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다녀오고 4일째. 회사에 출근하고 있지만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진도에서 보낸 날밤을 마지막으로 나는 완전히 무너졌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기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작가 선배들과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친구들과 카톡을 주고받고, 퇴근 후 술 한 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광화문에 산책을 나선다. 교보문고에 들어가 베스트셀러를 훑어보며 사람들은 무슨 책을 보나 곁눈질로 훔쳐본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방황하고 있는 나를 잡아주는 건 없었다.
진도에서 나는 어쩌면 평생 결혼이란 걸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 없었던 내 인생이었기에 새벽에 찾아든 그 느낌은 너무나도 공포스러운 것이었다. 조금 늦은 편이긴 하지만, 결혼이란 당연하게 이루어지리라 찰떡같이 믿고 지내왔다. 나는 오늘보다 내일 더 좋은 사람이 될 거고, 그런 나와 아주 잘 맞는 따뜻한 사람을 만날 거고. 엄마는 그에게 자네, 잘 왔다 두 팔 벌려 환영할 거고. 흐릿하긴 하지만 언제나 내 상상 속엔 토끼 같은 자식들이 한두 명은 있었으니까. 내 인생이 탄탄대로는 아닐지언정 그래도 늘 양심에 어긋나지 않는 짓을 하며 살아왔고 남들에게 떵떵거릴 만큼 잘살지 않을지언정 남부럽지 않게 먹고살 것이며 남편복 자식복이 없을지라도 내 일을 사랑할 전문직 여성이 될 것이라고,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해왔다.
진도에서 마지막 날 밤. 나는 아빠와 저녁을 먹으러 읍내로 나가고 있었다. 모든 건 평온했다. 살짝 추운 바람이 옷소매 사이로 들어왔지만, 그래도 팔짱을 끼면 포근한 아빠가 내 옆에 있었다. 푸른 밤이었다. 조용한 동네였다. 그간 신세를 진 마을 주민 한 분과 고깃집에서 만났다. 맛있는 등심 고기를 구워 먹으며 아빠와 어르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난 잎새주를 마셨다. 진도는 송가인이어라, 한다며 참이슬을 시키는 내게 굳이 권해주던 이모의 바람대로. 읍내지만 시골이니까 식당들은 문을 일찍 닫기 시작했고 우리는 이대론 아쉽다며 2차로 맥주집을 향했다.
그곳에서부터 아빠는 정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아빠와 같은 당을 찍어온 딸자식이다. 적어도 우리 집 내에선 정치적 강요가 없고 그럼에도 우리는 늘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 점에선 감사했다. 다른 집들은 그렇게 티비보면서 싸운다는데, 우린 늘 서로의 의견에 수긍했다. 세대차이, 정치적 견해 차이. 그건 남들 이야기일 뿐이었다. 하지만 아빠는 이상하게 남들한테 정치를 강요했다. 당신 말론 절대 강요가 아니라고 하는데, 내겐 강요처럼 들렸다. 상대방은 점점 지쳐가는 것처럼 보였다. 점잖은 말투는 처음과 별반 달라진 바 없었지만 눈빛이 역력했다. 옆에 앉아 아빠 허벅지를 꼬집기 시작했다. 아빠는 통증이 동반된 나의 만류를 눈치챘지만 말끝마다 "아 이런 이야기하면 우리 딸아이가 싫어하는데..." 라며 끊임없이 정치적 화두를 이어갔다.
문제는 돌아오면서부터였다. 논을 건너고 밭을 건너고. 아빠만이 아는 그 길을 졸졸 따라오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허허벌판 한가운데 우뚝 솟은 고층아파트를 본 아빠가 느닷없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인구수 적은 이 시골에 저런 큰 아파트가 왜 필요하냐, 가진 자들의 욕심에 지나지 않는다, 라는 부분이 분노의 쟁점이었다. 가진 자는 가지게 내버려두면 된다, 그걸 어찌 강요하겠나, 한 사람이 다주택을 가진 것에 왜 화가 나느냐, 라는 반론을 나는 이어갔다. 자가 소유자와 무주택자의 싸움이었다. 우리나라의 모든 자가 소유자와 다주택 소유자가 아빠와 같은 입장이었다면 부동산 투기 따위 뉴스에서 볼 일 없었겠지. 우리나라의 모든 무주택자가 나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반대로 발전이 없었을 거다. 그렇게,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이야기로 아빠랑 나는 논두렁에 서서 한참을 싸웠다. 이게 무슨 삼류 영화에나 나올법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목청 높여 화내는 아빠가 싫었기에 나도 고집을 부리고 서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빠는 돌아섰다. 오던 길을 되돌아 당신 혼자만 아는 길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홀로 남은 나는 도대체 이 연고도 없는 외딴 시골 땅에 딸을 버리고 가는 저 사람이 진정 내 아버지가 맞는가.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로등도 없는 시골 논밭길이라 시야에서 아빠는 금새 사라졌다. 휴대폰으로 지도를 켜고 길이 나오지 않는 화면을 더듬어 걸어갔다. 상상 속에선 나침반을 든 콜럼버스, 현실은 진흙탕 사이사이를 누비는 진도 시골처녀.
집 마당에 들어서니 아빠는 오래 전 도착한 눈치였다. 그로부터 또다시 옥신각신의 시간이 이어졌다. 당신의 잠자리 (폭신폭신한 이불이 그 집에 딱 한 개 있었던 탓)를 내게 양보하겠다며 차 안에 가서 자려는 술 취한 아빠. 소파에서 잘 테니 제발 들어오라 차에서 아빠를 끌어내는 덜 취한 나. 그 두 시간이 나에겐 생지옥이었다. 그때 알았다. 술은 사람을 망가뜨리는구나. 그 망가진 사람조차 보듬어야 하는 책임이 있구나. 가족이라면 말이다.
아빠한테 보기 싫었던 못난 모습을 어쩌면 나도 닮아가고 있다. 아빠한테 가장 소중할 나에게 저런 행동을 보이는 아빤, 그동안 사람들에게 어떻게 행동해왔던 것일까. 엄마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빠가 딸을 사랑하는 방법은 딸이 남자를 만나 사랑받는 방법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고 나는 믿어왔다. 찰떡같이 맹신하는 그 이론은 그날 밤 내가 마주한 현실과 부딪혔다. 난 어쩌면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없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세상에 아빠만큼 내게 냉정한 남자는 없었다. 극단적인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모질 때가 있었다. 사랑할 땐 모든 걸 다 내줄 것처럼 포근하다가도 그게 아닐 땐 전혀 다른 사람인 것처럼 칼같이 돌아서는 아빠의 모습을 나는 그간 여러 차례 봐왔지만 이날만큼 절실하게 느꼈던 적은 없었다. 이 모든 걸 방관했던 엄마가 야속했고 두 분에 대한 원망은 결국 나에 대한 자책으로 돌아왔다.
무기력해졌다. 가족과의 관계는 사람을 한 순간에 들었다 놨다 한다. 출근길에 엄마가 우리 딸 예쁘네, 하면 그날 하루 일진이 잘 풀릴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아빠와의 관계도 나에겐 매우 중요하다. 20대 때 유학생의 신분으로 아주 가끔씩만 집에 들어왔으니 엄마 아빠의 시시콜콜한 점들이 그때 내 눈엔 보이지 않았다. 그저 행복하고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좋기만 해 보였으니까. 한 지붕 아래 살면서 진짜 가족이 된 지금, 엄마 아빠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며 우리가 제대로 부대끼며 살고 있다는 걸 실감한다. 그러니 결국은 알아야 할 것을 알게 된 것뿐이고, 난 나에게 주어진 숙제를 풀어나가야겠다. 지난 4일 동안 방황했던 마음은 이제 내려놓는다. 식습관, 수면의 질 (악몽), 마음 상태, 몸상태 모든 게 엉망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병 무기력. 안녕. 이제 떨쳐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