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가는 길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사가야겠다, 생각이 드는 건 한여름에 배드민턴으로 땀을 뺀 날이 아니곤 극히 드물다. 간혹 있긴 하다. 아니 거의 없다. 기억에 없다. 오늘은 그 드문 날 중 하루다.
친구 중 나만 보면 좋은 걸 해먹이려는 아이가 있다. 전생에 그는 마님, 나는 돌쇠였나 싶을 정도로 밥 한 끼를 먹어도 푸짐하고 맛난 최고를 먹인다. 매 끼 빌지는 본인의 옷자락 속에 꼭꼭 감춰둔 채. 매번 내가 있는 곳으로 데리러 오고 내 집까지 데려다주려 한다. 만날 때마다 묻는다. 뭐 먹고 싶어? 골라봐. 양식이랑 중식이랑 한식이랑 어디 어디가 있는데, 내가 또 대한민국 맛집은 다 알잖아. 다 말해! 하는 아이.
우린 교복 입고 깔깔거리던 고등학교 시절에 만난 사이지만, 그 친구는 20대 초반에 사업을 시작했고 번창과 망함을 오가며 튼튼하게 성장했다. 마음도 재정적인 부분도. 그래서일까. 뭐든 털어놓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깝지만 또 한없이 편하지만은 않다. 코드가 잘 맞는 걸 제외하곤 아주 많이 다르다. 그 아이는 수십, 수백만 원을 쓰는 데에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씀씀이가 헤픈 건 아니다). 일본 가고 싶다, 하면 "너 비행기 값만 끊어, 내가 호텔이랑 경비 댈게." 라는 말을 스스럼 없이 건넨다. 시청과 종로, 광화문 일대의 노포를 사랑하는 나완 달리 강남의 모든 맛집을 꿰뚫고 있다. 뛰어난 의료기술로 끊임없이 본인의 미(美)를 가꾸며 살아간다. 좋은 정보 줄게, 주식 투자 좀 해봐. 많이는 말고 그냥 몇 천 정도만 해봐, 라는 조언을 아무렇지 않게 건넨다.
어디 갈 때마다 차도 예쁘고 아가씨도 예쁘네, 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듣는단다. 본인한테 어울리는 차를 타는 것도 능력이야, 라는 말밖엔 내가 건넬 수 있는 게 없었다. 피티 트레이너들이 하도 치근덕대서 트레이너를 4번이나 바꿨단다. 어딜 가나 얘랑 가면 사장님들이 그렇게 서비스를 갖다 주신다. 왜 이렇게까지? 라는 질문도 새삼스럽다. 예쁘고 고귀한 사람이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녀를 오해하기도 하지만 그런 오해따위 신경쓰지 않는 쿨함이 있다.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관대하고 털털하고 돈과 시간을 잘 쓸줄 아는 사람. 대학교 1학년 때 만난 남자와 10년 넘는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한 여자. 개념 있고 의리 있고 진짜가 뭔지 아는, 뭐 그런 친구다.
집은 파주, 직장은 상암. 사람 많고 건물 많은 곳을 워낙 싫어하는 탓에 일 년 중 강남으로 넘어오는 건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나다. 오늘은 사람 없는 평일이니 잠원 쪽에 전시회를 다녀왔다. 너가 강남만 오면 진짜 내가 다 해주는데, 라는 말을 달고 사는 친구의 소원따라 겸사겸사 저녁약속도 잡았다. 이 시국에 강남이라니... 싶었지만 뭐 이미 엎질러진 물.
만나기 전부터 친구는 신이 나있다. 다짜고짜 전화를 걸어 묻는다. 아, 야. 너 휴가면 미리 말하지. 일찍부터 만날 수 있잖아! 육회비빔밥 먹을까? 그냥 트러플아니고 진짜 트러플 파는 데 있는데 거기 갈래? 아니면 *****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하는 난생처음 듣는 음식이름) 먹을래? 난 세상에서 회를 가장 좋아하고 그다음으로 좋아하는 게 육회니까 단연 육회비빔밥을 먹겠다고 했다. 우리가 찾은 곳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그 집이라 했다. 난 처음 들었다. 조금 불편한 상황들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아주 원초적인 의문들이다. 아주 아주 원초적인.
강남권에 있는 식당들은 워낙 주차공간이 협소하다 보니 발레파킹을 해야 하고, 그 와중에 말도 안 되는 주차시비가 벌어진다는 건 단골 뉴스 아이템이다. 실제로 목격한 건 처음이었다. 신기했다. 왜 내 차를 내가 밥 먹으러 가서 내가 주차하지 않고 누군가가 주차를 해주는 시스템이어야 할까. 비단 주차장이 부족해서만은 아님을 안다. 발레파킹을 도맡는 그네들은 카드가 아닌 현금으로 돈을 받는다. 밥 먹으러 오는 누군가를 위해 주차라는 노동을 제공하고 돈을 받는다는 시스템. 고객의 편의를 위한 무료서비스라면 되려 이해가 가지만 돈이 오가는 거래다. 일종의 팁 개념이라고 하기엔 장인정신을 가지고 하시는 분들도 계실 테니 근본적으로 궁금해졌다. 왜 이 서비스가 존재해야 할까.
육회 한 접시 가격이 35000원이었다. 친구는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내가 젓가락 뜨기만을 기다린다. 나는 맛에 대한 리액션이 부족하다. 더군다나 없는 감정을 리액션하는 건 정말이지 자신이 없다. 그 눈길이 너무나 부담스러웠다. 난 고깃집에서 6년을 일했다. 어떤 고기가 좋은 고기인지 가늠할 수 있는 정도다. 더군다나 내 '나와바리'인 육회라면 최고 부위가 뭔지 정도는 안다. 35000원이라는 가격표를 달고 등장하는 그 집의 육회는 물론 아주 맛이 있었지만, 박수칠 정도의 리액션을 부르는 맛과 비주얼은 아니었다. 가격은 강남이라는 브랜드를 달고 나온 거품이라는 걸 알았다. 그럼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의 성의에 보답하기 위해서 몇 번이고 말했다. "와, 이 집 진짜 잘하네." "이야, 맛있다." "이거 딱 외국인들이 좋아하겠네." 그럼에도 궁금하다. 이 정도 퀄리티에 이 가격을 부르는 건 상권의 힘인가. 신기하다.
그렇게 배부른 식사를 하는 동안 우리 눈 앞엔 수많은 웨이팅러들이 오갔다. 강북과 강남은 물이 다르다는 말을 실감한다. 마스크를 꼈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선남선녀가 많다. 아무래도 난 여자니까 같은 여자한테 눈이 더 가는데, 저런 얼굴을 한 일반인이 이렇게나 세상에 많았나? 싶은 얼굴이 많았다. 계속 보게 되고 정말이지 예쁜데, 계속 계속 계속... 보는데 다 똑같은 얼굴이다. 마스크를 썼으니 눈만 보이는데 눈매가 다 똑같다. 식탁에 앉아 마스크를 벗으니 여기저기 똑같은 사람들이 앉아있다. 신기할 노릇이다.
밥을 먹고 나와 조용한 곳에 가서 커피 한잔하자는 친구. 어디 갈래? 묻더니 "어두운 곳이랑 밝은 곳이 있어" 란다. 기상천외한 선택지에 난 "어두운 곳이 좋다"고 답했다. 그렇게 찾아간 곳은 말 그대로 정말 어두운 곳이었다. 그곳에서 건너 건너 지인을 봤다. 내가 아는 한 그분에겐 배우자와 토끼 같은 딸내미가 있는데, 오늘 본 그는 배우자가 아닌 다른 여성과 연인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자태로 '어두운 곳'에서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아침에 합정역에서 들렀던 커피숍에서 1500원짜리 스몰 커피를 먹을까 2500원짜리 라지 커피를 먹을까 고민했는데 한 잔에 13000 원하는 로즈마리티를 먹으려니 좀이 쑤셨다. 나오는 길 발레파킹을 담당했던 직원은 "저 뒤쪽 스타벅스에 세워져 있다"며 차키를 건네주었다. 내 발로 차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야 하는 것이면 발렛은 왜 존재하는지 또 한 번 신기했다.
나를 또 태워다 주겠다며 운전대를 잡은 친구는 "그래서 연락하는 사람이 있냐"고 물어왔다. 연애라는 건 마치 삼시세끼 챙겨 먹는 끼니처럼 쉬면 안 되는 것인가보다. 연락하고 썸 타는 사람이 없으면 당장이라도 큰일이 날 것처럼 친구들은 안달이 나는 모양이다.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스피커폰이다. "야, 뭐해. 내 친구 소개받을래? 근데 너 직장이 어디였지? 아, 미안 내가 남들 직업에 관심이 없어서. 어떤 사람이 좋아?" 초면인 사람의 (아니 만난 적 없으니 초면이라고도 할 수 없는 누군가가) 가감 없이 내뱉는 속마음을 들으며 한강을 건넜다. "어떤 여성이냐"는 상대방의 물음에 "아, 내 친구는 이렇고 저렇고 이런 애야" 평소 이 친구가 날 어떻게 봐왔는지 그 친구가 내뱉는 단어들로 새삼스럽게 '객관적인' 나를 알아간다. 그 시간 또한 신기하고 신선했다.
그렇다. 오늘 나의 하루는 이러하였다. 예전 같았다면 그래도 구관이 명관이라고 역시 내 나와바리 (강북)가 편하다 느꼈겠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대한민국에서 성공하려면 둘 다 아우를만한 그릇이 되어야 하는구나. 불편함도 편리함도 그에 따른 노동과 수고도 돈도. 개의치 않고 커버하되 겸손할 수 있을 때 진정한 그릇이 될 수 있는 거구나. 그러려면 어떤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심지가 필요하겠구나. 그런 의미에서 정말 좋은 경험을 했다. 예전엔 그렇게 기피하던 강남이었지만, 섣부른 편견을 버리고 좀 더 받아들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자문하게 된다. 나에게 재정적인 여건이 풍족해진다면 나도 아무렇지 않게 발렛을 맡기고 현금 삼천원을 쥐어주며 이 모든 대접이 당연하다는 듯 행동하게 될까. 나때는 말이야, 알바했던 고깃집의 육회 에피소드를 꺼내며 그때 그맛이라 극찬하게 될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성형외과를 드나들며 좀 더 젊어보이게, 좀 더 예쁜 눈매와 주름없는 피부를 고집하게 될까. 낮엔 한푼 두푼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을 취재하면서 밤엔 아무렇지 않게 수십만원을 턱턱 내고 와인 한 잔 기울일 수 있을까. 돈만 많으면 나도 그런 사람이 되는 걸까. 문득 궁금해지기도 한다. 난 앞으로 어떤 인생을 걸어가게 될까. 그 질문에 답을 내놓는 것도 나, 나아갈 길을 선택하는 것도 나. 외엔 없다.
그럼에도 지울 수 없는 생각이 있었다. 물질적인 것들에 흔들리지 않고 굳은 심지로 살아가는 이들. (그게 새삼 어려운 일이란 걸 깨달았다). 시간과 돈을 허투루 쓰지 않는 이들. 저기가 맛있고 여기가 유명하고 어디가 좋고 누가 누구를 만나고 헤어지고. 꺼내기 쉬운 가십보다 좀 더 고귀한 이야기들을 건넬 줄 아는 사람들. 본인이 하고 있는 일에 애정을 갖고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들. 불필요한 편의를 권위라 여기지 않는 사람들. 오늘은 유독 그런 사람들이 그리워지는 밤이라는 것. 그런 밤이 늘어갈 수록 나란 사람도 완성되어가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