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글쎄 걔가... 최○실을 모르더라고. 내가 최○실 이야기를 했는데, '최○실이 누구야?' 되물었다니까? 근데 나는 그 친구가 부러운 거야. 이야, 넌 최○실을 모르고도 잘 사는구나. 심지어 행복해보인다야. 나는 그런 네가 부럽다. 딱 그 생각밖에 안 들더라."
태블릿PC가 한창 핫했던 3년 전쯤 지인이 해준 이야기다. 가장 친한 친구와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최○실을 모른다는 친구의 말이 폭탄선언처럼 느껴졌단다. 하기사 듣는 나 역시 몇 번이고 되물었던 기억이 있다. "정말? 진짜 최○실을 모른대?" 하지만 더 궁금한 건 따로 있었다. '최○실을 모르는 그 친구랑 기자인 너랑 가장 친한 사이라고?' 물론 물어보진 않았다. 지금은 안다. 묻지 않아 다행이었다는 걸. 다시 생각해도 편협한 발상이다.
가끔 그런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무엇하나 부족할 것 없이 완벽해보이는 사람, 유식하고 어려운 말을 즐겨쓰는 사람 앞에선 나도 완벽하고 유식해져야 할 것 같은 압박감.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들고 마음이 살짝 불편해지는 느낌. 커피가게 사장님 앞에서 커피 이야기를 꺼내고, 운동선수 앞에서 운동에 대해 논하는 것과는 또 다르다. 상식, 유식, 지성인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형언할 수 없는 불편함이 내겐 있었다. 하지만 그 기준이 너무나 주관적인 것이었다. 그러니 착각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보도국에 있으면 시사는 꿰뚫고 계시겠네요?" 라는 질문을 들을 때 난 할 말을 잃는다. 알아야 마땅한 것일 텐데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니 할 말이 없다. "나는 너한테 카톡보낼 때마다 네이버에 쳐봐. 맞춤법 틀렸나 확인하려고." 라는 말을 우스갯소리처럼 던지는 친구에게 왜냐고 되물었다. 뉴스 관련된 일을 하니까 틀리면 안 될 것 같단다. 언제부터 뉴스가 상식의 기준이 된 걸까. 남이 아는 걸 나도 알아야한다는 부담감. 남이 아는 걸 내가 모르면 창피하다는 압박감. 모른다는 걸 굳이 내보이고 싶지 않은 속마음. 인간들의 마음 속엔 가면의 세계가 끊임없이 작용하는가보다.
얼마 전 투자자문사의 직원과 만났다. 그 역시 비슷한 질문을 던졌다. "보도국에서 일하세요? 와, 그러면 상식이 정말 풍부하시겠네요." 딱히 대답할 말이 없어 "그렇지도 않아요." 얼버무렸다. 보도국 내 정치, 경제, 산업, 사건사고(사회), 국제(외교안보), 탐사보도, 스포츠, 문화 분야가 나뉘어져있고요.... 진지하게 대답할 질문도 아니었다. 우와, 머리 하셨어요? 물어보듯 상식이 풍부하시겠네요? 라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하지만 더 놀란 건 그 다음이었다. "중앙일보가 JTBC랑 연관이 있었어요? 네? 동아일보가 채널A요? 그럼 조선일보는 TV조선이에요? 저는 정말 몰랐어요" 저는 정말 놀랍네요, 라고 말할 뻔했다. 투자자문하다보면 뉴스 볼 일이 많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도 나의 착각이요, 뉴스를 안 보지만 주식 경제는 한경신문으로 파악한다는 것 또한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그 모든 대화를 참 멋쩍게 나누면서도 그의 표정은 한결같이 당당했다.
그러니까 내가 아는 걸 상대방도 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나에게 당연한 세계가 남에겐 관심 밖의 세상일 수 있다. 나에겐 상식이 누군가에겐 선택의 여지로 남겨지는 교양일 수도 있다. 최순실과 종편방송사도 관심 없는 이에겐 촛불시위나 태극기부대가 어떻게 비춰졌을지. 네이버나 다음같은 포털사이트에 하루에도 수백개씩 오르내리는 뉴스는 그들이 관심을 왜 끌지 못하는 것인지. 그게 가능한 일인지도 신기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라고 최순실과 태블릿PC의 정황에 대해 꿰뚫고 있는 게 아니다. 마스크 5부제가 어떻게 시행되어왔고 앞으로 어떤 변화가 예상되는지 매끄러운 문장으로 설명해내기도 어렵다. 지상파 3사만 있던 시절과 현재의 종편방송국의 역사를 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나도 아는 건 단 한 개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얼마전 정신이 번쩍 드는 술자리 대화가 있었다. 친한 선배가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김현식 노래를 따라 불렀다. 한참 가사를 음미하더니 김현식을 아냐, 고 물어왔다. "학생 때 많이도 들었지. 그때는 돈이 없잖아. 없는 돈 모아서 내가 유일하게 한 게 뭔지 알아? 레코드 가게 가서 김현식 노래 녹음해달라고 한 거야. 그 녹음테이프 똑같은 거를 몇 개나 사서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들었지. 같은 거 몇 개나 복사해서 늘어질 때까지 들었다고. 내 우상, 전부지."
옆에 있던 후배 덩달아 맞장구친다. "아, 선배. 저도 김현식 좋아하죠." "사랑했어요, 엄청나지 않았습니까. 대단했죠." 고개 숙인채 상기된 얼굴로 추억을 회상하던 선배, 갑자기 대노한다.
"니가 김현식을 알아?"
"김현식 알죠. 그 시대를 대표하는..."
"니가 아는 그건 아는 게 아니야."
"?"
"니가 뭘 안다고."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도 좋아했어요. 김현식."
"너는 그렇게 말하면 안돼. 너가 아는 그 정도로는 김현식을 안다고 말하는 게 아니야."
"볼펜으로 테이프 감아서 듣고 또 듣고 그렇게 테이프 몇 개가 나가고 하는 그걸 아냐고 너가."
활자로 옮기고 보니 대노한 선배가 상당히 괴짜스러워 보이지만 대노한 선배의 심정도 덩달아 맞장구치던 후배의 마음도 알 것도 같았다. 선배는 '안다'는 단어 하나에 당신의 청춘까지 다 바친 크나큰 의미를 부여했고, 리액션 좋은 후배는 나름의 의미를 부여시켜 공감의 뜻을 전달했던 것인데, 선배에겐 그게 못마땅하게 들렸을 수도 있다. 그날 김현식 화두는 선배의 한마디로 종결됐다. "니 어디가서 아는 척 하지마라."
섣부른 아는 척은 분노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일까. 뉴스를 보지 않는다는 지인의 당당함이 왠지모르게 싫지 않았다.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는 나의 눈빛에 못이기듯 앞으로 뉴스를 챙겨봐야겠다던 빈말 섞인 리액션도 반가웠다. 앎의 시작은 모름의 인정이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그는 그저 또다른 작은 시작을 맞이했을 뿐일테니.
예전 메일함을 뒤적거리다 2009년에 아빠와 주고받았던 메일을 발견했다. 난 일본에서 논문 막바지 작업에 한창이었고 아빠는 한창 방송 편집작업 마지막 단계였던 모양이다. 아르바이트부터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공부까지 어느 것 하나 신경쓰이지 않는 게 없는 아빠는 바쁜 와중에도 딸내미에게 몇 자 적어 보냈다. 나는 그런 아빠에게 어른인 척, 다 아는 척 그런 말을 했다. "편집... 피곤하시겠지만 크게 보고 멀리 보면 그것도 보입니다."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서 멋있는 척 던진 말인 것 같다. 다시 읽어봐도 낯이 뜨겁다. 방송국 들어와 7년차인 지금도 편집의 '편'자도 모르는 지금의 내가 있는데. 대학 갓 졸업한 애송이가 방송 30년차인 베테랑에게 '크게 보고 멀리 보라'며 훈수를 뒀던 거다. 정작 그 세계를 알면 섣불리 하지 못할 말도 모르면 쉽게 내뱉는다.
그렇기에 도대체 어디까지가 아는 것이고 모르는 것이며 아는 척인 건지 모르겠다. 다만 그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알겠다. 모름을 당당하게 인정할 때 앎의 시작이라는 것도. 나는 아직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