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지급되는 식수는 500ml 생수병이 전부다. 그마저도 40일간 파업 끝에 얻어낸 결과물이다. 수금하러 오는 공단 직원이 한 병씩 두고 간단다. 아침 9시에 출근해 저녁 8시에 퇴근하는 주차요원들의 얘기다.
3개월에 한 번씩 순환근무를 한단다. 새로 구역을 배정받은 사람은 인근 상가건물을 돌아다닌다. 비타 오백을 들고서. 왜? 화장실을 쓰게 해달라고 건물 관리인에게 인사하러 다니는 거다. 제가 이번에 새로 온 사람인데요, 혹시 제가 지내는 동안 여기 화장실을 쓸 수 있을까요? 아쉬운 소리를 하는 그들은 때론 문전박대를 당한다. 개방화장실을 이용하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비밀번호를 바꿔버리면 당황한다. 자리를 비울 땐 일분일초가 급하다. 차를 대러 온 사람, 차를 빼려는 사람들은 일분일초도 기다릴 여유가 없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리욕구를 그들은 매일 그렇게 해결한다.
취재하기로 했다. 사전 취재 겸 공단 노조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을 통화하다 갑자기 그런다. 근데, 작가님. 아. 작가님이 이걸 취재하면 어떡해. 작가님은 작가님을 밀착해야죠. 작가님도 비정규직이잖아요. 지금 우리를 취재할 때가 아닌데? 웃는다.
취재진과 취재원의 통화는 한순간에 동병상련을 나눈 유대관계가 된다. 그의 익살스런 멘트에 나도 웃는다. 사실 통쾌했다. 알아주는 이가 있어서 고맙기도 했다. 방송작가, 비정규직이라는 타이틀이 상처로 돌아오던 때도 있었다. 만약 그때 이런 통화를 했다면 수화기를 들 때 호탕하게 웃음을 토해낸 만큼 돌아서서 눈물을 짜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누군가에겐 여전히 상처가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연차가 어리거나 때마침 억울한 상황에 처해있거나 하루하루 노심초사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겐 말이다. 내가 그래왔듯이.
그에게 그런 말은 다른 작가 혹은 비정규직에게 하지 말아 달라고 말하진 않았다. 지난날의 나를 둘러싼 모든 이들이 스쳐가듯 흘리는 말 한마디가 상처로 돌아온 건 맞지만, 그만큼 견고해질 수 있기도 했다. 쉽진 않았다. 하지만 걸어볼 가치가 있는 길이었다.
새삼스럽지만 놀랐다. 아무렇지 않게 흘려들을 수 있는 단계에 올라왔구나. 저 말이 더 이상 내게 상처가 되지 않는구나. 거기엔 아마도 나 자체로 사랑해주고 인정해주는 주변 사람들의 공이 크고, 롱런할 수 있게 해 준 선배들의 도움이 크고, 하필 운 좋게 들어갔던 타이밍이 기똥찬 역할을 해준 덕분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찾아올 거다. 누군가 흘리는 말에 지나온 내 길을 돌아볼 순간이. 시작부터 잘못된 건가, 마음이 무거워질 순간도. 그래도 예전보다 조금은 가볍게 올라서겠다. 일주일 힘들던 거 5일이 되고, 3일이 되고. 언젠간 3분이 되겠지. 그리고 먼 훗날엔 3분 먼저 앞서 웃고 있을 날이 올 거다.
그러니 오늘만큼은 나를 칭찬해줘야겠다. 잘하고 있다. 잘 버텼다. 일 진짜 열심히 재밌게 해왔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즐겁게 일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