 정적을 견디지 못한다. 끊임없이 말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했다. 동생은 어딜 가나 대화를 끌어가는 성격이다. 유재석이 출연한 예능프로에선 오디오가 비지 않는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그 동생이 그렇다. 한 마디 한 마디에 끊임없는 리액션을 보이며 공백을 같이 메꿔주는 사람이라면 동생에겐 '대화가 통하는 사람'일 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대화가 통한다는 건 좀 다른 의미다. 어쩌다 본 영화감독의 인터뷰가 좋아서 링크를 보내주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오늘 취재하며 겪고 느낀 걸 말하고 싶어 지는 사람. 오늘 하루 종일 포털 사이트 뉴스면을 가득 채웠던 사건에 대해 공분하고 싶어 지는 사람. 대인관계로 인한 고민을 털어놨을 때 묵묵히 들어주는 사람. 앞으로 살아나갈 인생관이 비슷한 사람. 그 모든 소소한 이야기를 다 털어놓고 싶어 지게 만드는 사람. 생각이 달라도 주거니 받거니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화의 힘을 가진 사람. 그게 그렇게 큰 욕심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