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그것

by 알로

어느 여름이었다. 우린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류장이 있던 대로변은 가장 높은 건물이 고작해야 4층인 구시가지 느낌의 동네였다. 언제부턴가 중국인 관광객이 늘어났고 사거리엔 호텔과 백화점이 들어섰다. 공룡처럼 거대한 두 건물이 들어서자 순식간에 거리는 변했다. 힘겹게 버텨내던 낡은 건물들이 사라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우리가 서있던 버스정류장 맞은편엔 유독 허름해 보이는 건물 한 채가 홀연히 자리하고 있었다. 불야성을 이루는 빌딩 숲 사이, 불 꺼진 낡은 간판과 빛바랜 창문엔 왠지 모를 적막감이 맴돌았다. 저 건물도 곧 사라지는 걸까.


"저 건물주는 좋겠네."


난데없이 무슨 말인가 싶어 친구를 쳐다봤다. 그의 시선도 나와 같은 곳에 멈춰있었다.


다짜고짜 화가 났다.


"왜?"

"뭐가?"

"왜 저 건물주는 좋을 거라고 생각해?"

"그게 순리야. 어쩔 수 없어. 저 옆에 건물들 봐 봐. 저런 고층건물 사이에 오래 버틸 수가 없어. 부동산이 그런 거고 자본주의가 그런 거야. 버틸 때까지 버티다 웃돈 받고 팔 걸?"


친구의 말대로 건물주는 돈을 벌 거다. 틀린 말이 아니다. 다만 그가 마냥 기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도미노처럼 밀려드는 자본주의에 허탈할 수도 있고 쓴웃음 지으며 돈으로 위안 삼을 수도 있다. 돈방석에 앉았다고 잇몸 만개한 나날을 보낼 수도 있다. 그의 속마음까진 알 수 없는 거다.


"내게 의미있던 공간이 개발되면서 떠밀려 나가야 하는 상황에 돈 준다고 누구나가 좋아하는 건 아니야."

"에이, 돈 생기는 걸 누가 싫어하냐? 물론 정은 들었겠지.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겪어봤으니까 알지, 이 자식아.


구구절절 나의 과거를 털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돈을 번다는 건 그의 말마따나 펙트였고, 건물주가 가질 감정으로 갑론을박을 벌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거리, 건물, 공간, 도시, 집. 이 모든 게 그에겐 숫자놀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 현실이 그러하니 대다수가 그럴 것이고, 대다수가 그렇다면 그게 정답인 거라는 그의 논리가 불편했다.


한 3년쯤 지났을까. 그날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로변은 쉴 새 없이 크고 작은 변화를 만들었다. 유동인구는 나날이 늘어났다. 자주 가던 커피숍 창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노트북 전원이 들어오길 기다리는데 맞은편, 철거작업이 한창인 공사현장이 눈에 들어온다. 이미 부서질 대로 부서진 회색 건물 외벽을 포클레인은 끊임없이 부숴대고 있었다. 굉음이 울릴 때마다 파편들 사이에선 뿌연 먼지가 올라왔고, 현장 한켠엔 호스를 든 인부가 열심히 물을 뿌렸다. 양 옆에 높게 들어선 건물은 부서지고 있는 건물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신축이었다. 아니, 철거된 건물은 도무지 이 거리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3년 전에 봤던 그 건물이었다.


그의 말대로 건물은 허물어졌고 건물주는 돈을 벌겠지. 그가 말했던 것처럼 또다른 곳에서 건물주가 될 생각에 잇몸 만개했을 수도 있겠지. 이 거리가 변해가는 속도는 그 누구도 걷잡을 수 없이 더욱 빠르게 진행되겠지.


시간이 흐르고 빛이 바래간다는 것,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다는 것, 쓸모가 없어진 것들은 볼품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 그 어느 것에도 반기를 들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그저 사람도, 건물도, 동네도, 제수명을 다 하고 제때 떠나갈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제대로 된 또다른 시작이 완성되는 거 아닐까. 도미노처럼 떠밀리듯 사라져 가는 건 아직 내겐 잔인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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