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째 만남

by 알로

아무도 보지 않는 글을 쓰는 건 어렵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글을 날마다 하나씩 쓴다는 건 쉽지 않다. 올초 1월 1일부터 이곳에 하루에 하나씩 글을 쓰기 시작했다. 새해 다짐이었다. 그 누가 정해준 것도 엄청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작가라면 쓰는 게 맞고, 올해는 글에 미쳐보고 싶었다. SNS나 일기장이나 하다못해 손편지도 내킬 때 쓰는 것에 버릇이 들어있던 탓이다. 안에 있던 감정이 벅차올라 어떻게든 털어놓고 싶을 때 그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나는 '글'을 택해왔었다. 그래서 정말 쉬울 거라 생각했으나 매 끼니를 챙겨 먹는 일보다 매일 아침 화장실에 가는 일보다 훨씬 귀찮고 훨씬 부담이 큰 일이었다.고작 100일인데도 말이다.


사람들이 타인의 카톡 프로필을 눌러본다는 걸 브런치를 시작하고 알게 됐다. 1월 1일부터 디데이 위젯을 만들어 프로필 사진 위에 D+27 라는 식으로 날짜가 기록됐다. 애인이 생겼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꽤 많았다. 갑자기요? 되물으면 "그 있잖아요, 프사에 날짜 세는 거..." 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 그거 하루에 하나씩 글 쓰는 거예요." 대답한다. 무슨 그런 걸 하냐는 표정으로 "아~" 하고 대화는 끝난다. 무슨 이런 걸 하지, 라는 생각은 매일밤 내가 했다. 시간을 정해놓고 규칙적으로 쓰는 게 아닌 오늘 중에 하나는 쓰자, 라는 식으로 접근해버리다보니 하룻동안 미루고 미루게 된다. 빨리 쓰고 자자, 하고 시계를 보면 자정이 가까워진 날도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예전 블로그에 실었던 글을 다시 가져오기도 했고 꾸역꾸역 다섯 줄만 채워보자는 심보로 새벽까지 노트북을 끌어안고 있기도 했다. 방송용 원고를 쓸 때도 늦은 시각까지 사투를 벌인다는 점에선 별반 차이가 없지만, 그것과는 달랐다. 내 원고는 누군가가 무조건 읽는 것, 반영이 되어 전파를 타는 것, 어찌 됐든 나를 평가하는 기준점이 되는 것. 브런치는 달랐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을, 어쩌면 영원히 묻힐.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갯속에 하나씩 글을 던지고 있는 느낌이라 사실 오늘 하루만큼은 안 써도 될 것 같았고, 어쩌면 아무에게도 말 못 할 모든 비밀을 털어놔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마음 편하게 무엇이든 적어낼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또 안 된다. 브런치를 하고 있다는 건 주변 아주 극소수만이 알고 있다. 극소수는 말 그대로 극. 소수지만 그만큼 나와 가까운 관계에 있다는 뜻이다. 나의 글과 실생활에 엄청난 차이가 있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나의 치부와 민낯, 속마음을 극도로 가까운 누군가에게 까발린다는 건 조금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늦게까지 깨어있는 날들이 많아졌다. 침대에 엎드려 그리기도 하고 늦은 밤 부엌 식탁에 불을 켜고 앉아 몇 시간을 몰두하기도 했다. 생각이 많은 편인 나는 아무 잡념 없이 그리고 칠하는 짓이 꽤나 잘 맞아떨어진다 생각했고, 나의 예상은 적중했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자다 깬 아빠가 화장실에 갈 때마다 잠이 덜 깬 눈으로 들여다보며 "지금 몇 시니?" 묻는 날도 점점 늘어갔다.


하루는 아침에 일어나 거실에 나갔는데 스트레칭을 하던 아빠가 '어제 늦게 잤는데 일찍 일어났네?'라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그림 그리는 게 그렇게 재밌어?" "응" "그걸로 뭘 어떻게 해보려고, 잘되려고 그리지 마. 그냥 즐겨." "응" 서른을 한참 넘긴 딸이 새벽까지 그림 그리고 앉아있는데 "그냥 즐겨"라고 말해주는 아빠가 있어 참 감사하다. 동시에 신기하다. 내 그림에 사심이 들어가 있는 걸 아빠는 어떻게 알았을까.


결국엔 나의 스트레스를 풀려고 잡념을 없애려고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모양새를 갖추려고 근사한 브런치 북이라도 만들어보려고 뭐라도 해보려고 그리고 있다.


무대 떨림증을 극복하는 첫 번째 방법은 내가 어떻게 보여질 지를 완전히 잊는 것이다. 관중 앞에서 보일 나. 지금 내 자세가 이상할까. 내 목소리가 떨리면 초짜라고 생각할까. 화장이 괜찮을까. 지금 말하는 내용이 좀 있어 보일까. 어떻게 보일까. 떠오르는 오만가지 생각을 날려버리고 오로지 본분에 집중할 때 떨림증은 사라진다. 무언가를 잘하려고 하는 욕심은 그렇게 독이 되기도 한다.


나는 무엇을 위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나. 비단 이게 취미생활이었던가. 어떤 솔직함으로 맞서고 있나. 솔직하긴 한가. 읽는 사람을 생각하는 게 맞나. 염두에 두지 않는 게 맞나. 그 어떤 것에도 난 정답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보여지기 위한 글을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큼은 확고하니 내일부터 시작될 또 다른 100일의 프로젝트는 조금 더 가감 없이, 보다 더 즐길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어가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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