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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Jun 20. 2020

4000원 인생

기자들 체험기를 읽고


[일자리를 구하겠다면서도 안산역 지하보도에 놓인 구인 전단지를 줍지 못했습니다. 누가 볼까 봐요. 인력회사 문을 열기 전 얼마나 주저했는지 모릅니다. 누가 볼까 봐 서지요.]

에필로그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책은 첫 장부터 끝장까지 노동현장을 바라보는 기자의 시각에서 적어냈다. 직접 뛰어들었지만, 어디까지나 관찰자다. 빈곤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관찰자의 시각으로 대변된다.

고시원의 월세를 계산하며 '값이 더 싼 방을 선택했다. 노동자라면 이쪽을 택했을 것이다'라고 적어낸다. 노동자라는 가정을 해보는 것과 정말 선택할 여지가 없는 건 천지차이다. 살짝 부딪히면 아! 소리가 나오지만, 세게 맞으면 비명소리도 안 나온다. 이 책엔 수많은 빈곤 노동자가 등장한다. 하나같이 조용하다. 분노하고 절규하지 않는다. 노동권을 주장할 시간에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입을 다문다.

1993년, 전국 방방곡곡 찾아다니며 '체험, 삶의 현장!'을 외쳤던 프로그램이 있었다. 2012년 종방 했지만, 여전히 '체험'이라는 키워드는 반응을 이끌어낸다. 요즘은 보도국 기자들도 발로 뛰며 직접 '체험'해보는 형식을 선택한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화면 속 저 사람이 대신해주고, 현장을 낱낱이 보여주면서 나 대신 땀을 흠뻑 쏟아낸다. 거친 숨을 토해낸다. 헉헉거리며 말을 이어가지 못한다. 그때 시청자들은 격하게 공감하고 격하게 분노한다. '체험'이 주는 힘이다.   

'체험, 삶의 현장'에선 고생하고 돌아온 연예인이 돈봉투를 흔들며 유니콘에 오른다. 하트 모양의 작은 함에 기부금을 넣고 손을 흔든다. 혹독한 체험을 끝낸 기자는 다시 카메라 앞에 선다. 흘려낸 땀은 온데간데없고, 말쑥한 정장 차림이다. 이 책은 조금 달랐다. 노동자라면 이쪽을 택했겠지, 온 힘을 다해 기꺼이 그들의 상황에 놓이길 자처한다. 누가 볼까 봐 전단지를 줍지 못하면서도 줍지 못하는 자신과 끊임없이 싸운다. 어떻게든 현장에 녹아들려고 노력했던 기자들의 진심은 책장을 덮은 나에게도 전달됐다.

[...... 마트에선 하루에도 수천 명의 손님이 내 앞을 지나갈 것이다. "어머, 기자님이 여기서 뭐하세요?" 그런 사람이 하나라도 생기면 어쩌나, 출근 전부터 근심이 적지 않았다. 완전한 착각과 기우였다. 마트에 오는 손님들은 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얼굴을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다. 그것은 작은 충격이었다......]

회사 로비를 나갈 때마다 마주치는 보안직원분이 있다. 그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고개 숙여 인사한다. 나는 그 인사가 때론 불편했다. 왜 인사를 해야 할까. 출퇴근하는 입주민에게 인사를 강요당하는 아파트 경비원을 취재하는 언론사 건물이다. 그들이 어떤 지침에 의해 목례를 하는 건지, 자발적인 행위인지는 모른다. 가만히 서 계시면 서로 불편하니까 한 마디라도 섞어주세요, 라는 말을 누군가 전달했을 수도 있다. 이따금씩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을 건네 온다. 교대시간을 빼면 하루 종일 서있을 그들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듣는 게 불편하다. 그래서 시선을 회피한다. 목례를 하는 나의 시선은 늘 다른 곳을 향해있다.


밥 먹고 나오는 식당 앞 작은 컨테이너 박스가 있었다. 우리가 주차장으로 향할 때 그는 앉아있다 벌떡 일어서서 허리 숙여 인사했다. 그의 얼굴을 볼 세가 없었다. 왜 인사를 받아야 하는지도 몰랐다. 언제부터 인사가 불편함이 됐을까.


퇴근길 들르던 홈플러스 고기 코너에서 마주치는 직원이 있다. 가끔 집에서 구워 먹을 요량으로 세일 상품이 있나 구경하는 정도인데, 온 정성을 다해 나를 맞아준다. "뭐 해 드실라고요?" 대개 구이용이거나 국거리용이다. 적당한 고기를 추천해준다. 가끔 내가 보고 있는 것보다 훨씬 양이 많고 비싼 걸 권해오면 나는 시선도 주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 싹수가 없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투명인간처럼 대하며 살아왔나. 지금 적으면서도 수많은 나날들 속에 수없이 봐왔을 그들의 얼굴이 단 한 명도 제대로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유치원 다닐 때 할아버지가 주차관리원이었는데 말이다. 차가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할아버지가 들락날락거렸던 작은 컨테이너 박스에 앉아있었는데 말이다. 이제야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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