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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란과 현미 Jun 29. 2020

부족했던 2%

전라도 광주에 다녀왔다. 그러고 보니 광주에 간 기억이 없었다. 지인 부친상으로 빈소에 다녀온 반나절이 전부였다. 518 민주항쟁? 잘 몰랐다. 내가 태어나기 전, 광주에서 민주항쟁이 있었지. 무고한 시민들이 많이 죽었지. 이따금씩 포털사이트를 뒤졌고 가끔 뉴스로 접한 게 전부였다. 다큐멘터리나 영화조차 제대로 본 적 없었다.


결코 무관할 수 없지만 잘 모르고도 잘 살아왔다. 무심함에 부끄러움은 있지만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런 삶을 살아온 내가 난생처음 광주행 티켓을 끊은 건 순전히 아빠 덕분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책 한 권을 꼭 빌려주고 싶다던 아빠. 지금 빌려달라 하니 머뭇거리던 아빠. 며칠 뒤 방문을 열고 들어와 가슴에 품고 있던 책을 조용히 건네주던 아빠. 이걸 받아서 주려고 했지, 수줍게 웃던 아빠 얼굴. 책장을 열어보니 큼지막하게 적혀있던 작가의 사인. 정도상 작가 <꽃잎처럼>이었다. 나도 아빠처럼 저런 꽃잎을 건네는 사람이 되겠노라. 다소 오글거리는 다짐을 하며 별생각 없이 읽어 내려갔다가 반절도 못 읽고 오열했던 책. 아빠에게 돌려주며 참 좋았다고 하니 연이어 빌려준 한강 작가 <소년이 온다>. 둘 다 장르는 소설이지만, 충분히 있었을 법한 (그리고 있었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소년이 온다>의 클라이맥스는 에필로그에 있다. 읽는 내내 겪어보지 않은 일을 이렇게 표현해낼 수 있다는 것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필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신기가 들렸다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이었다. '이 책의 묘미는 에필로그야. 꼭 잘 읽어봐' 아빠의 신신당부가 생각났다. 그 마음에 난 광주행 기차표로 화답했다. 실로 엄청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현장이 보고 싶었다. 별다른 기대를 했던 것도 아니었다. 가면 뭐라도 있을 것 같았다.


전남도청과 상무관, 전일빌딩은 시민들에게 개방돼있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온갖 최신장비가 동원됐다. 헬기 사격을 체감할 수 있게 VR 체험칸이 있다던가, 궁금한 키워드를 누르면 애니메이션과 함께 자세한 부연설명이 나온다던가. 모든 게 스마트했다. 마지막까지 시민군이 남아있던 도청을 중심으로 금남로 일대를 모형으로 만들어 흘러나오는 영상과 함께 연출한다던가 (4D 영화급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어딘가 모르게 아쉬움이 남았다.


모든 건 보존이 아닌 기록의 형태였다. 이미 훼손될 대로 훼손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충분한 자료가 없는 탓이다. 제대로 조사를 할 수가 없다. 도청 외벽엔 '518 민주항쟁 관련 영상, 자료, 사진을 제보받습니다' 라고 적힌 현수막이 대문짝만하게 걸려있다. 아직 완벽하게 알아내지 못했다는 뜻이다. 모든 방법을 동원할 정도로 간절하다는 의미다.

숨진 이들은 도청 본관과 회의실 통로 사이로 옮겨졌습니다. 신원이 확인되면 건너편인 상무관에 안치됐습니다. 상무관엔 60구 넘는 시신들이 있었던 걸로 집계됩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해설가들의 설명으로도 전시관 안에 빼곡하게 그려진 그래프로도 와닿는 건 없었다. 숫자가 아니라 느낌이 필요했다. 그저 열심히 상상하고, 공감해볼 뿐이었다. 머릿속으로 떠올려보며 여기가 그곳이었구나. 그건 이쯤이겠구나. 이 언저리에서 그랬겠구나.


너무 늦게 온 탓일까. 리모델링하기 전에 왔어야 했나. 몰입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하루가 흘러갔다. 같이 내려왔던 동생이 먼저 서울로 올라갔다. 기차가 출발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네 시간 남짓.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 찻집에 갔다. 사람들에겐 팥빙수가 맛있는 집이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시원한 마룻바닥에 들어가니 살 것 같다. 짐을 내려두고 주인장에게 물었다.


"사장님은 무슨 차를 가장 좋아하세요?"

"나는 황차 좋아허는디 황차는 2인분이고... 가만있어보자. 나는 대추를 공들여 내리거든요? 참 맛있어. 근디 대추차는 겨울에 먹어야헝게 오미자차 먹어봐요. 시원해요."

"그럼, 가래떡이랑 같이 주세요."

"오미자, 가래떡. 드릴게요. 어디서 왔어요?"

"서울이요."


 마룻바닥에 덩그러니 앉아있는 내가 안쓰러웠던 모양인지 주인장은 LP판을 틀어준다. 소리가 웅장하다. 마루 한켠, 주방 같아 보이는 공간으로 들어간 주인장은 다시 열심히 떡을 굽는다. 차를 내린다. 한참을 달그락달그락. 다시 나타난 주인장이 가래떡을 쓱 내민다.



"서울에서 왔으니까 서비스"


그러고는 우엉차를 담은 찻주전자와 유리잔 두 개를 가지고 내 앞에 앉는다. 시골 이모집에 놀러 온 조카 대하듯. 마스크를 조심스레 벗더니 우엉차를 따라준다.


"미운 사람한테는 녹차나 줘불지요. 오래 보고 싶은 사람한테는 오랫동안 우려야허는 차를 내주는 거라든디 우엉차 맛 좀 보실래요?"


깔깔거리고 웃다가 주인장이 내미는 우엉차를 보니 눈이 시큰거렸다. 뭐지, 이 다정함. 우엉차가 또 기가 막히게 구수하다. 말씀은 또 어찌나 웃기게 하는지. 남편이 평소 어떤 화법인지, 큰 아늘놈은 어쩌다 연극배우가 됐는지, 작은 아들놈은 고3 수험생인데 공부보다 게임을 좋아한다는 것까지 알아버렸다. 시골서 엄니가 팥을 보내주는데 그 팥이 맛있어서 팥빙수 메뉴를 만들어버렸다는 것도. 의도한 게 아닌데 이상하게 팥빙수를 찾는 손님이 많다는 것도. 주인장 내외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좋아한다는 것도.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했다. 도무지 오늘 처음 만난 사람 같지가 않다. 예정했던 것보다 머문 시간이 길어져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일어섰다. "에엥, 벌써 가시게요? 오늘 참 재밌었는데. 이야기 들어줘서 고마워요. 또 만났으면 좋겠다."


전대에 가야 했다. 전남대 사범대 외벽 벽화를 보고 싶었다. 1990년대 그려진 민주항쟁 벽화였다. 거리는 가까워 차 타면 10분인 것을 버스를 타면 한 시간이 걸린다. 택시를 잡았다. 기사님, 보기 드물게 구수한 억양이다.


"어제 광주서 확진자가 네 명이나 나와버렸당께요. 사람이 없어져불고 한산하잖아요. 나도 방금 손님 태우기 전에 이 차 싹 다 소독하고 왔거든요. 중국에는 홍수가 난담서요? 인도에는 메뚜기가 난리던디. 사람들이 참 생각이 깊지를 모데요. 마스크 안 끼고 택시를 많이들 타더라니까요? 너무한 거 아녀요. 택시기사도 사람인디."


내친김에 올해 생겼다는 윤상원의 숲길까지 돌아보고 다시 금남로로 돌아왔다. 전일빌딩 8층에 올랐다. 그곳 카페 창가 자리에 앉으면 전남도청과 분수대가, 상무관과 시계탑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옆자리에 나이 좀 있어 뵈는 남성 두 분이 차가운 커피를 놓고 도란도란 말씀 중이다. 가만히 들어보니 민주항쟁 이야기다. 더 귀를 기울였다. 주로 이야기하는 남성이 21일 도청 앞에 왔던 시민군이다. 나머지 한 분은 그려, 마저, 그려, 를 반복하며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제야 실감했다. 광주에 왔구나. 내가 광주에 있구나. 반짝거리는 인테리어로 리모델링된 도청 내부에서도. 독일에서 제작해 공수해왔다는 조형물을  때도. 탄흔 245개가 발견됐다 해서 붙여진 이름 전일빌딩 245 간판을  때도. 제아무리 열심히 기록물들을 읽어내려가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었다. 이거였다. 시민군들에 주먹밥 나눠주던 시민들. 금남로 일대를 장악했던 민심. 사람들은 고스란히 역사의 혼을 가진 채 살아가고 있었다. 나의 광주 여행은 동생을 먼저 떠나보낸   시간으로 비로소 완성된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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