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곱 시 반. 일곱 명이 쪼르르 모여 복도에 일렬로 서있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천장 어디쯤, 허공이라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그 애매모호한 곳에 시선을 두고 있으면 당번인 2학년 선배가 와서 방송실 문을 열어준다. 우리 일곱 명은 또 쪼르르 방송실로 들어가 다시 일렬로 선다. 허공을 본다. 정확히 말하면 방송반 업무, 조직도 같은 것들이 적혀있는 벽보가 있었고, 그 벽보를 박은 압정에 시선을 둬야 했다. 압정이 몇 개인지 몇 번째가 금색이고 몇 번째가 은색인지 눈감아도 그릴 수 있을 정도였다. 고등학교 방송반 시절 이야기다.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이 남일 같지 않은 건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가 지금은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유 없이 기합을 받고 영문도 모른 채 맞았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그런 쓸데없는 허세가 있나 싶지만 그마저도 추억이 됐다.
각 학교 방송반끼리 모여 방송 연합제를 만들었다. 일 년에 한 번 학기말인 2월에 뮤직, 다큐, 영화, 연극을 준비한다. 기껏 해봐야 열일곱, 열여덟 살짜리 애들이 만드는 거지만 나름 진지했다. 대관을 하기 위해 매일 방과 후 공공기관을 찾아다녔고 진행비를 마련하기 위해 가게들을 돌아다니며 스폰을 받았다. 우리 영화 말미에 가게 이름을 넣어 홍보해드릴테니 스폰을 해달라는 억지스러운 요구에도 사장님들은 십만 원, 이십만 원, 많게는 오십만 원까지 턱턱 내주셨다. 대부분은 학생들이 자주 가는 분식집이나 밥집, 교복집, 문구점이었다. 패기도 인정도 풍족하다 못해 넘치던 시절이었다.
충무로에 가서 무전기를 빌려오고 조명을 담당하는 친구는 밤새 소극장에 남아 공부를 했다. 연극 대본을 짜고, 오밤중에 운동장 한복판에 서서 발성연습을 하고, 축사를 받아오겠다며 작은 캠코더 하나를 든 채 무턱대고 방송국을 찾아갔다. 무슨 수로 성공했는지 모르겠지만 연예인들은 그 어설픈 캠코더 화면 속에 많이도 등장했다. "온에어 여러분, 00회 방송제 축하드립니다. 여러분이 꼭 성공해서 방송 쪽으로 오시는 날을 기다릴 거고요..."
모든 건 교복이었으니까 용서가 됐다. 헐값에 무전기를 빌릴 수 있었던 것도, 충무로 인쇄골목을 누비다 보면 지나가던 밥집 사장님의 김밥 하나 먹고 가라는 한 마디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축사를 정성 들여 한 마디씩 내뱉던 연예인들도. 오밤중에 발성 연습한다고 운동장을 누비는 우리에게 추우면 교무실을 쓰라던 학교 수위 아저씨도. 그저 애들이 뭘 하려나보다, 근데 쫌 열심히 하네, 이쁘네. 해주셨겠지. 그때 우리를 보듬어주셨던 어른들의 마음을 잊지 않는다. 나에겐 그런 어른이 되어야할 의무가 거기에 있다.
여름부터 파트를 나누고 가을 내내 준비해 겨울에 다다르면 막바지 작업에 들어갔다. 더듬거렸던 대사는 완벽해야 했다. 몸치도 댄서에 버금가는 실력이 됐다. 연습하다 배고프면 집에 가서 밥솥에 있는 밥을 비닐봉지에 담아왔다. 떡볶이집에 가서 없는 용돈 털어 순대 몇 개 사 오고, 이따금씩 대학교 1학년 선배가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쏘겠다며 피자를 배달시켰다. 요즘처럼 패딩이 아닌 그저 얇은 교복 마이(재킷) 한 벌에 의존해 덜덜 떨며 귀가하는 길은 매일이 추웠지만 행복했다. 북두칠성을 보면 소리지르며 달렸고 포장마차에 계란빵을 보면 세상 행복한 미소로 환호했다. 그렇게 무리 지어 다니는 시간 동안 우린 정이 들었나보다. 그중 한 명은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떴다. 남은 애들은 먼저 떠난 친구를 그리며 더 돈독해졌다.
꼰대 소리를 백번 들어도 차라리 꼰대이고 싶은, 그만큼 추억하고 싶은 시절은 누구에게나 있는 걸지 모르겠다. 나에겐 방송반 시절이 그렇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들은 인생의 동반자를 자처하고 있다.
예전처럼 자주 만나지 못한다. 짓궂던 장난도 사라졌다. 같이 가던 여행도 머나먼 이야기가 됐다. 각자의 삶이 생겼고, 몇몇은 결혼을 했다. 그리고 오늘 또 한 명이 짝을 만나 식을 올렸다. 코로나로 미루네 마네 옥신각신했던 모양이지만, 용케 오늘까지 온 걸 보면 제 짝을 만났다는 방증이겠다. 정말 기분 좋은 날이었다.
결혼식은 한 시였는데 집에 오니 밤 열시다. 한두 시간 있다 온 것 같은데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딱히 기억에 남을만한 이야기를 한 것 같지도 않다. 오랜만에 먼 친척 보듯 가족들 만나듯 안부를 주고받고 장난을 치고, 서로를 걱정하고. 매일 얼굴 보며 지내던 시절엔 몰랐다. 그때는 몇 천원이 없어서 불량식품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지금은 먹고 싶은 거 다 시켜!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건네지만 그때 느꼈던 희열을 오롯이 느끼는 건 불가능해졌다. 행복은 돈 주고 살 수 없다는 말을 여기서 실감한다.
한 명 두 명 보내다 보니 어느새 다섯 놈만 남았다. 우린 이제 안다. 온에어라는 이름으로 만날 수 있는 날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걸.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일이 바빠지면 곱씹을 행복한 추억보다 중요한 게 많아지니까. 그렇게 각자의 바쁜 삶을 너도 나도 이해하고 누구보다 응원하니까. 그럼에도 빈 말로 자주 보자, 며 인사를 하고 헤어진다. 그래서 좋다.
제 짝을 만나 제 길을 찾아가는 것도 각자의 분야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도.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서로의 길을 지켜보며 살아갈 수 있다는 건 기적처럼 감사한 일이다. 여행을 가고 술자리를 가지며 추억을 쌓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많아진다. 경조사를 함께하고 이직과 전직을 축하하고. 시간이 더 지나면 육아를 같이 고민하겠지. 그보다 더 시간이 흐르면 자식 결혼 축하한다며 식장을 찾아가겠지. 달라질 여정을 새로 맞이해야할 나이가 됐다.
오늘은 기분이 아주 좋은 날이다. 이제 온에어 2막의 시작. 우리가 보낸 십대는 알찼으니까 앞으로 보낼 시간도 틀림없이 아름다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