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떻게 남자를 만나. 나는 집도 있고 직업도 있고 다 있는데 남자만 없어. 이제 결혼만 하면 돼. 근데 괜찮은 남자는 다 갔어. 다 끝났어."
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거든. 괜찮은 남자는 진짜 다 갔나? 근데 아니야. 내가 괜찮은 사람인데 난 아직 미혼이잖아. 그럼 어딘가엔 나 같은 사람이 있다는 거지.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 난 딱 나처럼 괜찮은 사람을 만날 거야."
라고 말했다.
돌아온 친구의 대답은
"난 참 너처럼 근거 없는 자신감이 부러워."
근거가 없다니. 익스큐즈미?
싸울뻔했다.
겸손과 자존심, 오만과 당당함은 경계선을 쉴 새 없이 넘나 든다.
소셜 라이브에 출연했을 때 사장이 "일본어도 잘하고 이번에 공이 좀 컸겠어요?" 라며 내게 시선을 돌렸을 때 난 겸손한답시고 말했다. "아니요, 한 게 별로 없습니다." 사장은 먹잇감을 문 사자처럼 곧바로 되물었다. "그럼 왜 갔어요?" 스튜디오는 웃음바다가 됐다. 정확히 하루가 지나고 알았다. 멍석을 깔아준 자리에 지나친 겸손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것을.
자존감이라는 게 참 얄팍하기도 해서 상대방의 눈초리부터 언행 하나하나에 휘둘리기도 한다. 나를 깔보는가 싶을 때 열 받으면 흔들리는 게 자존감이다. 나를 추켜세워주면 덩달아 기분 좋아지는 것 역시 자존감이 상승한다는 뜻이겠다. 하지만 그 누구도 없는 나 홀로 있는 자리에서 나의 자존감은 얼마나 올라와있는가. 내가 나에게 몇 점을 줄 수 있는가. 나는 몇 점짜리 인간인가.
실로 이 질문은 수행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기본적인 자문이기도 하다. 우연히 들으러 간 강의시간에 아빠는 75점, 엄마는 100점, 나는 95점. 내 친구는 80점, 친구의 남편은 100점을 줬다. 가장 의외였던 건 친구의 남편이었다. 어떻게 100점을 주었냐는 물음에 "내가 나한테 100점을 안 주면 누가 누겠어?"라고 답했던 그. 무슨 생각으로 답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날 그 대답처럼 그는 언제나 누구 앞에서나 늘 당당한 친구다. 인정할 건 인정하는 남자다. 본인만의 줏대가 확실하다. 그 모습이 결코 오만스럽다던가 꼴사납지 않다. 그저 대견하고 멋져 보인다. 자존감이 높은 이들은 그렇게 형언할 수 없는 매력을 끊임없이 뿜어낸다.
난 그 반대 케이스였다. 겸손이 미덕이라 생각했다. 겸손과 당당함의 차이를 몰랐다. 내가 가진 것 이상을 부풀려 말하는 건 문제가 있지만, 내가 가진 것 그 이하 바닥을 치고 말하는 건 겸손을 떠나 문제가 있는데, 난 늘 그래 왔다. 그게 맞는 건 줄 알았다. 가장 객관적인 거라 생각했다. 그 결과 놓친 게 너무나 많다.
다시 친구와의 대화로 돌아가서.
내 친구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정말 괜찮다. 30대 미혼인 여성이 서울에 자가를 소유하는 경우는 드물다. 20대에 사업에 뛰어들어 법인을 차리고 씀씀이는 적절하며 적당하게 우아하다. 얼굴도 예쁘장하게 생겨 이대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했다. 한국어와 일본어에 능통하고 사교성 또한 나쁘지 않다. 틈틈이 자기 관리를 하며 남자 친구가 생기면 내조 또한 훌륭하다. 그런 그녀가 가진 매력 중 유일하게 내가 꺼려하는 부분은 본인이 쉬운 여자라고 생각하는 점이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단어를 배웠냐고 캐묻고 싶지만, 그 친구는 그게 겸손의 척도라 여기는 모양이다. 남자가 제게 와주면 감사하죠, 라는 태도다. 우린 늘 그런 부분에서 많이 부딪힌다. 물론 옮고 틀린 건 없다. 생각의 차이다.
세상에 빛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나. 모두 저마다의 매력이 있다. 점수를 매길 수도 없다. 모두가 100점이다. 뻔한 이야기 같지만, 그걸 받아들이고 나면 나 자신도 꽤 괜찮아 보이기 시작한다. 겸손하되 당당하여라. 그래서 당신은 몇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