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0보를 걸었다. 종일 집에만 있었더니 좀이 쑤셔 어디든 돌아다녀야겠다고 마음먹은 날이었다. 청와대 앞 1인 시위하던 분이 들고 있던 피켓엔 대흥 2구역, 재개발 반대!라고 쓰여있었다. 언제 한 번 가봐야겠다, 했는데 오늘이 됐다. 낙산성곽에서 이화까지 걸어갔다는 한 블로거의 글을 보고 동대문역에 내렸다. 지하철 출구를 올라와 지도를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저 이화는 이화여대의 이화가 아니구나. 대흥 2구역은 오늘 물 건너갔구나. 종로가 좋다며 노래를 부르며 살아왔지만 번쩍번쩍한 광화문과 시청 일대만 꿰뚫고 있을 뿐 정작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구시가지엔 무심했다.
이화 벽화마을은 서대문구 쪽 이대와는 전혀 상관없는 서울 종로구에 있었다. 조선시대 때는 양반들이 풍류를 즐기던 곳,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인들이 모여 살던 주택단지였다. 아직도 오래된 일본식 주택, 적산가옥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코로나도 있고 모처럼 혼자 정처 없이 걷고 싶은 마음에 떠난 여정이었지만, 발길 닿는 곳마다 사람이 바글거린다. 이화마을은 이미 관광명소로 소문난 곳이었다. 노후해서 오랫동안 방치된 마을. 문화체육관광부가 2006년 도시예술 캠페인을 시작했고, 굽이굽이 이어진 골목길 담벼락엔 알록달록한 벽화들이 그려졌다.
드라마와 영화에 등장하면서 마을엔 음식점과 작은 공방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사람도 늘어났다. 사람이 몰린 곳엔 소음과 쓰레기가 동반됐다. 탐방객들은 어디로 어떻게 이어질지 모르는 벽화를 찾아 담벼락을 기웃거렸다. 자연스레 주민들은 평일 주말 밤낮없이 피로에 시달렸다. 결국 분노한 주민 한 명이 벽화를 훼손했다. 더 이상의 관광객을 원하지 않는다는 과격한 의사표시였다:
4년 전 뉴스에 나온 일이지만 여전히 골목길을 누비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잠옷바람으로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주민과 눈 마주치기 십상이다. 담벼락도 창문도 나지막한 높이다.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남의 집구석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구조다. 그곳에 발을 딛고 서있다는 것 자체에 죄책감이 들었다. 까치발 들고 걸어 다니다 왔다. 그조차도 민폐일 수 있었겠지만.
유독 공가가 많은 동네였다. 가스계량기 마지막 점검 날짜는 2018년 9월이었다. 연락이 닿지 않아 사회복지사가 다녀가며 붙여놓은 메모. 그 메모조차 빛이 바래 희미해진 글씨. 먼지 쌓인 우편물 옆엔 누군가 버리고 간 일회용 컵과 담배꽁초들이 가득했다. 재개발 사업이 도마 위에 오른 적도 몇 전 있었다. 고령의 어르신이 워낙 많은 동네이기도 하다. 소방차는커녕 사람이 제대로 지나다닐 수 없을 정도로 좁고 경사진 길이 많다.
관광객이 쉴 새 없이 몰려드는 마을. 그 이면에 사람이 살지 않아 비는 집이 하나둘 늘어나는 마을. 괴리감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서울 도심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고지대의 그 작은 마을은 참 예뻤다. 못 쓰는 페트병을 모아 화분을 만들고, 쓰다 버린 샤워기를 주워다 화분에 꽂아놨다. 모든 게 재활용되어 새롭게 탄생됐고, 그 앙증맞은 알뜰함은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이 동네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곳을 지켜내려 하는 사람들이 무탈하고 소소하게 지낼 수 있었으면. 꼭 그럴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일조하겠노라, 몇 번이고 다짐했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