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지금이야

by 알로

먼 훗날 지금 내 나이를 떠올렸을 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리는 삶을 살고 있다.


"그 해는 시간이 정말 빨리 갔었어. 새해맞이하고 얼마 안 지난 것 같은데, 어느 날 달력을 보니까 5월 중순인 거야. 코로나 19라는 키워드로 시작됐던 해였어. 2020년의 키워드는 도쿄올림픽일 줄 알았거든. 일본 출장도 많을 것 같았고 일본에 조선학교 관련해서도 개인적으로 취재하고 싶은 게 많았어. 올해는 열심히, 바쁘게 살아야겠다! 하고 카운트다운을 했었는데. 사람일은 이렇게 모르는 거구나. 근데 이대로 시간을 흘려보낼 순 없겠다 생각했어.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어. 예전엔 돗자리 깔고 캔맥주 먹어야 꽃놀이 다녀왔다, 했는데 가만 보니까 우리 집 앞에 벚꽃나무가 있는 거야. 밤마다 뛰었어. 한참 뛰다가 호흡이 가빠져서 길게 숨을 들이마시면 벚꽃향이 후욱 들어와. 벚꽃향을 온전히 느끼는 게 진짜 꽃놀이 아니겠어? 코끝이 간질간질한 그 향긋함에 취해서 하늘을 올려다보니까 보름달이더라. 다 내 주변에 있고 다 내 안에 있었구나. 싶더라.


그러고 나니까 일상이 조금씩 바뀌는 거야. 아침에 눈을 뜨면 아, 오늘도 잘 잤다. 책을 볼까? 산책을 할까? 행복하게 잠에서 깨어나는 거야. 그런 상쾌한 경험은 처음이었어.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잠드는 시간이 빨라졌어. 기름진 음식을 먹는 일이 줄어들었어. 기름기가 뱃속에 남아있으면 잠이 안 왔거든. 조금씩 내 일상도 몸도 원래대로 돌아가고 있던 거야. 코로나 덕분에.


온전히 순간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까 이 시간을 어떻게 쪼개쓸 수 있을까, 행복한 고민이 시작됐어. 불필요한 만남이 줄어들었어. 책 읽는 게 좋아졌거든. 생각해보니까 내가 죽는 날까지 10000권을 읽을까? 음악 10000곡을 들을까? 사람 10000명을, 글 10000편을? 다 할 수 있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까 그냥 보내는 시간들이 아까워진 거지.


물론 많은 양이 중요한 건 아니야. 근데 시간을 허투루 쓰는 것에 회의감을 느끼는 건 그러면서도 변화가 없다면 안타까운 삶인 거지. 자투리 시간을 다 끌어모아서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어나갔어. 정말 만나야되는 사람을 만나다보니까 사람을 만날 땐 휴대폰을 내려놓게 되더라. 휴대폰을 내려놓으니까 앞에 앉은 사람이 더 예뻐 보이고 멋져 보이더라. 당연히 함께하는 식사는 더 맛있어지고.


비가 오면 빗소리 들으려고 창문을 열고 잠들었어. 그러다 감기에 걸리기도 했지만. 햇살이 내리쬐면 마스크 끼고 나가서 지칠 때까지 걸었어. 건강한 게 이렇게 기분 좋은 거구나. 내 주변 사람들이 건강한 건 이렇게 감사한 거구나. 그러니 만나는 사람마다 예쁘고 사랑스러워 보이는 거야. 잘 버티고 있으니까. 같이 시대를 살아나가고 있으니까. 그게 얼마나 든든한 느낌인지 너도 알까?


벅찬 감정들을 경험했던 해였어. 새해 목표가 1억 벌기였거든. 정확히 5월 4일에 그 목표를 버렸어. 돈이 목표가 될 수 없다는 걸, 될 이유가 없다는 걸 깨달은 거야. 버리니까 그 자리에 행복이 찾아오더라. 조바심 낼 이유가 사라졌잖아. 순간을 살아가는 게 훨씬 가치 있는 일이었어. 엄마에겐 그런 해였어."


라고 딸에게 꼭 말해줘야지.

keyword
작가의 이전글결정적이었던 그의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