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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Jul 06. 2020

우아하게 욕 한 바가지



며칠 전, 회사 동료에게 선언했다. 대단할 것도 없지만, 이제 욕을 안 쓰려고 한다. 평소 주고받는 카톡방 내 말버릇 가운데 험한 표현을 골라봤다. '미쳤다, 미친놈, 미친 새끼' 그리고 '조지다'라는 표현을 생각보다 자주 써왔다.


'미쳤다'는 말이 사실 욕은 아니다. 보통 카톡을 주고받다가 "미쳤엌ㅋㅋㅋㅋ" 라는 식으로 내뱉는 일종의 리액션이다. 격하게 웃기다는 뜻이다. 놀라운 광경이나 멋스러움에 대한 공감도를 표현하기도 한다.


"미친놈"이나 "미친 새끼"는 공공의 적을 두고 사용한다. 일할 때 현장에서 술 먹고 시비를 걸어오는 사람과 같은, 상식과 개념의 영역에서 한참 벗어난 이를 칭할 때 쓴다. 지극히 사적이지만, 아무래도 직장에서 오가는 대화라 폭탄급 실수(aka 부장 있는 단톡방에 올리는 일)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그만 써야겠다 마음먹었다.


'조지다'라는 표현은 살짝 느낌이 다르다. 예전에 같이 일했던 (존경해 마지못한) 선배가 "오늘 기사는 환경부를 조져봐." 하는 걸 들었다. 적잖이 놀랐다. 저렇게 잰틀한 사람도 저런 험한 말을 쓰는구나. 알고 보니 '조지다'는 표준어였다. 보도국에선 은어처럼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래서 조진다는 말엔 부담이 없다. 죄의식도 없다.


요즘 10대, 20대들은 '이번 주에 해운대 조지러 갈 사람' '오늘 떡볶이 조지고 왔다'라는 식으로 쓰는 모양이다. 우리가 조지는 대상엔 해운대나 떡볶이가 있을 리 만무하지만, 가끔 집에서 모니터 하다가 나도 모르게 부모님 앞에서 "저건 구청이 잘못해서 조진 거야"라는 말이 나오면 식은땀이 흐른다. 그래서 그만두기로.


사촌동생이 비속어나 은어를 쓰면 쓰지 말란 티를 내고야 만다. 웬만하면 참는데 한 문장에 서너 번씩 졸라 졸라 거리면 핀잔을 준다.


"너어~~ 누가 그런 말 쓰래. 말 예쁘게 해."


하면서도 웃는다. 나도 그 나이 땐 그랬으니까. 저 버릇이 그리 오래가지 않을 거란 것도 안다. 그럼에도 고쳐줘야 속이 후련한 걸 보면 나도 꼰대다. 욕을 듣기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려줘야 직성이 풀린다. 미안하게도 동생은 순순히 받아들인다. "아, 누나 미안 미안. 친구랑 말하는 게 버릇이 돼서."


반면 구수해서 들어도 또 듣고 싶은 욕도 있다. 어릴 적 할머니가 동네에 발정 난 개들 보고 "허이구야 저 새끼들 또 저 지랄하는 것좀 봐야" 하면 난 그저 웃었다. 문 열고 들어가면 "왔냐, 시벌놈아" 활짝 웃는 욕쟁이 할매 포차도 그 인사말 듣는 맛에 갔다. 하지만 난 그들처럼 욕을 구수하고 찰지게 하는 게 아니니 접어야 맞다고 생각했다.


실생활에서 욕은 거의 안 하고 지낸다. 그래서 체감을 못하고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든 건 어느 비 온 다음날이었다. 물 고인 웅덩이를 피해 경사진 언덕을 내려가는데 밟고 있던 풀잎 아래 진흙이 있었던 모양이다. 순식간에 쑤욱 미끄러졌다. 드라마 여주인공이라면 "아이쿠, 깜짝이야"라는 앙증맞은 대사라도 칠 텐데 내 입에서 나온 건 '어머나' 같은 우아함도 '엄마야' 같은 귀여움도 아닌 외마디 쌍소리였다. 그야말로 쌍욕.


순간 당황했다. 마지막으로 쌍소리를 발음해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나이를 먹었는데, 지금 내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온 거지. 평소 그렇게 사람 좋은 웃음을 머금고 지내왔는데. 회사는 고사하고 지인들이 들으면 화들짝 놀랄 만한 소리다. 너무 순식간이어서 제어가 안 됐다. 돌발상황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이래서 습관이 무서운 거구나. 충격 끝에 다짐했다. 욕은 끊자.


그리고 일주일째 되는 어제까지 나의 삶은 평화로웠다. 비 오는 날 지나가던 차가 서행을 안 해주는 바람에 물이 한 바가지 튀었을 때도 사람 좋은 미소를 머금고 중얼거렸다. "거참 운전 성급하게 하시네."


킥보드 취재한답시고 차도를 누볐을 때도 깜빡이도 안 키고 훅 들어오는 차량과 맞닥뜨렸을 때도 최대한 우아하게 심호흡했다. 이런 돌발상황 따위 나를 흔들 순 없다. 성공했다. 오, 성급함 속에서도 잃지 않는 여유. 짜증을 억누르는 정서적 차분함. 바로 이런 거구나. 미셸 오바마가 얘기했던 명언이 생각났다. "그들이 저급하게 갈 때 우리는 품위 있게 행동한다 (When they go low, we go high)" 흐뭇했다. 이대로 품위를 가지고 살아보자.


오래가지 않았다. 주말 저녁, 침대에 간이 책상을 펴놓고 앉아 방송원고를 쓰고 있었다. 시계는 밤 열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창문을 열어놓은 탓에 집 앞 술집 정자에 취객들 고성방가가 들려왔다. 으레 있는 일이다. 그런데 데시벨이 점점 높아진다. 급기야 한 놈이 마이크를 빼들었다. 노래방 기계까지 챙겨 온 야무진 놈들이었다. 발라드 MR이 흘러나오고 한 놈이 노래 실력을 뽐내기 시작했다.


그놈 딴에는 노래 실력이었겠지만 내 입장에선 소음이었다. 원고는 아직 절반이 남았다. 창문을 닫아봤다. 더 크게 들린다. 한 번 뇌가 인식해버린 소음은 끈질기게 한참을 따라다녔다.


노래가 클라이맥스에 다다랐을 때 놈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박수세례를 받은 노래 부른 놈은 "아이고, 감사합니다!" 거의 전국 노래자랑이다.


실내도 아닌 주택가에서 저렇게 놀 수도 있구나. 놈들의 패기에 감탄한다. 고개를 살짝 내밀어 바깥을 보니 몇 놈은 춤까지 추고 있다. 테이블 위엔 녹색 병들이 일렬중대로 그라데이션을 만들어놨다. 만취한 취객은 상대하기엔 버겁다. 조용히 112를 눌렀다.  


마스크를 낀 경찰관 두 명이 도착하기까지 놈들의 열창은 두 세곡 더 이어졌다. 부를 거면 잘 좀 부르던가. 사그라들지 모르는 소음이 이어졌다. 그래도 경찰만 다녀가면 조용해지겠지. 경찰이 도착한 모양인지 말소리가 들렸다. 예예, 죄송합니다. 예, 조용하겠습니다. 휴 끝났다 싶었는데 웬 걸. 순찰차 불빛이 사라지진 적막 속에서 다시 놈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갔다~~~~~~~~~~~ "

"야 갔어갔어!"

"노래 뭐야 뭐야 뭐할 거야!!! 빨리해~~~~ "


그 순간 나왔다.


"아, 저 미친놈들."


아, 정신이 번쩍 든다. 놈들의 소음보다도, 내가 뱉어버린 욕설. 단 일주일 만에 끝나버린 다짐에 무력함마저 느낀다. 욕을 안 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싶다가도 그럼에도 허허, 웃어넘기는 이들을 보면 나는 아직 멀었다, 싶다. 그래서 이왕 시작한 김에 시원하고 우아하게 욕 한바가지 해줬다.


그렇게 나의 다짐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다시 시작한다. 의식하면 고쳐지겠지. 고쳐지다 보면 무의식 속 잠재돼있던 습관도 사라지겠지. 사라지다 보면 불현듯 닥쳐오는 돌발상황에도 욕 대신 "어머나" 하는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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