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이었던 그의 한마디

by 알로

아빠는 다큐를 만들어온 사람이다. 오늘은 지난 1년간 찍어온 아빠의 첫 다큐영화에 음악을 믹싱 하는 날이었다. 아빠가 그간 만들어온 다큐에선 스테레오를 고집했는데 오늘은 5.1 채널 믹싱 작업실에 다녀왔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 몰라 되물으니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였다.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저 앞쪽에서 걸어오는 여자들 말소리는 앞쪽 스피커에서 들려오고, 뒤에서 나타나는 남자의 발걸음은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 느낌. 그것이 5.1 채널.


스테레오 채널은 예전 텔레비전 화면 양 옆에 달려있는 스피커처럼 두 채널로 만들어진다. 영화는 좀 더 풍부한 사운드를 제공하기 위해 5.1 채널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빠가 출품하는 영화제는 스테레오 반, 5.1 채널 반의 비율이라 고민했단다.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자니 구식인 것 같기도 하고 5.1 채널로 가자니 다큐에 연출이 가미되는 것 같은 부담이 됐을 거다. 가령 현장에서 누가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버렸는데 그 소리가 유독 크고 선명하게 들린다면 그건 소리를 입힌 거다.


아빠는 '소리를 입힌다'는 것에 괴리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다큐멘터리라는 장르가 주는 압박감일 수도 있다. 내가 만드는 보도물에 제아무리 작품성을 부여한다 해도 현장에서 수음하지 못한 소리를 입히는 행위는 못한다. 말 그대로 보도물이니까. 하지만 아빠처럼 다큐영화라면 시도해볼 만하다. 작품성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니까.


결과적으로 아빠가 5.1 채널을 선택하게 된 건 후배의 한 마디였다고 한다.


"저는 햇살에도 소리가 있다고 믿거든요. 피디라면 말이에요. 햇살을 소리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리도 아름다운 설득을 참 오랜만에 듣는다. 강요하지 않고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니. 젊은 친구의 우아한 표현과 톡톡 튀는 감각에 홀렸다며 아빠는 생애 첫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것은 나에게도 큰 귀감이 됐다. 기자가 전달하는 뉴스에 작가라는 양념을 친다면 기자가 오롯이 만드는 것과는 다른 결과물이 나와야 맞다. 내가 하는 일. 나는 그곳에서 무엇을 표현하려고 발버둥치는가.

keyword
작가의 이전글20000보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