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부터 아이템이 엎어지기 시작했다. 흔히 있는 일이지만 적응하기란 쉽지 않다. 날이 맑아야 촬영할 수 있는 현장에 갑작스런 비 소식은 야속하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에 팀원과의 카톡방엔 한숨이 늘어갔다.
그때, 속보가 날아들었다. 고성에서 또 산불이 났다. 건조주의보와 강풍으로 매년 이맘때면 마음 졸이는 강원도다. 대형산불엔 전국 소방 동원령이 떨어진다. 자정을 넘긴 시각, 결국 최고 수위로 격상했다. 전국 각지에서 소방차가 모여들었다. 우리 촬영팀도 달려갔다.
아홉 시 뉴스가 끝나고 지상파 방송사에선 특보가 이어졌다. 산불은 바람과 속도, 방향에 따라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말그대로 화마 같은 존재다. 잠을 포기하고 침대에 간이 책상을 펼쳤다. 커피 한 잔 내려놓고 특보를 틀었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상황을 기록해뒀다가 촬영팀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바로 촬영을 시작할 수 있게 원고를 보내놔야 했다.
30명이었던 대피 주민은 100명이 됐고 순식간에 300명을 넘어섰다. 신병교육대와 사령부 소속 장병 1800명이 대피했다. 일부는 부대에 남아 탄약고를 지키기 위해 밤샘 사투를 벌였다. 각 방송사에서 출동한 기자들은 카메라 앞에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거센 바람 때문이었다. 이따금씩 산림청 제공 영상이 재생됐다. 산불진화에 나선 대원들의 헬멧엔 카메라가 달려있었다. 코앞에 화마를 둔 카메라가 찍은 영상은 생각보다 아찔했다. 바람 한 번 불 때마다 불티들이 순식간에 날아올랐고, 대원들을 뒤덮었다. 영상 속 목소리는 다급하다 못해 절박했다. 특보를 돌려보다 새벽녘에 잠이 들었다.
오전 7시. 잠이 깼다. 오전 8시. 주불을 진화했다는 속보가 뜨기 시작했다. 일출 시각부터 순차적으로 헬기를 띄우고 밤새도록 대원들이 사투를 벌인덕분이었다. 정말 잘 된 일이었다. 정말 잘된 일인데, 특보와 함께 현장에 밀착하려던 우리의 계획은 산산조각이 났다. 촬영팀이 고성에 도착한 지 세 시간 만에 잔불 정리가 시작됐다. 민가 6채가 전소됐지만,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오전 중에 잔불 정리가 끝나고 대피소에서 잠 한숨 못 잔 주민들은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갔다. 감식 검사는 오후나 돼야 시작될 거고 결과는 이틀이나 지나야 알 것이다. 고민이 시작됐다.
촌각을 다투는 현장에선 1분 단위로 수십 개의 속보들이 쏟아진다. 웬만한 기사는 당일에 나온다. 새로운 사실이 없다면 굳이 월요일 뉴스로 내보낼 이유 또한 없었다. 아이템을 엎어야 하나, 뭐라도 만들어야 하나. 짧고 굵은 회의 끝에 취지를 바꾸기로 했다. 전환점은 현장에 있던 한 노인이었다.
그는 불타버린 아내의 산소를 서성이고 있었다. 잔불 정리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바람이 불기라도 하면 땅에 뒤덮여있던 재가 날아가버린다. 땅속에 있던 불씨가 산소와 만나 재발화될 가능성이 생긴다. 주불진화만큼이나 잔불 작업이 중요한 이유다. 산림청과 소방대원들이 철수한 뒤로도 연기가 피어올랐던 모양이다. 작고 검은 연기는 마을 곳곳에서 존재감을 끈질기게 드러냈다. 노인은 잿더미가 돼버린 아내의 산소 옆에서 낙엽을 들추고 밟고 덮어가며 잔불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를 눈여겨본 건 현장에서 망연자실해있던 취재기자였다.
그랬다. 우리는 어쩌면 주불진화에만 주목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일단 불부터 끄고 보잔 생각은 불껐으니 끝났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강원도에선 매년 크고 작은 산불이 발생하고, 작년에 비해 올해는 피해규모가 적은 편이었다. 인명피해가 없으니 다행이었고, 발화지점과 원인은 곧 밝혀질 테니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이 산불을 그저 사건으로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누군가는 평생 살아온 집을 잃었다. 전국에서 동원된 소방차와 날이 밝자마자 진화작업에 나선 수백 명의 장병들에게 누군가는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아갈지도 모른다. 시뻘건 불길이 캄캄한 하늘로 치솟는 오밤중의 공포를 누군가는 코앞에서 지켜봤다. 그들은 한동안 반복되는 트라우마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불과 수백 미터 옆까지 산불이 덮쳤던 동네 주민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잿더미가 된 산림을 마주하며 지낼 것이다. 산불로 파괴된 산림이 복구되기까지 최소 30년에서 50년. 사람의 기억은 몇 년까지 갈까. 강원도 산불 이재민 중엔 아직도 본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들이 많다. 그 수많은 이야기들을 뒤로하고 '피해가 없는 편이니 자, 다음 뉴스로!'라고 넘어가며 살아왔던 건 아니었나. 뉴스의 본질은 사건이 아닌 사람이 아니었던가. 누구보다 나에게 묻고 싶은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