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 좀 보내봐

by 알로

대학 때 친구가 있다. 이름은 토모미. 토모미는 일본에 살고 있다.

토모미에겐 18개월 정도 된 아들내미가 있고 며칠 전에 반삭이라는 파격적인 헤어스타일을 시도한 남편이 있다. 토모미는 대학 친구다. 우리는 열아홉 살 때 만났다. 어떤 계기로 친해졌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내가 캐나다에 가있을 땐 날 만나러 오겠다며 몇 달 동안 알바로 모은 돈을 비행기 값에 쏟았다. 그 친구는 그렇게 의리가 있는 친구였다. 생긴 것도 의리가 있게 생겼다. 날카롭고 무섭게 생겼다. 술도 잘 마시고 담배도 태우던 친구였다. (둘 다 지금은 끊었다) 그런 그녀는 대학 4학년 때 한국어에 눈을 떴다. 한국이 좋다 했다. 그래서 한양대 석사과정을 밟았다. 그녀의 유학생활 동안 난 뭘 했더라. 난 일본에 있기도 하고 한국에 있기도 했다. 그녀를 잘 챙기지 못했다. 그저 연락이 닿으면 술 한 번 먹고 남자 친구가 생겼다 하면 고민 정도 들어주는 친구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절친(親友)이란 호칭으로 묶여 지냈다.


그녀는 기나긴 유학생활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마지막 남자 친구는 '내가 같은 한국사람이라 미안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양아치였다. 어쨌거나 일본으로 돌아간 그녀는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아 잘 살고 있다. 지금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하여 한국에 있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금기어다. 종종 내가 일본을 갈 때마나 만나는 걸 제외하곤 우린 라인으로 연락하고 지낸다. 이영훈의 반일 종족주의가 나왔을 땐 다른 견해로 크게 싸웠고 위안부 문제가 수면 위로 올랐을 땐 격한 토론을 벌였다. 평소엔 잘 사냐, 요즘은 뭐가 유행이냐, 오늘 삼겹살을 먹었다, 정도. 일상의 안부를 주고받고 사는 사이다.


내 인스타를 볼 때마다 '나도 삼겹살이 먹고 싶다'거나 '나도 육회를 좋아한다'거나. 부러움 섞인 메시지를 보내온다. 이따금씩 그 아들내미랑 영상통화를 하며 짜파게티나 신라면을 끓여먹을 때면 세상 부러운 이모티콘을 보내온다. 그런 그녀에게 간식거리라도 보내주고 싶어 신혼집 주소를 알려달라 몇 번이나 구걸했지만 절대 알려주지 않았다. 떡볶이, 순대, 곱창, 번데기, 라면, 과자, 김치... 맛있겠지. 신나게 대화를 이어가다가도 보내주고 싶어서 주소를 알려달라 하면 그때부터 읽씹. 나는 그 마음을 알 것 같으면서도 그런 친구가 참 애달펐다. 그냥 알려주지. 이거 보내는 거 뭐 얼마나 한다고.


그렇게 수년이 지났다. 며칠 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안부를 주고받는데, 문득 궁금해졌다.

"너 근데 마스크는 살 수 있냐"

"마스크? 안 팔지. 안 판지 오래됐지."

"그럼 마스크 어떻게 써?"

"그냥 엄마가 만들어준 거 빨아서 쓰거나 뭐 그렇지."


밑밥을 깔았다. 한국은 이제 확진자가 좀 줄어드는 추세기도 하고 지하철 역에 가면 뭉텅이로 파는 게 보이더라. 일본보단 구하기 쉬울 거야 그지?


"그래?"

주소 좀 알려줘 봐. 만약에 구하게 되면 보내줄게.

아, 그냥 말해봐. 많이는 못 구해. 그냥 조금만 보낼게.


그제야 말한다 주소를.

일본으로 돌아가고 이제 10년이 다 되어가는데 이제야 주소를 알려준다. 안 알려줄 줄 알았는데 알려주니 더 짠하다. 신세 지는 거 싫어하는 친구인데. 부담 주는 거 누구보다 싫어하는데.


괜찮아, 부담 갖지 말고 진짜 괜찮으니까. 라며 적어준 주소에 난 무엇부터 보내야 할지 고민이다. 보내고 싶은 게 정말 많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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