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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Jun 22. 2020

반나절의 반전

마장호수 가서 커피나 먹고 들어올 요량으로 나갔다. 호수에 도착해 주차할 곳을 찾는데 도로 위 표지판에 써있던 말.


어서 오세요 -양주시-


지도를 켜보니 차로 10분 가면 송추계곡이란다. 그 유명한 송추계곡. 여름마다 평상 깔고 계곡에 발담그러 가는 그 송추계곡. 백숙 한 마리에 8만 원 돈이라며 매년 기사에 등장하는 그 송추계곡.


결국 여기까지 왔는데 저녁이나 먹자, 고 찾으려 내리니 눈 앞에 닭볶음탕 집이 있었다. 탕이나 먹고 가자, 고 식당에 들어서니 개별 룸으로 안내해준다. 창문 열고 문도 활짝 열어놓으니 낙원이 따로 없다.


맛있는 닭볶음탕에 밥까지 비벼먹고 소화시킬 겸 마장호수에 나갔다. 아무도 없는 호숫가. 보행로 데크엔 작은 조명들이 켜져 있다. 조금 더 걸어가 볼까? 속도를 내니 눈 앞에 정자가 있다. 정자에서 바라본 호수는 고요했다. 산비둘기 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고, 풀벌레 소리가 장단을 맞춘다. 좀처럼 밝은 우리 동네에선 보이지 않던 별들.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어진 능선. 산줄기 따라 무성한 나무들 그리고 호수. 아주 시커먼 것과 조금 덜 시커먼 것, 조금 짙은 검은 것과 옅은 검은 것은 한 폭의 그림이 되어 우리에게 와주었다.


인생이란 게 이런 건가. 고작 마장호수와 닭볶음탕에 인생을 논할까, 싶지만 논하게 된다. 좋은 사람과 맛있는 걸 먹는 것.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하는 것. 때마침 눈앞에 나타난 자연을 조용히 바라보는 것. 해프닝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처음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내년에 결혼하면 1년은 신혼 이어야 되잖아. 그럼 첫 애를 가지는 게 00살이 되잖아. 그럼 그 애가 스무 살이 됐을 때 나는 00살이잖아.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나는 결혼을 해야 되는 건가, 싶어."


라는 친구에게 말했다. 파주에서 커피 한 잔 먹으려고 만난 우리가 양주에서 닭볶음탕을 먹고 있잖니. 오늘 하루도 예측 못하는데 무슨 20년 뒤를 걱정하니.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다 살아진다. 다 살아지더라. 짧은 인생이었지만 늘 그래왔다. 그러니 앞으로도 미래에 대한 걱정은 버려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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