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에 다녀왔다.

by 알로

진도에 다녀왔다. 지난해 여름부터 아빠는 진도에서 지냈다. 퇴직하고 오늘날까지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매일 아침 날 깨워 아침을 차려주던 아빠도, 매일같이 늦게 귀가하는 나에게 화난 채 안방에 들어가던 아빠도, 청주에 가서 엄마와 지내겠다며 몇 주나 집을 비우던 아빠도. 한낮 엊그제 같은 아빠의 모습들이지만 다 지난날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흘러가버린 시간이 다다른 건 다시 일하는 아빠였다. 아빠는 전주 국제영화제에 출품할 다큐를 만들기로 했다며 낡은 경유차에 온갖 살림살이를 싣고 진도로 떠났다.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고, 몇 주에 한 번씩 또다시 장거리를 달려 서울로 올라와야 하고, 머나먼 진도에서 빌린 낡은 집 한 채에 홀로 지내야 하는 아빠였지만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보였다. 아빠는 다시 일하는 것에 희열을 느꼈을 것이다. 나에겐 그게 느껴졌다.


이제 가면 언제 또 볼까, 싶은 마음에 졸린 눈 비벼가며 마당에 나가 아빠를 배웅했던 게 엊그제였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났다. 때마침 나는 휴가였고 때마침 아빠는 진도살이를 정리하겠다고 했다. 한순간의 망설임 없이 진도행을 택했다. 외딴곳에서 1년을 보냈을 아빠의 마지막 진도. 그 여정을 단 며칠만이라도 함께하는 것에 난 의미를 느꼈다. 작고 소소한 것들에 감탄하는 감성, 모든 것에 의미부여를 하며 마음을 다잡는 나의 성격은 온전히 아빠로부터 물려받은 것들이었다. 그렇기에 진도에서의 삶이, 연고 없는 낡은 집에서 보낸 시간들이, 떠나는 마지막 날 아빠가 느낄 감정이, 내게도 소중했다. 아마 나보다 훨씬 진한 감정을 느끼겠지. 난 그런 아빠 옆에 있어야겠다. 그게 진도로 향한 내 이유의 전부였다.


우리 집엔 아주 낡은 차가 있다. 2002년. 그러니까 내가 교복 입던 시절부터 있던 차다. 경유차다. 경유차는 평일에 서울을 돌아다닐 수 없는 적폐 차량이다. 온 집안에 낡은 것, 처치 대상인 것, 밥상에 남은 반찬마저도 아빠의 몫이 되는 우리 집에서 그 오래된 차량 역시 아빠의 몫이었던 건지 아빠는 용케도 그 차를 잘 끌고 다녔다. 폐차를 하네마네 해도 정작 견적서를 앞에 갖다 두면 "조금 더 탈까..." 망설이는 아빠였다. 지금 폐차하면 몇 백만 원이라도 받을 수 있는데 왜 그걸 굳이, 라는 나의 말은 들리지 않았을 거다. 그렇게 위기를 모면하고 목숨을 연명하는 그 낡은 차를 타고 나와 아빠는 감시카메라에 들키지 않기 위해 캄캄한 새벽에 일어나 진도로 출발했다.


나의 면허증은 장롱에 지내기 위해 태어난 것이다. 서해안고속도로와는, 비가 내리는 고속도로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 아빠는 내게 운전대를 내주지 않았고 난 아주 작은 죄책감으로 '자지 않는 동승자' 역할을 자처했다. 이따금씩 안마를 한다던가. 괜히 창문을 한 번 시원하게 내려 바람소리를 차 안에 가득 채운다던가. 인터넷에서 찾은 '잠 깨우는 법'대로 귓볼을 세게 꼬집는다던가. 괜히 '그때 그거 어떻게 됐냐'며 관심도 없는 질문을 던진다던가. 이도 저도 안 되면 아몬드나 매운 사탕 같은 씹을 거리를 아빠 입에 구겨 넣는다던가. 그렇게 장장 다섯 시간을 달려 우린 진도에 도착했다.


아빠가 보냈던 집은 진도읍에 있는 낡은 집이다. 나영석 피디가 좋아할 것 같은 집이다. 삼시 세 끼나 일박이일에 나올 것 같은 마당이 넓고 적당히 허름해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스텝 수십 명이 들어가 앉아도 거뜬히 버텨낼 넓은 면적. 집안 곳곳에 버려진 것처럼 나뒹구는 농업용 장화, 지게, 빗자루, 장작 같은 자질구레한 살림살이들. 하얗게 덧칠한 흙벽 위로 묻어 나오는 손때의 흔적들.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마루. 삐걱거리는 바닥. 기억자 모양으로 단층이지만 정갈한 내음을 잔뜩 풍기는 파란 지붕의 낡은 시골집.


그곳에서 어르신이 돌아가셨단다. 그 집을 고은이 아버지가 사들였다. 고은이 아버지는 아빠가 찍는 다큐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이래저래 연이 닿아 아빠는 그 집에서 살게 된 것이었다. 마당 문을 열고 나오면 폐가가 한 채 있고, 드넓은 논밭이 펼쳐지고, 아주 가끔 목줄 풀린 진돗개들이 돌아다니는 그런 평범한 시골마을. 아빠는 매일 밤 매섭게 몰아치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무섭고 두려웠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꼭 그때 안 하고 다 지나서 떠나기 전날 밤에 건네는 아빠를 보며 역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곱씹었더랬다.


진도에서의 3일은 굵고도 짧았다. 주옥같은 딸내미를 세월호에서 잃었어야 했던 한 아버지의 눈을 오랫동안 바라봤던 밤이 있었다. 아빠랑 옆에 앉아 손 꼭 붙잡고 맥주를 마시는 밤도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녹이 슬고 너무 작고 초라해서 도무지 이 안에 그 앙증맞고 귀여운 아이들이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던 세월호를 눈앞에 뒀던 목포신항도 있었다. 진도와 세월호는 사실, 침몰 해역이라는 걸 제외하곤 아무런 연고도 없는 두 존재인데, 세월호 참사라는 걸 떠안게 된 지역이 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을 눈에 담았다. 진도의 4월이 이리도 노랬던가, 어딜 가나 눈이 부셨던 유채꽃밭이 있었고 1년 동안 아빠가 신세 진 사람들을 만나며 마음속으로 너무 감사했다고 아빠 대신 말씀드린다고 울부짖었던 밤이 있었다. 그리고 아빠와 대판 크게 싸운 밤도 있었다. 버스 타고 서울에 가겠다며 친구에게 분통을 터뜨렸던 새벽의 카톡도 있었다.


그래서 숱한 글을 쓰고도 지우고 쓰고 또 지웠다. 너무 많이 울었고, 지금도 사실 그 감정들이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한 채 떠돌고 있다. 글쓰기 100일 목표를 달성하고 나니 하루에 하나씩 올리는 것에 급급해하지 말고 제대로 된 조금은 더 정리가 된 글을 써내고 싶다 다짐했는데... 다짐하자마자 찾아온 난관이다. 아빠, 사람, 세월호. 그 어떤 것도 쉽사리 적어낼 수 없는 것들을 짧은 시간 동안 온몸으로 담아내고 돌아왔다. 그래서 아직 정리가 필요하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내가 진도에 있다는 걸 알고 한걸음에 달려온 사람. 수협에서 방금 주문했다며 횟감을 떠 온 사람. 아빠가 자주 가던 양푼이 동태찌개 식당 이모님들. 아빠가 연락이 닿지 않을 때마다 엄마가 '집에 좀 가봐달라'라고 편하게 말할 수 있었던 그야말로 아빠의 이웃들. 새삼스럽지만, 아빠는 참 인복이 많다. 고집도 세고 감정표현이 거칠기도 하고 토라지면 말도 안 하는 쉽지 않은 성격인데 그저 곁에서 보듬어주는 사람들이 늘 있다. 나도 그렇다. 그런 아빠를 보며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또 이렇게 시간을 같이 보내면 역시나 피는 못 속인다는 걸 실감한다.


수많은 장면들이 떠오르고, 그중엔 오래 떠올릴수록 가슴이 아려지는 장면들도 있어서 내일도 출근해야 하는 나는 아무래도 이걸 오래 붙잡고 있을 자신이 없다. 다만 깨달은 게 있다면 사람의 인연이란. 부부의 인연이란. 가족의 인연이란. 그게 참 단칼로 잘릴 것 같으면서도 (실로 그러한 경우도 많지만) 또 쉽게 그러지 못하는 기이한 것인지라 언제나 감사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 이어야 한다는 것. 한지붕 아래 살면서 나는 참 아빠를 잘 아는 사람이라 자부했는데, 사실은 쥐뿔도 모르는 딸이었다는 것. 그렇게 열심히 부대끼고 때론 목청 높여 내가 맞고 내가 잘났다 떠들 수도 있는 것. 마냥 사랑해 좋아해 존경해만 오가는 가족만이 전부인줄 알았던 나에겐 큰 충격이었던 3일이었다. 정말 다녀오길 잘했다. 이젠 나에게도 아주 큰 의미가 되어버린 진도 그리고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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