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를 만끽하러 다들 파주에 놀러 오는 건지 아침부터 동네에 차들이 바글바글했다. 맛집이라 소문난 식당 앞엔 아침부터 긴 줄이 생겼고 번호표를 받아 든 사람들은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이 집(우리 집) 저 집(우리 옆집)을 넘나들었다. 다들 마스크를 풀어 재끼고 꽃구경 삼매경. 사람들을 피해 도망쳐 나왔다. 때마침 구제해준 친구와 드라이브를 가기로 했다.
파주는 경기도지만, 위아래로 넓은 지역이다. 북쪽으로 달릴수록 여기가 강원도인지 경기도인지 분간이 안 간다. 연천과 포천이 강원도인지 경기도인지 헷갈리는 딱 그 느낌처럼. 동네 산치곤 산세가 꽤나 웅장하다. 접경지역이란 걸 시시각각 체감시켜주는 녹슨 철조망이 있고 길게 뻗은 그 철조망 너머로 잔잔하게 흐르는 임진강이 있다. 오늘은 봄날 치고도 하늘이 꽤 맑았다. 강물 위로 내려온 햇살의 반짝거림이 유독 눈부셨던 날이었다. 설악산 버금가는 환상적인 녹음과 두 귀에 간지럽게 파고드는 새소리까지. 드라이브치곤 꽤나 호강했던 당일치기 여행이었다.
가장 사람이 없는 곳으로 달렸다. 오랜 친구라 그런지 "최대한 북으로 가자"고 했더니 "고조 동무 평냉드실라우?" 란다. 척하면 척이다. 오늘은 평양냉면이 땡기는 날씨이기도 했다. 한참 달리는데 지도에 금파리 성터라는 지명이 눈에 띄었다. "금파리 성터 가볼래?" 지나가는 말로 던졌는데 "금 사게?"라는 말도 안 되는 드립을 치며 다시 방향을 바꾼다. 역시 척하면 척이다.
금파리 성터는 미지의 세계였다. 아주 극소수의 낚시꾼들만 찾는 곳. 지도에 나오지만 주소가 나오지 않는 곳이다. 내비게이션을 찍을래야 찍을 수가 없다. 불편한 사이였다면 배려한답시고 '다음에 가자'고 하겠는데 조금 응석을 부려보았다. 자기가 더 가보고 싶다며 한 술 더 뜬다. 마음이 읽히니 참 고맙다. 비록 비포장도로를 달릴 땐 표정이 다소 굳어있었지만. "이럴 줄 알고 세차를 안 했다"며 농담 섞인 뼈 있는 진담을 던지기도 했지만 말이다.
얼추 찾아내 도착한 곳은 공터였다. 주차돼있는 차들은 서너 대. 임진강이 보이긴 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길이 없고 눈 앞은 낭떠러지다. 풀숲 사이로 몇 발짝 내딛어보니 절벽아래 사람이 보였다.
"사장님 거기 어떻게 내려가요?"
"몇 명이세요? 두 분이세요?"
"네"
"저 오른쪽으로 내려오면 밧줄 타고 내려오면 돼요."
어떻게 내려가냐는 질문에 몇 명이냐는 대답이 돌아올 줄이야. 흰 티에 흰 운동화를 신은 나와 최근 하얀색 나이키 신상을 구입한 친구. 예전 같았으면 야 운동화 빨면 되지! 하고 내려갔을 텐데 철든 척 좀 했다. 사실 흰 운동화가 생각보다 안 빨린다는 걸 얼마 전에 터득했다. 나의 머뭇거림과는 달리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친구가 먼저 내려간다. 머리카락 한올 떨어지는 것도 싫어해 매일 밤 돌돌이를 돌리는 애가 흰 운동화 신고 밧줄 탄다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기적을 벗 삼아 밧줄에 의지해 내려갔다. 3미터 정도 되는 절벽이었지만 낚시꾼들이 수없이 드나든 탓에 디딜만한 바위가 많았다. 마지막 발을 땅에 닿았다. 고개를 들자 아까 그 사장님이 우리를 반겨준다.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남성은 진흙 아래 솜씨 좋게 심어놓은 낚싯대를 만지작거리며 우릴 향해 물었다.
"처음 왔어요?"
"네. 지나가다가 신기해서요."
"저도 여기 세 번째인데요. 너무 좋아서 계속 오고 있어요. 참 좋죠?"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자연스레 이어졌다. 아가씨 거기 서보세요 사진 찍어드릴게요. 그런데 이 성터가 왜 생겼는지 아나요. 여기가 유적지거든요. 고구려의 흔적이죠. 삼국시대 쟁탈의 현장이었어요. 지금도 전쟁터잖아요. 이 적벽이 멋지지 않아요? 거기 서봐요. 이야 잘 나오네. 근데 이거 카메라 죽이네. 잠깐 서봐요, 더 찍어줄게. 어디 살아요? 무슨 유 씨야? 고향은 어딘데. 나는 영등포 살아요. 다음엔 여기 아내랑 오려고. 너무 좋죠? 나? 나 여기서 이것저것 많이 낚았지. 잉어도 낚고. 장어도 낚고. 여기가 1급수라 물이 좋아요. 고기들도 아주 튼실해.
그렇게 우린 낯선 타인에게 귀를 내주고 휴대폰도 내주었다. 무려 30분 동안.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심지어 찍어준 사진은 정말이지 마음에 쏙 들었다. 그의 낯선 친절이 반갑고 고마웠다. 아마도 나와 친구가 단 둘이 찾아 헤매다 밧줄을 발견해 그곳에 내려갔다 한들 우리의 모험은 어딘가 부족했을지도 모른다. 사람. 결국 여행지에선 사람이 모든 걸 완벽하게 만들어준다.
*금파리 성터 : 고구려 궁예왕이 철원에서 피신해있는 동안 쌓은 토성으로 길이 1500미터 높이 6미터였으나 대부분 멸실됐다고 한다 (문화유적총람) / 37번 국도 확장하면서 도로확장공사 때 지표조사를 실시했는데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초기 기와편들이 출토됐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