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까지만 해도 출퇴근 길 버스에 마스크 안 쓴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오늘 아침엔 네 명이나 있었다. 창밖은 봄 날씨. 석가탄신일 앞둔 마지막 출근길은 다들 표정부터가 여유롭다. 오늘 하루 동안 제주도 입도객만 3만 6000명에 달한단다. 배드민턴 체육관들은 내달 중순에 열지 말일에 열지를 고민하고 있다. 2월부터 외출과 면회가 금지됐던 장병들은 일주일 전부터 제한이 일부 완화됐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전 세계와는 달리 한반도 남쪽엔 조금씩 훈풍이 불어오고 있다.
덩달아 마음이 붕 뜬다. 비록 내겐 석가탄신일도 근로자의 날도, 어린이날도 빨간 날 아닌 정상출근이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 코로나에서 조금씩 해방되고 있다는 느낌에 비할 바가 아니다. 예전 같았으면 마스크 안 쓴 사람 한 번 흘겨보며 저 멀리 피해 빙 돌아갔다. 제주도에 3만 명 입도한다 그러면 이 시국에 관광이라니, 혀를 찼을 거다.
요즘은 달라졌다. 갇혀있던 군인들도, 코로나로 무급휴가를 받은 이들도, 집 안에서 자가격리를 했던 이들도, 다들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많이 답답했겠지. 여행 가고 싶었겠지. 알아서 조심하겠지. 계약이 무산되고 일정이 미뤄지고 일자리를 잃은 크고 작은 피해들은 여전히 현존하지만 그래도 다들 건강하기만 했으면 하는 바람.
그렇게 조금씩 평온을 되찾아간다고 생각했다. 하늘이 또 어찌나 예쁜지. 바라만 봐도 미소가 절로 나오는 자연 본연의 색을 한껏 자랑한다. 하얗게 피어오르는 뭉게구름에 가을처럼 맑고 높은 하늘의 파란색에 심취해있던 점심시간, 메시지가 날아들어왔다. 일본에서 오랫동안 아르바이트했던 가게 지인들이 보낸 것이었다. 내겐 가족 같은 사람들이다.
내일부터 가게 문 닫기로 했다.
점장은 내일부로 퇴사.
도쿄의 음식점들은 20일 전부터 영업단축을 시행하고 있다. 오후 8시까지 영업하되 주류 판매는 오후 7시까지 허용된다. 어디까지 요청일 뿐 강제는 없었지만 거리의 모든 가게가 요청에 응했다. 저녁 장사를 하던 집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영화 <심야식당> 모티브로 알려진 신주쿠 골든 거리도 하루 유동인구가 300만 명을 넘어가는 신주쿠역도 텅 비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애써 밝은 척하던 그들이었다.
버틸 수 있어, 금방 지나가겠지.
오늘 런치 다섯 명밖에 안 왔지만... 괜찮아!
이럴 때 쉬어가는 거지 뭐.
한국처럼 해주면 좋을 텐데... 우리도 서울처럼 괜찮아지겠지?
검사율이 현저히 떨어지니 누구나가 예상했던 일이겠지만 오늘 도쿄에서만 47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이로써 도쿄 총확진자는 4000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만 117명에 달한다. 서울시는 오늘 기준으로 확진자 633명. 그중 해외 접촉 관련이 254명이다.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도쿄도 코로나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일본인 친구 집엔 아베노 마스크가 도착했단다. 한 장에 1000원이라 알려진 바완 달리 아무리 단가 300원을 넘을 수 없는 퀄리티란다. 조금만 세게 잡아당기면 끊어질 것 같고 구급상자에 있을 법한 거즈를 덧대 만든 천 마스크인데, 그마저도 반갑단다. 면 마스크도 천 마스크도 아닌 꽃가루 알레르기용 마스크 한 장을 가지고 두 달 전부터 빨아 써 왔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 아베 총리는 한국은 중요한 나라... 코로나 대응과 관련해 지속적인 협력을 원한다는 뜻을 밝혀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한국이 진단키트를 지원하면 성능 평가가 필요할 것이라며 열심히 콧대를 세우며 안일하게 대응했던 일본 정부다. 일본 기업이 15분 만에 확진을 확인할 수 있는 진단키트도 개발했다고 하니 앞으로 한 달이 어떻게 흘러갈지 의문이다. 기약할 수 없는 미궁에 빠진 도쿄.
하루에 확진환자가 1000명에 육박하던 지난달 초. 도대체 일본 언론에선 한국을 어떤 식으로 보도하길래 이 정도일까 싶을 정도로 연락을 많이 받았었다. 한국 괜찮냐며 마스크는 있냐며 살아남아야 한다며. 한 달 사이에 상황이 뒤바뀌었다. 국민들이 아무리 조심해도 정부가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부질 없다는 걸 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