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승민 Jun 23. 2020

완벽을 깬 행복

저녁 무렵, 책 읽으러 서촌 한 카페에 들어갔다. 나긋나긋한 목소리 사장님. 잔잔한 음악. 참 예쁘고 아담한 커피숍이었다. 샹그리아를 마실까 커피를 마실까 고민하다 커피를 시켰다. 조명이 반짝거리는 창가에 자리 잡았다. 잠시 후 누군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2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성이다. 얼굴이 하얗고 갸름한 그녀 손엔 카메라가 들려있었다. 들릴랑 말랑한 목소리로 커피를 주문하더니 저쪽 구석에 앉는다. 조용했다. 모든 게 완벽했다.


삼십 분쯤 지났을 때 한 무리가 들어왔다. 정장 차림의 남녀와 사복 차림의 남성. 검은색 원피스 차림인 여성이 소파에 털썩 앉는다.


아, 정신병자예요. 꼰대는 언제 화낼지 짐작이 가는데 이 사람은 짐작도 안 가. 화를 한 시간 동안 내요. 진짜 미친놈.



직장 상사인가 이야긴가보다.


맞받아치는 남성의 목소리도 꽤 크다. 이 조용한 카페에서 저렇게 큰 소리 안 해도 다 들릴 텐데, 싶다가 나도 누군가와 함께였다면 저 정도 톤으로 얘기했겠다, 싶기도 했다.


다시 책으로 눈길을 돌렸다.


한 챕터를 다 읽었을 때쯤 바깥에 나가 있던 사복 차림의 남성이 합류했다. 남성은 중저음의 목소리였지만, 말이 많다. 셋은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토론에 가까웠다.

행복하세요?


사복 차림이 물었다.

정장남이 대답했다.


네, 그런 편인 것 같아요.


사복 차림이 말을 이어간다.

묻기 위한 질문이 아닌 말하기 위한 질문 같았다.


오 바로 나오네요 대답이. 저는 행복하려고 노력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지금 행복하지 않다는 것에 대해 불행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노력하질 않았기 때문에.

맞은편 여성이 받아친다.

저도 그래요. 저는 사실 좋아하는 게 별로 없어요.

좋아하는 거랑 행복한 거랑 같아요?

(여기서 목청이 한층 더 높아졌다)


나의 집중력은 한계에 도달했다. 에어 팟을 끼고 음악소리를 키워버릴까 고민했으나 책 읽을 때 음악 듣는 습관이 없다. 책을 덮었다. 커피를 쪽쪽 빨아 마시며 한쪽 귀를 열었다.


정장 차림, 행복남이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좋아하는 거랑 행복한 건 다르죠. 저는 케이크를 먹는 걸 좋아하지만, 케이크를 먹는다고 행복하진 않아요.


반기를 드는 사복남.


그래요? 여자 친구 좋아하잖아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있으면 행복하잖아요. 같은 거 아닌가?


갑자기 끼어드는 여성.


 생각났어요. 애가 저를 좋아해요 엄청. 애랑 상호작용하는  기뻐요. 그때 행복을 느껴요. 애가 저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같아요. 제가 아이한테는 대체 불가한 존재예요.

애한테 선택권이 없는  아니에요? 다른 양육자를 만나본 적이 없잖아요.

아니에요. 아빠를 좋아하진 않아요. 그거는 잘한  같아요. 애한테 시간을 투자한 .

 읽어주는 거요?

. 아니  저는 정성을  했어요. 모든 면에서.



여기까지 들었다. 더 이상 엿듣고 싶은 대화가 아니었다. 셋은 끊임없이 말을 이어갔지만.


이 꽃 프리지어 같지 않아요?
네?
프리지어 모르죠. 상식인데.
아, 저는 상식이 없어요.

(휴대폰 어플로 확인해보더니)

아니구나. 프리지어 아니구나. 아예 다르구나.



오늘 읽었던 책은 김완 작가님의 [죽은 자의 집 청소]였다. 아직 77페이지까지밖에 못 읽었지만, 제목 그대로 죽은 자의 집을 청소하는 이야기다. 누군가는 자살을 하고, 누군가는 고독사를 한다. 부동산과 집주인은 이 일이 새어나갈까 봐 노심초사한다. 흔적 없이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가 죽은 자가 빈 집에 남겨놓은 흔적을 지운다. 쓰레기부터 살림살이, 혈흔, 냄새까지. 싸그리.


죽음을 맞이할 때 곁에 있어줄, 혹은 떠난 자리를 돌봐줄 누군가 있는 것과 없는 건 다르다. 책에 나오는 망자들은 대부분 홀로 죽음을 맞이했다.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생전 서로 몰랐을 그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외로움, 빈곤, 고립.


그는 세상을 떠난 이들에 대해 이렇게 적는다.


그(망자)를 조금이라도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 저장 강박*이라는 블랙홀 같은 분류 속으로 무작정 밀어붙이지 않고 '비정상인 인간'이라는 태그를 붙여서 불가해의 영역으로 섣불리 몰아세우고 싶지 않다.


* 저장 강박은 강박장애의 일종으로, 저장 강박장애·저장 강박 증후군 또는 강박적 저장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어떤 물건이든지 사용 여부에 관계없이 계속 저장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쾌하고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는 습관이나 절약 또는 취미로 수집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심한 경우 치료가 필요한 행동장애로 본다. (네이버 백과사전)


그리고 옆자리의 대화를 엿듣기 직전 마지막으로 봤던 구절.


어차피 지갑이 홀쭉하나 배불러 터지나 지금 웃고 있다면 그 순간만은 행복하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커피숍에 앉아 행복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했을 옆자리의 세 명이 행복하길 빈다. 좋아하는 사람이랑 만나고 맛있는 케이크를 먹고 아이와 보내는 모든 시간이 행복으로 다가가길.

작가의 이전글 반나절의 반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