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한 나무
작년 우리 마을엔 송충이병이 돌았다. 온 나무마다 송충이들이 다닥다닥 붙었다. 그들이 범접한 나무는 며칠 지나지 않아 고목이 됐다. 송충이가 지나간 이파리는 누렇게 변했고 어느새 우리 집 매화나무에도 누렇게 마른 이파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옆집 아저씨가 찾아왔다.
"너네 나무 다 죽은 것 같던데."
"엥 왜요?"
"가서 봐봐. 송충이가 엄청나. 그거 약 뿌려야 되는데 아마 네가 하긴 힘들 거야. 시청에 전화 해면해줄걸."
멀리서 볼 땐 몰랐는데 가까이 가 보니 내가 봐온 나뭇가지는 가지가 아닌 송충이 무더기였다. 시청에 전화했고 방역 날짜를 잡았다. 소독하러 온 시청 직원은 손 쓰기 좀 늦은 것 같은데 언제까지 살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그렇게 일 년이 지났다. 아침밥 먹는데 "마당에 꽃핀 거 봤어?" 엄마의 한마디로 매화꽃이 피었다는 걸 알았다. 매년 이맘때 가장 먼저 피는 꽃. 가을마다 매실을 양동이에 가득 담아 매실액을 만드는 집이라 매실나무는 귀하다. 혹여나 죽었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잘 살아주었다.
산책하며 찍은 매화꽃 나무 사진을 엄마가 보내온다. 엄마는 이 모든 게 하루 덕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 매실나무가 있는 그 자리엔 하루가 묻혔다. 작년 6월에 무지개다리 건넜던 하루. 누가 뭐래도 우리 가족은 하루가 다시 태어난 거라 생각하고 있다.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매실나무가 다시 살아나서 눈부시게 하얀 매화꽃을 피우는 건 하루 덕분이라고. 그렇게 한참을 엄마가 찍은 사진 한 장으로 대화는 이어졌다. 하루를 그리며. 매화꽃을 감탄하며.
집에 돌아오는 길 달밤에 향긋한 내음을 풍기는 매화꽃나무 아래 서니 하루가 생각난다. 올려다보니 매화꽃은 참 언제 봐도 예쁘다. 이렇게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모양을 하고 간신히 달려있는데, 꽃놀이 가서 머리에 꽂겠다고 가지를 꺾는 사람들이 새삼 미워진다. 아, 꽃냄새 좋다.라는 말을 누군가에게 건네고 싶다. 저 가방 예쁘지 않아? 요즘 주식 올랐어? 그 집 맛있어?라는 대화는 지나가는 행인에게도 건넬 수 있을 만큼 가볍지만 이 꽃 좀 봐봐, 향 좀 맡아봐, 꽃 피었어 예쁘지?라는 말은 아무에게나 건넬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적어도 내겐 아직까진 그렇다. 내 본연의 모습까지 보일 수 있는 사람에게만 나올 수 있는 말이다. 같이 공감하고 싶은 말. 같이 맡고, 즐기고, 감탄하고 싶은 말.
며칠 전 회식자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대로 집에 가긴 살짝 아쉽고 달달한 게 당기기도 해서 옆에 같이 걸어가던 친구에게 맥도널드나 가서 맥플러리 먹을래? 물어봤다. 친구는 너무도 쿨하게 그래, 가자. 따라붙었다. 지극히도 평범한 대화가 그날따라 어찌나 기분 좋고 편안하던지. 싫어? 싫음 말아. 안 붙잡음 ㅇㅋ 정도의 쿨함으로 무장해왔지만 사실은 누군가에게 뭘 조르거나 생떼를 피우거나 늦은 시간에 더 놀자고 해본 기억이 최근 몇 년 간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있어도 거절당한 기억밖에. 졸리다거나 술 먹기 싫다거나 피곤하다던가 다른 걸 원한다는 이유로. 술을 싫어하는 자들은 기본적으로 밤늦게 돌아다니는 걸 즐기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그때그때 느끼는 감정을 전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건 정말이지 행복한 일이다. 혹시 공감해줄까, 거절당하지 않을까, 염려할 필요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 공감해주는 사람. 퇴근길 매화꽃 나무 아래 섰을 때 떠오르는 얼굴이 몇 있었다. 이런 향긋한 내음 풍기는 꽃나무 아래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면서 꽃냄새 좀 맡아봐 낭만도 없이 술만 마시냐, 가볍게 핀잔 정도 건넬 수 있는 사람들. 아, 봄이 오긴 왔나 보다. 달밤 꽃내음에도 이렇게 설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