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들과 가려면 소파가 있는 카페여야 한다는 걸 몰랐다. 어른 걸음으로 5분 거리는 25분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말문이 트인 아가들이 얼마나 정성스럽게 한 단어, 한 단어를 이어가며 문장을 만들어내는지.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로 내게 무언가를 물어올 때 최선을 다해 답해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올라온다는 것도. 하루 종일 내가 만 보를 걷는 동안 아가들은 총총걸음으로 이 만보를 걸어야 했다는 것도. 육아에는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도. 이 모든 걸 나는 모르고 있었다.
물론 육아 경험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거겠지만, 부모들 입장에선 너무나 당연한 점들도 내겐 이렇게 생소할 수 있을까. 그 갭 차이가 새삼 신선하다. 가령, 친구가 "여기는 나무 테이블밖에 없어서 다른 카페를 찾아야 할 것 같아." 했을 때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건 '소파 있는 다른 카페'가 아닌 물음표였다. "소파가 있으면 더 좋을 텐데..." 친구가 덧붙인 한 마디에 비로소 아하, 싶다. 그저 앉아있기 편해서일 줄 알았다.
카페에 머무는 4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아가들은 잠시도 가만히 앉아있지 않았다. 소파에 매달리고 넘어가고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친구는 거의 아가들에게 사정하다시피 매달린다. 단호하게 겁을 주기도 한다. 아저씨가 이 놈 해, 이모네 집 가서 재운다, 다른 사람들도 이용하는 데잖아. 타일러도 화를 내도 아가들은 그저 웃는다. 친구 말마따나 '말귀는 알아듣는데 말을 안 듣는다'. 되려, 아빠품에 포옥 안겨 애교를 부린다. 보조개 들어간 두 볼덩이가 찡긋 올라가고 눈이 반달이 되면 아빠도 사르르 녹는다는 걸 딸들은 안다. 아직 네 살인데도.
소파를 잡아먹을 것처럼 점령해가는 아가들을 보며 깨달았다. 소파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구나.
저녁을 먹으러 가려는데, 벌써부터 막막하다. 아가들이 김치를 잘 먹는다는데, 한식집이라곤 매운탕집이 전부다. 파스타집을 가자니 설 공간만 있으면 뛰어다니는 아가들이라 장소가 마땅치 않다. (무엇보다 소파 있는 파스타집이 떠오르지 않았다.) 너 고기 좋아하잖아, 고깃집은 어때? 물으니 "혹시 고기를 구워주는 곳이니?" 되묻는다.
결국 고깃집을 간다. 세팅이 된다. 그 사이 아가들은 한 번씩 화장실을 다녀와야 했다. 고기를 굽는 사이 아가들의 두 손은 점점 테이블 위로 올라오기 시작한다. 물통에 있는 물이 신기하고, 숟가락이 커서 싫고, 손에 묻는 정체모를 밥풀이 마음에 안 들고, 물수건은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으며 왜 고기가 아직도 내 입에 들어오지 않는 걸까. 아가들은 모든 게 궁금하다. 그렇다. 아가들은 모든 행동엔 이유가 있었다. 단지 어른의 시선에서 봤을 때 알아차리지 못한 것뿐. 친구가 왜 굳이 구워주는 고깃집이냐고 되물었는지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부모들이 아가를 먼저 먹인 뒤 배불러 딴짓을 하는 사이, 허겁지겁 음식을 입에 넣는지 이제야 알았다. 맛을 음미할 여유란 사치이기도 했다. 친구는 내게 편히 먹어라, 좀 더 먹어라, 하는데 아가 손이 어디 있는지 신발은 신고 있는지 미끄러지진 않는지 고기는 잘 씹고 있는지 왜 뱉어내는 건지. 나 역시 모든 게 궁금했으니까 고기가 넘어갈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히 발이 아프다며 (겉보기엔 말짱하지만) 안아달라는 딸내미의 투정이 마냥 귀여운 아빠는 딸바보다. 친구는 딸들의 들숨, 날숨까지 무엇하나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한 마디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네 살이 궁금해하는 시선 딱 그 높이에 머물러 같이 바라본다. 뙤약볕이었다가 비가 당장이라도 내릴 것처럼 흐렸다가 호드득 호드득 떨어지는 밧방울까지. 쉴 새 없이 변하는 날씨 속에서도 친구는 한결같았다. 나 역시 그냥 자란 게 아님을 깨닫는다.
어쩜 저렇게 화 한 번 안 내고, 짜증스러운 표정 한 번 짓지 않고 쌍둥이를 돌볼 수 있을까. 하나도 아닌 둘을. 성격은 아빠 닮아서 눈동자에 장난꾸러기 쓰여있는 (친구 피셜) 비글 자매를. 평소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애들 돌보는 게 너무 힘들다, 피곤하다, 가끔은 나한테도 한계가 온다'는 말이 투정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사랑스럽다. 강아지풀을 뜯어주면 그거 가지고 한참을 깔깔거린다. 공룡이 아빠를 잡아먹을까 봐 무섭다고 운다. 눈만 마주쳤다 하면 고개를 갸우뚱 꺾으며 배시시 웃어 보인다. 그냥 녹아내린다. 아무것도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 이 작은 생명체들을 보며 얼마나 가슴이 뿌듯하고, 얼마나 어깨가 무거울지. 고작 여섯 시간 만났음에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친구와 헤어지는 길, 커피숍에 내려달라고 했다. 소화도 시킬 겸 좀 앉아있다가 집까지 걸어갈 요량이었다. 친구는 "그 여유, 부럽다..."며 운전대를 잡는다. 뒷좌석엔 아직도 지치지 않은 비글 자매가 두 눈 동그랗게 뜨고 친구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구나, 값진 축복이구나, 엄청난 행복을 주는 일이구나. 육아 중인 친구들이 새삼 존경스럽다. 나, 나는 어떤 엄마가 될까. 조금씩 생각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