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잡러시대 살아남기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내면 "역시 작가네" 라는 말이 돌아온다.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원할 땐 "작가잖아, 말 좀 해봐" 재촉한다. 엉뚱한 말을 건네면 "누가 작가아니랄까봐. 소셜쓰냐?" 핀잔이 따라붙는다. 이쯤되면 세상이 바라보는 작가란 대체 어떤 사람인 걸까 궁금해진다.
작가라는 단어는 단 두 글자로 만들어졌는데 사람들은 늘 그 이상의 의미를 투영시킨다. 시나리오 작가, 소설가, 수필작가, 사진작가, 에세이 작가, 방송 작가, 드라마 작가, 시사교양 작가, 보도국 작가... 글 쓰는 사람을 작가라고 칭하는 줄 알았는데 사진 찍는 사람에게도 작가라는 호칭이 붙는다. 책을 내야만 진정한 작가로 인정받기도 한다. 이래저래 작가는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내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타이틀인 것 같다.
나는 그중에서도 가장 되기 쉽다는 취재작가였다. 그 생활을 이렇게 오래 하게 될 줄도 몰랐다. 채용공고를 봤을 때 취재와 작가라는 두 단어에 이끌려 지원한 게 전부였다. 취재와 작가라니, 얼마나 멋진 단어의 조합인가! 라고 당시엔 생각했다. 취재작가라는 타이틀이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때다. 지금은 흔하디 흔하게 볼 수 있는 직종이 됐다. 며칠 전 방송작가 구인방에 취재작가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떴다. 취재작가 괄호 열고 스트립터, 라는 부연설명이 붙어있다. 스트립터를 모집하지, 왜 작가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취재작가란 그런 면에서 '이 정도면 괜찮은 타이틀이잖아? 갖다 써'라는 느낌을 뿜어내는 정체성이 모호한 직종인 것 같기도 하다. 생긴지 10년을 향해가는 이름이지만 여전히 딱 집어 표현할 수 없는 직종. 막내작가를 예쁘게 포장한 말이기도 하다. 보도국 막내작가들에게 가장 먼저 주어지는 건 스트립터와 리서처 역할이다. 동시에 가장 잡다한 일을 많이 하지만 (그래서 잡가라는 별칭도 있다) 언제든 누구로든 대체될 수 있는 직종. 세상은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들에게 취재작가라는 이름을 붙여놨다.
이 일을 시작하고 작가도 뉴스를 만들어요? 라는 질문을 셀 수 없이 들었다. 네. 저희 뉴스는 데일리 기사(1분 30초 분량)랑 다르게 코너가 많아서요. 구성도 하고 원고도 씁니다, 라는 대답은 최근에 하기 시작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취재차 전화하면 "기자님이 아니고 작가라고요?" 되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거 왜 기자한테는 님자 붙이고 작가는 작가입니까? 때론 되묻고 싶었다. 그때는 한 마디 한 마디에 예민했다. 자격지심이었던 것 같다. 간혹 기사가 마음에 안 들면 전화해서 따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거 작가가 취재를 하더니 소설을 써놓았구먼." 차라리 그렇다고 하고 싶었다. 죄송한데 기사는 제가 안 쓰거든요. 차라리 제가 쓰고 욕도 제가 먹어보고 싶습니다, 라는 말을 삼켰다. 내가 가진 타이틀에 자신이 없었다.
회사에 들어온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매일같이 현장을 나갔다. 사건이 터지면 달려나갔고 기약없는 뻗치기 현장도 어김없이 찾았다. 기자들만 있는 브리핑 현장에서도 인터뷰 답변내용을 종이에 적고 들고 있어달라는 의원실에서도 모든 경험이 처음이었으니 매 현장이 설렜다. 하지만 초보자였던 내게 가장 무서운 존재란 무서운 살인 사건도, 뻗치기도, 제보자도, 엄한 선배도 아닌 영상취재기자였다. 그들에게도 '취재작가'란 알 수 없는 존재였을 테니 말로는 "작가님"이라고 부르지만 그 말에 별 뜻이 담기지 않았다는 건 우리 모두가 알고 있었다. 같이 나가는 사람이 기자 선배나 기자 후배가 아닌 취재작가라는 걸 알면 '아, 이 현장은 비중이 크지 않구나'라는 걸 그들은 느꼈다. 우리 역시 암묵적으로 인지했다. 그걸 유독 행동으로 노출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다행히도 늘 운이 좋은 편(?)이었지만, 같이 일하는 작가들 사이에선 기피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취재작가를 현장에서 "야, 작가!"라고 부르는 남성이었고 그와 함께 나갔던 동생들은 울면서 들어왔다. 눈물 콧물 짜내며 서럽게 털어놓는 동생들에게 난 딱히 해줄말이 없었다. 그때완 달리 지금은 어떻게든 웃는 낯으로 상황을 풀어낼 뻔뻔함이 생겼다. 하지만 그때였다면 나 역시 울며 들어왔을 거다. 우리스스로도 취재작가라는 타이틀이 의미하는 바를 몰랐고, 남들이 바라보는 대로 해석했다. 자존감은 나날이 떨어졌고 취재작가라는 이름의 삶은 매 현장이 살얼음판이었다.
언제부턴가 취재차 전화하면 "아이고, 무슨 취재를 작가가 해요?" 물어오는 이에게 "어머 선생님, 요즘은 작가도 취재해요. 뉴스도 구성이 필요하잖아요. 모르셨구나." 대답하는 능글맞음이 생겼다. 동시에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했고, 언제까지 이 일을 '작가'의 역할로 받아들이고 살 수 있을지 끝나지 않는 고민을 품고 살기도 했다. 그래도 유일하게 위안 삼을 수 있었던 건 하필 내가 일본에서 유학을 했고 일본어를 할 줄 안다는 게 유리하게 작용했던 덕분이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분야를 만들어놓는다는 건 생각보다 멋진 일이었다. 일본 쪽으로 취재 루트를 뚫고 취재원을 늘리며 실력을 갈고닦을 기회가 많은 편이기도 했다.
지금은 누군가에게 날 소개할 때 보도국 작가라고 말한다. 구성을 하고 있지만, 60분짜리 다큐영상을 구성하는 사람을 구성작가라 부르는 방송계에서 5분짜리 코너를 만들며 구성작가라고 말하기란 쉽지 않다. 사실 이제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보도국 작가가 유망직종이 될지 사양산업에서 고군분투하는 지푸라기가 될지 지금의 나에게도 답은 없지만 내가 찾고 싶은 답 역시 그곳에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내가 가진 타이틀은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설명해준다는 걸 깨달은 덕분이다.
때마침 N잡러 시대가 찾아왔다. 낮엔 회사원, 밤엔 유투버. 기획, 디자이너, 작가, 일러스트, 사진촬영, 자영업자. 갖다붙이는대로 나를 설명하는 카테고리가 늘어나는 시대다. 프리랜서가 아니었다면 N잡러가 돼야겠다 생각하지도 않았을 거다. 내가 받아들인 프리랜서의 삶은 그만큼 여유가 없었다. 지금도 사회가 보장해주는 끝자락에 간신히 서있다는 걸 실감할 때면 아찔할 때가 있다. 이름처럼 프리하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고액연봉을 손에 쥐게 되면 이 불안감이 사라질까. 나에게 그런 날이 오긴 할까. 수도없이 자문했었다. 매일이 불안정한 사람들에겐 끊임없이 내가 살 길을 고민해야한다는 숙제가 눈앞에 놓여있다. 한 때 버겁기만 했던 그 숙제는 양면의 동전이라 나란 사람이 누군지 끝없이 탐구하게 만들어주는 선물이기도 하다.
막연하게 변호사가 되고 싶은 아이와 어떤 변호사가 되고 싶은지 명확하게 그려내는 아이는 성장폭이 다르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비단 변호사만의 문제는 아닐 거다. 타이틀에 따라붙는 수식어를, 어떤 삶을 살아갈지를 고민하는 사람은 삶의 폭이 달라진다. 작가는 더 이상 나의 꿈이 아니다. 어떤 작가가 될 것인가. 이젠 그걸 고민해볼 차례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