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지인과 연남동 경의선 숲길을 걸었던 저녁. 노란 조명 아래 피자와 맥주집. 술잔을 기울이는 연인들. 자욱한 연기와 풍겨오는 고기 냄새. 평일이었지만 그 좁은 길이 참도 시끌벅적했다. 음식점 사이사이에 낀 낡고 허름한 빌라. 누군가 있을 불 켜진 방이 보였다.
"저기 살면 괴롭겠다."
"왜?"
"매일 밤 시끄러울 거 아니에요, 사람도 많고."
"집값 올라서 좋아할걸?"
"그런가..."
"몇 년 사이에 몇 억이 올랐는데?"
왜 우리 집은 오르지 않는 것인가. 평일과 주말, 찾아드는 상춘객들로 시끌벅적한 동네에 살고 있다. 지인들은 '도대체 그 동네에 왜 사람이 많냐'고 물어온다. 내가 묻고 싶다. 왜 올까.
굳이 이유를 찾아내자면 방송 몇 번 탄 맛집 서너 군데, 서울에서 자유로만 타고 30분 달리면 도착하는 교외, 트인 자연, 전망 좋은 곳마다 안목 좋은 주인들이 세워놓은 카페, 낮고 작지만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심학산의 맑은 공기. 아, 적고 보니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물론 그건 그들의 자유다.
소음과 쓰레기, 냄새, 고성방가를 참아내는 대신 집값이 오른다면 조금은 또이또이하다 여길 수 있는 걸까. 사람들은 입을 모아 "당연하지!" 를 외칠지 몰라도, 나는 좀 다르다. 먼 출퇴근길, 캄캄한 귀갓길, 조금 불편한 고통을 감내하면서 이곳에 사는 이유는 오로지 '고요한 자연' 뿐이라 그것마저 잃어버린다면 사는 의미도 사라진다. 그래서 점심시간이면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동네 맛집이 괜히 미웠다. 밥 먹고 나와 이쑤시개와 종이컵 커피를 한 잔씩 들고 담장 안으로 고개를 쑥 내밀어 집 구경을 멋대로 하는 사람들도 싫었다. 담배를 태우고 마당에 꽁초를 버리는 사람들도 혐오했다. 현지인들은 외지인을 바로 알아본다. 옷차림이나 차량, 분위기가 아니라 이곳에 익숙지 않은 눈빛이 있다. 그런 눈빛을 동네 골목길 곳곳에 뿌리고 다니는 사람들이 난 싫었다. 그들은 늘 시끄러웠고 음주운전을 일삼았고 집 담벼락도 몇 번이나 무너뜨렸으니까.
주말에 새소리 들어놓으려고 창문을 열어놓으면 주차할 곳을 찾아 돌아다니는 차들의 경적소리가 흘러들어온다. 그래서 홧김에 떠난 적이 있었다. 조용한 곳을 찾고 싶어 떠났던 당일치기 여행이었다. 여행이라기보단 바람 좀 쐬러 갔던 여정. 파주까지 날 데리러 왔던 친구가 말한다. "진짜 조용한 동네 사네. 근데 더 조용한 데로 간다고?"
목적지는 인천의 소무의였다. 영종대교를 건너 무의도에 도착해 실미도 유원지를 지나 선착장 근처에 차를 세워두고 400미터쯤 되는 다리를 도보로 건너면 이름처럼 아주 작고 귀여운 소무의도에 도착한다. 다리 초입엔 '소무의도에 짐 가져가시는 분 연락 주세요 010-XXXX-XXXX' 라고 적힌 종이들이 붙어있다. 광어회 소자에 8만 원 한다. 그만큼 오지인 작은 섬이다.
무의도도 꽤나 한적한 어촌이었라 생각했는데 소무의도는 한적하다못해 고요하다. 드문드문 관광객들이 해변가를 거닐고 있지만 작은 텃밭들이 오밀조밀 모인 민가 마을에 들어서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따금씩 전혀 사람을 무서워 않는 길고양이가 다닐 뿐. 무너지기 직전인 폐가도 많다. 그날 마주친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이 고령의 여성이었다. 삼삼오오 경로당 앞에 앉아 수다를 나누거나 외지인을 보고 컹컹 짖어대는 하얀 백구 옆에 쭈그리고 앉아 텃밭을 갈거나. 심어놓은 농작물을 손보거나. 텃밭들은 또 어찌나 귀여운지 딱 한 가구가 일 년 먹을 만한 양의 마늘, 쪽파 같은 것들을 가지런히 심어놓으셨다. 욕심내지 않고 군더더기 없이 가꿔진 텃밭을 지나다니면 어김없이 개들이 짖는다. 유독 크게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에 새삼 느낀다. 나도 이곳에선 외지인이고, 누군가에겐 불청객이겠구나. 마을에 안 쓰는 우물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낡은 교회 담벼락에도 쓰러져가는 기와집 앞 벽돌에도. 대학생들이 마을 살리기 운동이라도 한 번 하고 간 모양인지 글귀며 시의 한 구절이며 귀여운 그림 같은 것들로 채워져 한 바퀴 도는 내내 눈이 심심하지 않다.
구경하느라 발걸음이 느릿느릿해진 우리만큼이나 느릿느릿하게 마을을 오가는 어르신들뿐이었는데. 저기 어디선가 아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동호야, 동호야~" 중년 남성의 목소리다. 젊은 가족이 사나 보구나. 그런데 몇 발자국 옮기니 또 "오디야, 오디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어디냐고 묻는 건지 이름이 오디인 건지 모르겠지만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이어지자 골목 곳곳에서 이름의 주인공들이 튀어나왔다. 고양이들이었다. 목소리를 찾아가니 내가 바로 바다의 남자다, 싶은 비주얼의 남성이 목놓아 이름들을 부르고 있다. 우리를 힐끔 쳐다보더니 다시 다른 이름을 부른다. "밤톨아, 밤톨아~" "점박아, 밥 먹어~"
지붕 위에서 평상 밑에서 옆집 담벼락에서 저마다 여유를 즐기던 고양이들이 순식간에 주인 앞으로 몰려든다. 길고양이가 아니었나 보다. 죄다 꼬리며 엉덩이를 치켜들고 있다. 가히 놀라운 광경이다. 부르면 달려오는 것도 신기한데 대여섯 마리가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니. 알고 보니 고양이들이 엉덩이를 치켜올린다는 건 매우 친근한 인사로 지금 상태가 몹시 마음에 든다는 뜻이란다. 고양이들은 정말 밥을 먹으러 모인 아이들이었던 거다.
주인과 고양이들의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을 한참 구경하다 돌아서 나오는데 마을 길가에 큼지막한 벚꽃나무 한 그루가 늠름하게 서있다. 고목은 아닌 듯 하지만 꽤 오래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린 것처럼 마을 전체와 어우러지는 자태다. 한참을 바라보니 친구가 사진 한 번 찍어주겠다며 가서 서란다. 어색했는지 몇 장 찍고 있는데 아까 그 고양이 주인, 사진 찍는 우리 옆으로 다가온다.
"에이~ 그 각도에서 찍으면 나무 옆에 쓰레기들이 나오잖아요. 좀 이쪽에서 찍어야 예쁘지."
"아, 예. 감사합니다."
"근데 쓰레기를 저기에 버리네. 거 참. 알 수 없는 사람들이야."
"그러네요. 왜 저기에 버리지...?"
"아냐, 그건 내가 치우면 되고. 아무튼 이쪽에서 찍어봐요. 그렇지. 그래. 거봐. 쓰레기 안 나오죠? 사진 예쁘네."
그러고선 만족했다는 듯 다시 고양이들이 모인 곳으로 돌아간다. 한 마리가 아직 안 오기라도 한 건지 한 놈의 이름만 애타게 부른다. 그는 한참을 그렇게 고양이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우린 한참 동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동네를 찾는 이들에게 한 번이라도 호의적인 마음을 품어본 적이 있던가. 동네 골목길에 있는 벚꽃나무 아래서 사진 찍는 이를 보면 눈을 흘기며 왜 여기까지 올까, 생각하진 않았나. 도로에 뒹구는 일회용 커피 컵을 보면 대체 누가 버렸을까 눈을 부라릴 줄만 알았지 내가 주워 쓰레기봉투에 담을 생각을 해봤었나. 제가 찍어드릴게요, 라던가. 저쪽에 더 예쁜 스팟이 있어요, 라던가. 사회생활할 땐 그렇게 입에 달고 사는 말들을 우리 동네에 찾아오는 이들에겐 그리도 인색했다는 걸 깨닫는다.
소무의도에 다녀온 날은 짧은 여정이었지만 여독이 길었다. 운치 있던 섬동네의 아름다운 봄날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그 아저씨의 마음이 한몫했다. 기껏 먼 길 찾아온 손님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을 선사하며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연스러운 친절을 선물해준 모습. 별 거 아니었지만 말이다. 집에 돌아온 내내 아저씨가 고양이들을 부르던 목소리가 어찌나 맴돌던지.
오디야, 는 이름이었다. 정말 잘 지었다고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