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소외된 사람들
며칠 전 일본 온라인 상에선 마스크 두 장을 풍자한 짤들이 돌아다녔다. 아베 신조의 새로운 코로나 대책으로 알려진 [1 주소당 마스크 2장 배포]에 네티즌들이 대노한 것. 재사용이 가능한 천 마스크를 감염자가 많은 도시부터 순차적으로 배포하겠다던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 짤은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다.
도쿄에 살고 있는 친구들로부터 연락이 쏟아졌다. 무능한 정부를 뒀다며 대응이 정확한 한국 정부를 본받아야 한다고. 살짝 으쓱하기도 했다.
"요즘 한국 상황은 어때?"
"한국은 요즘 외출할 수 있어?"
"외식은?"
"술은?"
"우리는 웬만한 술집이랑 음식점은 다 닫았어. 스타벅스도 닫았어."
좀처럼 불안하다거나 두렵다는 말을 하지 않는 애들인데,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
도쿄에 살고 있는 지인 중 요식업계 종사하는 이들은 대부분이 가게 문을 닫거나 단축영업을 하고 있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코로나? 그까짓 거 뭐 독감이지! 했던 사람들이다. 연락을 주고받는 내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국경이 봉쇄되면서 나라가 지닌 의미가 새삼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국경 없는 사회, 시민단체의 국제교류, 행복한 지구촌 사회. 그 모든 것들은 국경이 봉쇄되는 순간 일시적인 단절을 맞이한다. 그 불가피함 속에서 해외 교민들과 유학생들이 나라에서 보내는 전세기를 타고 차례차례 귀국한다. 한국으로 입국하는 내국인들은 검사비가 무료다. 자가격리 중엔 일회용 장갑, 방역마스크 말고도 라면과 같은 먹거리들이 제공된다.
외국에 있을 땐 내 나라의 이름이 지닌 의미가 남다르다.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게 다가온다. 외교관계가 순탄하지 않을 땐 비난의 시선을 온전히 받아내는 느낌마저 든다. K-팝이란 이름으로 온 거리에 한국의 향기가 물씬 풍겨오면 마치 내가 이룬 업적인 것처럼 어깨가 들썩거린다. 동일본 대지진 때 가장 위안이 됐던 건 영사관에서 날아온 문자 한 통이었다. 귀국편 비행기 티켓을 얻으려고 공항에서 노숙했었다. 지금, 전세기 타고 귀국하는 교민들이 나라에 가질 애정, 집에 돌아간다는 안심감은 아마도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일 거다. 나라는 내가 가장 힘들 때 그 존재를 드러낸다. 괜찮아, 너 한국인이잖아. 우리가 지켜줄 거야.
그런데 이 모든 걸 오롯이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이들이 있다. 국적이 없는 재일조선인들이다. 그들이 조선인이라는 이름을 고집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건너갔고 탄압 속에서 아등바등 살아남고 보니 6.25 전쟁이 발발했기 때문. 살던 곳에 남아야 할지 고향으로 돌아갈지 선택의 기로에 선 그들은 일부를 제외하고 일본에 남는 걸 택한다. 하지만 남기 위해선 국적이라는 게 필요했다. 일본인이 되겠다던 사람, 한국적을 택하겠다는 사람은 빠져나갔다. 그 어느 쪽도 택할 수 없었던 이들은 북한도 남한도 아닌 조선적을 택한다. 그런 그들에게 일본은 국적이라는 걸 부여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북한은 일본에서 국가로 인정되지 않는다. 조선적을 택한 이들에겐 여권이 없다. 단수여권만이 허락된다. 그마저도 북한에 다닐 때 일시적으로 발급된다. 한국을 비롯한 다른 해외에 가려면 일본이나 대한민국으로 귀화해야 한다. 북한에 가족이 있는 이들에겐 쉽지 않은 선택일 거다.
오늘 연락을 주고받았던 어머니도 조선적을, 한반도를 내 나라라고 선택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한국은 좋겠다, 대응이 빠르고 확실해서' '일본 정부는 바보 같지, 마스크 두 장이라니' 라는 말을 내뱉는 일본 친구들과는 달리 그녀의 메시지엔 걱정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지금 한국에 계신 거죠? 일본은 뉴스로 아시겠지만, 특히 재일 외국인의 경우엔 하루하루가 힘들어요. 코로나가 주는 공포에 정부나 지자체에서 어떤 차별을 받을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얼마 전에 조선학교만 빼고 마스크를 돌렸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런 일이 또 있었어요?"
"정부에서 배포한다는 마스크 두 장이 과연 우리 집에도 올까? 싶어요. 매일매일 뉴스에선 *'일본인의 혈세'(*우리나라 뉴스에선 '한국인들은, 한국인의'이란 표현을 듣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일본 방송은 '일본인, 일본'과 같은 국뽕스러운 표현을 애용한다)라는 표현을 즐겨 쓰는데, 열 받죠. 이 사람들 진짜로 우리가 세금을 안 낸다고 생각할까요? 정말 답답하고 불안해 미치겠어요."
1923년 9월 일본 수도권에 관동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도시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규모 8이 넘는 지진은 화재를 몰고 왔다. 10만 명이 넘어가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텔레비전과 라디오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 암흑이 돼버린 도심 속 사람들은 공포가 극에 달했다. 괴담이 시작된 것도 그때였다. "조선인들이 방화를 한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극에 달한 일본인들은 자경단을 꾸려 중국인이나 조선인들을 색출해 살해하기 시작했다. 이때 희생된 조선인은 수천 명에 달했고, 대학살이란 이름이 따라붙었다. 그런 역사를 가진 땅에서 또다시 전염병이란 공포가 확산되고 있는 도쿄. 공포가 엄습한 곳엔 어김없이 찾아드는 군중심리.
문득 궁금해진다. 섣부른 공감도 위로도 건넬 수가 없어서 답장을 보내지 못했다. 정해진 요일에 약국에 가서 신분증만 내보이면 손에 쥘 수 있는 마스크 두 장인데. 누군가에겐 아직 일어나지 않을, 언제 다가올지 모를 차별을 걱정해야 하는 두려움으로 다가간다는 게. 나에겐 겪어본 적 없는 감정이기에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부디 나아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