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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작가가 왜 보도국에 있어요?"

강연 프롤로그

by 알로

보도국 작가라는 단어 자체가 굉장히 생소하죠. 처음 일하기 시작했을 때 취재원한테 전화하면 대화가 항상 같은 패턴으로 흘러갔어요.


"안녕하세요. □△○보도국 □△○작가인데요."

"□△○기자님이요?"

"아니요. 작가요."

"네? 작가요? 작가도 기사 써요?"


저에게도 낯선 직업이니까 그분들에게도 마찬가지였겠죠. 그때는 그냥 머뭇거렸어요. 비아냥거리면 때론 울컥하기도 했고요. 나는 누구, 여긴 어디. 그거 제가 맨날 했어요.(웃음) 그때는 저 조차도 몰랐던 거예요. 작가가 하는 일이 기자랑 뭐가 다르지. 그냥 기자가 시키는 거 하는 건가. 이거 아무나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정체성을 잃었던 거죠. 맨날 수화기 들고 쭈뻣쭈뻣했어요. 가끔 보도된 내용이 마음에 안 들면 저한테 전화가 걸려와요. "아이고, 작가라서 소설을 쓰셨나 봐요?" 그래요. 억울해요. 차라리 기사를 제가 썼으면 책임이라도 지고 항변이라도 할 텐데.(웃음) 그땐 매일이 그랬어요.


요즘은 좀 뻔뻔해졌어요. 작가님이요? 이야, 요즘은 작가님도 보도국에 있어요? 하면 그냥 웃어넘겨요. 아유~ 선생님! 요즘 보도국에 작가 없는 데가 어딨어요. 뉴스도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지고 구성도 해야 되고, 시대가 변했지 않습니까? 선생님도 한 번 도와주시죠. 잘 만들어봅시다! 해요. 능글맞아진 거예요. 기자가 되기 전 단계로 보도국 작가를 선택하는 경우도 더러 있어요. 저도 처음엔 취재현장이 궁금해서 지원했었어요. 작가니까 글도 쓸 수 있고 취재도 경험해볼 수 있겠지? 하면서. '작가'라는 타이틀이 때론 창피함으로 다가오기도 했고요, 어떤 현장에선 모멸감으로 돌아오기도 했어요. 역할의 불분명한 경계에 저 스스로가 자신 없었던 거예요.


제가 얼마 전에 서핑을 다녀왔어요. 취미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도 아니고 정말 초보단계예요. 남들은 파도를 탄다고 하는데, 저는 파도에 휩쓸려 다니는 수준이거든요. 그래도 처음 몇 번 갔을 땐 기념도 하고 싶고 하니까 인증사진을 찍잖아요. 서프보드 들고 해변가에서 딱. 그래서 그걸 SNS에 올린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나가는 자리마다 사람들이 서핑 좀 가르쳐달라고 하는 거예요. 저 못해요, 초보예요 하니까 사진만 보면 전문가 같다는 거예요.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거든요(웃음). 그때 깨달았어요. 보인다는 게 이렇게 중요하구나. 어떤 포장할까, 잘만 고민하고 이용하면 굉장히 잘 활용할 수 있겠구나. 사진 한 장으로 이미 서핑 잘하는 사람이 돼버린 사례를 겪으면서 느꼈어요.


장미꽃 한 송이를 비닐 포장할지 신문지로 돌돌 말지, 빨간색 장미를 고를지, 노란색을 할지. 만나자마자 줄지 수풀에 숨겨놨다가 짠 하고 줄지. 타이밍에 따라 감동이 배가 되기도 하고 감동이 전혀 없기도 하잖아요. 작가의 역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포장만 잘하면 5만 원짜리 꽃송이가 되기도 하고, 5천 원짜리가 되기도 해요. 정답은 없지만 끝없이 고민하는 거예요. 어떻게 해야 이 기사가 전달될까, 이 메시지를 알아줄까. 어떤 타이밍에 어떤 구성을 해야 쉽고 재미있게 와 닿을까, 를 고민하는 직업이에요.


5분짜리 방송 나가는 데 3~4일씩 촬영해요. 방송으로 보여주고 싶은 것도 많고,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도 많죠. 그걸 다 편집하고 추려내서 나가는 거예요. 못다 한 이야기가 얼마나 많겠어요. 그 이면에 재미있는 일들이 많은데, 오늘 어떤 걸 가져올까 고민했어요. 저는 여러분보다 고작 몇 년 먼저 사회를 경험한 게 전부라서 엄청난 이야기를 해드리진 못하겠지만, 살아보니 괜찮았어요.(웃음) 그러니까 여러분도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간단하게 제 소개를 적어왔어요. 여러분이 대학생들이잖아요. 저도 그때로 돌아가 봤어요. 대학교 졸업반에 있을 때 대학원으로 진학할지 취직을 할지 고민이 많았거든요. 취미도 적어봤어요. 배드민턴 친다고 자랑하려고 한 건 아니에요(웃음). 제가 가진 취미를 일에 접목시켰던 경험이 있었는데, 그게 꽤 쏠쏠한 꿀팁이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적어봤고요.


저는 일본어를 전공했어요. 초등학교 때 기회가 닿아서 우연히 일 년 동안 일본에 가 있기도 했고요.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들었던 일본 이야기들이 영향을 미쳤어요. 아무래도 일제 강점기 때 사셨던 분들이니까 일본 이름이 있었다던가, 학교에서 배웠던 일본어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았죠. 나중에 내가 어른이 되면 혼내줘야겠다, 이놈들. 일본을 제대로 파헤쳐야겠다는 생각하고 자랐어요. 인연이 닿았는지 결국 일본으로 대학을 갔고 사회랑 문화, 언어, 사람에 대해서 전공했어요.


저는 사실 그래요. 전공 같은 걸 결정할 때 정말 영리하고 야무진 친구들은 취직이라는 선이랑 연결이 될까, 를 고려해서 경영이나 경제나 마케팅 쪽으로 전공을 선택하는 친구들이 있잖아요. 저는 야무지지를 못해서 정말 제가 좋아하는 공부를 하고 싶었어요. 언어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했는데요. 결과적으로 거기에는 사회, 정치, 경제, 문화가 다 들어있었기 때문에 지금 하고 있는 일이랑 접목을 시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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