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속한 현장 -취소된 봄꽃 축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고 있는 요즘. 약 올리기라도 하듯 날씨가 참 좋다. 겨울이 언제 지나갔나 싶을 정도로 눈 깜짝할 사이에 와버린 봄. 지난 주말과 이번 주말은 유독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다. 마당 구석 곧게 뻗은 매실나무엔 하얀 매화꽃이 피어났다. 매화꽃이 떨어질 무렵 마당은 온통 눈밭일 거다. 상상만 해도 포근한 아름다움. 봄이란 그렇게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설레는 계절인가 보다.
온라인상에선 다들 집콕 중이라는데 밖에 나온 사람은 왜 이리 많을까. 돌아다니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네이버 댓글엔 죄다 5주째 집콕 중이란 사람들뿐일까. 끝나지 않는 물음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꼭 나가야 하는 일정을 제외하면 나 역시 집순이다. 그러니 밖에 나온 사람들에겐 오늘이 "꼭 나와야 하는 날"일 수도 있는 거겠다. 이런 시국이라 해서 길바닥에 나온 모두를 마냥 탓할 수 없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그래도 제발 오지 말아 달라 신신당부하는 곳들이 있다. 청정지역으로 소문난 강화도나 매년 이맘때 꽃 축제로 한창인 진해, 구례 같은 마을이 그렇다. 수도권 사람들은 주말만이라도 청정지역을 찾겠다며 차를 끌고 떠난다. 마스크 끼고 자차로 이동하니 문제 될 게 없다는 심산이다. 주말마다 수십만대의 차량을 마주하는 주민들은 불안에 떤다. 상인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군수는 길바닥에 나와 호소를 한다. 제발 우리 지역에 오는 걸 자제해달라고.
지난주 진해 군항제 취재를 했다. 축제가 취소됐다며 대대적으로 알려왔지만 동네 곳곳엔 현수막이 나붙었다. '벚꽃축제를 환영합니다, 여러분'. 일 년에 단 열흘. 한철 장사로 생계를 꾸려가는 상인들이 붙여놓은 거라 했다. 인파는 몰렸다. 지나가는 길에, 집이 요 앞이라서, 밥 먹으러 왔다가, 겸사겸사, 마스크 썼으니까. 각자의 핑계가 하나둘 모여 여좌천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결국 창원시는 여좌천 양옆 보행로부터 인파가 몰릴 걸로 예상되는 모든 명소를 폐쇄해버렸다.
군항제 원고를 썼을 때 가장 고민이 되는 건 클로징이었다. 이걸 뭐라고 써야 되지. 몇 주동안 쥐 죽은 듯 방구석에서 꾸역꾸역 견뎌내다 바깥으로 딱 하루 , 나간 사람들일 수도 있다. 기저질환이 있는 고령 어르신들은 집 앞에 (누가 버렸는지 모를 외부인의) 마스크가, 하염없이 몰려드는 인파가, 야속할 수 있다. 강경하게 대응하는 지자체가 미운 상인들, 다수의 안전을 위해 폐쇄를 강행하는 지자체의 입장. 모두의 입장을 이해하는 나는 그 사이 어디쯤에 있을까.
내가 사는 파주 역시 주말마다 사람들이 몰려든다. 어쩌다 보니 맛집이라 소문난 음식점이 집 근처에 몇 군데 있기도 하고 아담한 뒷산과 탁트인 풍경은 덤이다. 평소에도 평일 주말 할 거 없이 온 도로가 주차장을 방불케 했는데 코로나로 한동안 뜸하다 심었다. 그럴 리가... 저번 주말부터 다시 동네는 붐비기 시작했다. 주말 내내 집에 있다 보면 가끔 환기시키려고 창문을 열어놓기도 하는데, 주차자리 찾겠다고 쉴 새 없이 울려대는 경적소리가 어찌나 얄미운지 모른다. 매화꽃을 구경하겠다고 마당 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어찌나 원망스러운지 모른다. 동네 곳곳에선 쌈박질이, 식사를 마친 중년 남성들의 암묵적인 흡연구역이, 누군가 마당에 버리고 간 쓰레기들이. 그 어느 것 하나 달가운 존재가 없다. 마스크를 낀 사람은 더더욱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런 시국에.
하루 종일 소음과 쓰레기, 몰려드는 인파에 시달렸던 나는 결국 폐쇄를 강행한 지자체를 대변하는 쪽으로 클로징을 마무리했다. 답답했을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겠다며 클로징을 고민하던 나는 온데간데없었다. 온 나라가 강경하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데, 조금만 더 참아봅시다. 그게 나의 요점이었다.
하지만 클로징은 출장을 내려갔던 인턴 친구의 곱디 고운 마음으로 다시 태어났다. 데스킹 과정에서 올라온 클로징 멘트를 보며 그날 하루 내 비뚤었던 마음이 어찌나 부끄럽던지. 내가 사람을 원망하는 사이 그 친구는 꽃을 보듬고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날의 클로징 멘트
오는 이를 마냥 반길 수도 없고, 반기지 않으면 벌이가 막막해져 아쉬운 이들도 있습니다. 상춘객들은 오면서도 꺼림칙함을 떨칠 수 없어합니다. 빼앗긴 봄에 피어나는 꽃이 야속한 나들이 현장. 000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