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22일
술은 언제나 분위기를 띄우고 즐겁기 위한 수단이었다. 근데 한 살 두 살 먹어가다 보니 눈치를 보고 계산을 하게 되고. 그래서 해를 거듭할수록 말수가 적어진다. 좀 더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고 싶은데. 내가 언니를 얼마나 좋아하고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당신이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 싶은데. 오지랖 같아서 맨 정신에 못한다. 그렇게 평상시에 없던 숫기가 술만 먹으면 살아나서. 보고 싶은 사람들이 떠올라서. 그간 못했던 말들을 전하고 싶은 얼굴들이 떠올라서. 술자리 후 퇴근길은 늘 아리다. 언젠가 아빠가 약주하시고 내 앞에서 울었던 것처럼. 언젠간 나도 다 전할 수 있겠지. 그게 지금이야 있을 때 잘해야 돼 하면서도 못한다. 아빠처럼 숙맥이라.
작년의 여름날 썼던 일기. 생생하게 기억난다. 같은 회사 선배와 소주를 마시고 올라탄 2200번 버스. 항상 앉는 그 자리에 앉았고 이어폰(그때만 해도 줄있는 콩나물)을 꼽고 안전벨트를 매고. 메모장을 열었더랬다. 술자리에서 못다 한 이야기들을 끄적거리다 선배한테 보낼까 묵혀둘까를 고민했었다.
언젠가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지난가을쯤 느닷없이 금주선언을 하고 난 뒤부터였다. 줄어든 술자리에 내심 뿌듯했다. 두 달간 절주 하겠다고 나섰지만 60일 동안 세 번 정도 술자리를 가졌다. 물론 소주 없이 맥주 한두 잔. 변화는 그 뒤에 찾아왔다. 술기운을 빌어 이야기했던 것들을 맨 정신에 할 수 있게 됐다. 술 먹으면 사라진 기억을 찾으려고 다음날 골똘히 앉아있는 시간이 길었는데 이젠 그것도 없다. 좀 더 맑은 정신으로 좋아하는 사람들과 공유하는 시간이 소중해졌다. 오랫동안 가져온 버릇이 그렇게 하나씩 떨어져 나간다. 그럼에도 가끔은 술기운을 빌고 싶은 사람이 있고, 그런 사람들에겐 어김없이 "맥주나 한 잔 하자"는 말을 건네게 된다. 일종의 암호 같은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