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병이 모인 아침

by 알로

"이거 부상병이야?"

"응, 어제 온 애들이야."


라는 대화는 우리 집 아침밥상에 자주 등장하는 대화다. 엄마가 즐겨다니는 산책 코스 중 작은 과일가게가 있다. 가게 주인은 팔리지 않는 과일만 따로 빼어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인도에 작은 좌대를 만들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이 무르익은 복숭아나 지들끼리 비벼댄 탓에 멍이 든 딸기들,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사과. 뭐 그런 친구들이 자주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바나나 한 묶음에 천 원. 아보카도 네 개에 3000원. 딸기 한 박스에 5000원. 말도 안 되는 가격인 만큼 상태도 말이 아니다. 그래서 가게 주인은 삐뚤빼뚤한 글씨로 부상병, 이라 적어놓고 그네들을 판다. 거저갖는 가격이지만 꽤나 맛있다. 터지기 직전까지 단물을 물고 있다. 비주얼을 신경쓴다면 절대 손이 가지 않을 것들이지만.


엄마는 그것들을 사 온다. 수거해온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냥 싹쓸이해온다. 매일 아침 최소 다섯 가지 종류의 과일과 여섯 가지 종류의 채소를 해치우는 우리 집 식탁에선 과일소비량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엄마 입장에선 부상병들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오늘 아침에 등장한 건 딸기와 한라봉 그리고 사과 하나. 부상병은 한시가 급하다. 하루만 더 방치했다간 심폐소생술을 해도 버려지는 애들이 더 많다. 한라봉은 한 개, 사과도 한 개인데 딸기는 한 박스가 고스란히 나왔다. 어제까지 먹던 딸기는 탐스럽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던 실한 친구들이었는데, 오늘은 영 상태가 좋지 않다. 포크로 뭉그러진 딸기 하나를 집어 든 아빠는 요리조리 돌려가며 유심히 살펴보더니 단숨에 입으로 가져갔다. "어제 꺼보단 훨씬... 부상병이네." 맛 없다는 말을 굳이 돌려 한다. 부상병을 데려온 죗값으로 엄마는 냉장고에서 연유를 꺼내 든다. "찍어 먹으면 맛있을 거예요."라는 접대용 멘트와 함께.


아빠랑 밥을 먹으면 진짜 행복해. 왜인 줄 알아? 그릇이 깨끗하거든.


이라는 말을 나는 수십년 동안 매끼 듣고 살아왔다. 칭찬이자 압박이다.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짓는 엄마 앞에서 아빠는 음식을 남기지 못하는 신세가 돼버렸다. 언제나 막바지까지 자리를 지키며 꾸역꾸역 부상병들을 해치운다. 오늘 데려온 애들은 진짜 지쳐 보인다, 하고 손도 안 대는 나에게 엄마는 "그렇지? 애들이 몸이 다 이렇게 돼있어" 라며 몸을 비튼다. 마치 당신이 딸기가 된 것 마냥. 유치원짜리 조카가 할법한 몸짓이다. 과일 빙의라니.


말없이 딸기가 담겨있던 그릇을 깨끗하게 비워내는 아빠와 과일의 상처를 온몸으로 표현해내는 엄마를 양 옆에 둔 나는 오늘도 행복한 아침식사를 만끽하고 있다는 걸 실감한다. 나도 이런 결혼생활을, 이런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이 이제 조금 들기 시작한다. 나도 부상병을 사오는 사람이겠지.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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