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시작
지인이 물었다.
"우리나라말은 다르다랑 틀리다랑 가려 쓰잖아. 일본은 그걸 구분 안 하고 한 단어로 쓴다며?"
생각해보니 그렇다.
이 색깔이랑 저 색깔은 다른 색깔이잖아
この色とあの色は違うじゃん
답 틀렸어
間違ってるよ、答え
빨간색이랑 파란색은 다른 색이지 틀린 색이 아니다. 오답은 틀린 답이지 다른 답이 아니다. 우리는 구분해서 쓰는 두 단어가 어떤 이들에겐 한 단어로 표현된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에선 다르다랑 틀리다를 혼용해서 쓰지 말자는 인식이 자리 잡았고 최대한 구분해서 쓰는 걸 지향하고 있다.
[한]
1. 어긋나다
2. 어기다
3. 다르다
[일]
1. 일치하지 않는다 (상이하다)
2. 틀리다 (위반, 위법, 위배)
사전적 풀이만 본다면 일본은 좀 더 일치하는지 하지 않는지에 비중을 둔다고 해야 할까.*
지인이 흘리듯 꺼낸 이야기에 내 귀가 솔깃했던 데엔 이유가 있었다. 최근 들어 엄마한테 자주 핀잔을 주던 화두가 바로 '틀리다'와 '다르다'의 혼용이었다. 엄마는 '다르다'고 말해야 될 법한 상황에서 '틀리다'는 표현을 꺼냈다. 오랜 습관이다. 엄마가 틀린 표현을 한다 해서 내게 해가 될 건 딱히 없었다. 그저 처음엔 "엄마 그건 다른 거지, 틀린 게 아니지"라고 한 마디 뱉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막상 뱉고 나니 엄마가 잘못 쓸 때마다 신기하게도 (틀릴 때마다) 귀에 쏙쏙 박히기 시작했다. 한 번 그 단어를 의식하다 보니 무슨 이야기를 해도 다르다와 틀리다는 맞게 쓰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 거다. 어쩌다 알맞게 쓰면 혼자 좋아했고, 틀리게 쓰면 엄마를 빤히 쳐다봤나 보다. 하루는 멋쩍은 듯 웃는다. "아이고, 이게 입에 배었나 보다, 안 고쳐지네. 하하."
야채는 일본식 표현이니까 채소를 써야 한다던가. ~적, ~의, ~한 것, 과 같은 일본식 표현은 지양해야 된다던가. 일제의 잔재는 청산해야 하니 일본식 표기법은 모조리 '잘못된 것'이라 치부되는 요즘 시대에 말이다. 저런 '틀린 표현'이 웬 말인가 싶다. 맞춤법은 지켜야 하는 게 맞고 이왕이면 한글로 표현하려 하고, 가능하면 일본식 표현은 지양하려고 하는 나다. 직업상, 성격상 틀린 맞춤법에 민감한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어느 순간 느낀다. 다그치다 못해 급기야 입을 꾹 닫아버리는 딸내미 앞에서 눈치를 보며 멋쩍어하는 엄마를 보고 있노라면 저게 뭐 대수라고 엄마를 몰아세우나 싶기도 한 거다. 사실 엄마가 '다르다'와 '틀리다'를 혼동해서 쓸 때마다 듣기 거슬렸던 이유는 내가 말뜻을 못 알아들어서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괜한 오해를 살까 봐 걱정이 앞선 탓이었다. 다르다고 말하면 존재를 인정하는 거지만 틀리다고 말하면 부정해버리는 격이니까. 의도완 다른 인상을 주지 않길 바랬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틀리다'는 개념을 부정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냥 다른 답인 거지 틀린 답이 어딨냐고 세상에 묻고 싶었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엄마의 '다르다 vs 틀리다'에 저항심을 가졌던 건 그저 '틀린 것'에 대한 반항이었을 수도 있다. 그냥 그 말이 듣기 싫었던 거다. 답이 아닌 것 혹은 다른 것이지 왜 맞고 틀리고로 구분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그리고 참 의미 없는) 의문이다. 지구 상 어딘가에서 다르다와 틀리다를 같은 단어로 표현한다면 어쩌면 그건 애초에 구분할 필요가 없었던 개념인 걸지도 모른다.
취재차 인터넷 카페에 "염치 불고하고..." 로 시작하는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건 취재에 응하겠다는 사례자의 답글이 아니었다. "작가라는 작자가 맞춤법도 모르고 무슨 취재를 합니까" 라는 누군가의 댓글이었다. 염치 불구하고, 에 익숙해진 이들에겐 염치 불고하고, 가 틀린 맞춤법인 거겠다. 내가 오랫동안 바랐던 것은 너와의 결혼이었어, 라는 문장이 어색하게 읽히는 건 맞는 맞춤법이라서다. 엄마의 다름과 틀림을 매일 마주하며 (생각보다 정말 많이 틀린다) 사람이 언어를 만드는 건지, 언어가 사람을 만드는 건지, 누군가를 강요하면서까지 바꿔야 하는 게 언어라는 존재인 건지, 새삼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고쳐야 마땅한 것이겠지만.
*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일본어에서 '틀리다'는 말을 할 땐 違う 보다 間違う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違う가 차이점에 집중한다면 間違う 는 '틀린 행동'을 한다는 뜻에 가깝다. 일본 온라인 상에서도 두 단어의 차이를 묻는 질문들이 꽤 있는데, 누군가 영어로 간단히 설명해놨다. 違う means "different". 間違う means "make a mista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